[모두의 주역] 화뢰서합 – 남의 말을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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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화뢰서합 – 남의 말을 삼가라
  • 승인 2019.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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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남의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을 보고 흔히들 ‘씹는다’고 한다. 남의 문자나 전화를 받았음을 알았으면서도 답이 없는 것을 ‘씹는다’고 한다. 씹는다는 행위는 턱 두개 사이에서 어떤 형체가 있는 것이 곤죽이 되어버린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형태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역에도 위 턱과 아래 턱이 가운데 있는 무언가를 씹는 모양을 한 괘가 있다. 바로 화뢰서합이다. 서합괘의 괘사는 이렇다.

 

噬嗑 亨 利用獄

 

형통한데, 왜 감옥을 쓰는 게 이롭다고 했을까? 단전과 상전을 보자.

 

彖曰 頤中有物 曰 噬嗑 噬嗑 而亨 剛柔 分 動而明 雷電 合而章 柔得中而上行 雖不當位 利用獄也

象曰 雷電 噬嗑 先王 以 明罰勅法

 

감옥이니, 벌이니, 법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걸 보니 뭔가 단죄하는 것에 관련된 괘인 것만은 확실하다. 서합괘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단계를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서합괘는 위에서 미리 말했듯이 위 아래 턱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즉, ‘말’이다. 씹는 일이니 아름답고 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말은 그 어휘나 억양에 따라 강하기도 부드럽기도 하다. 자기 뜻을 밝히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자기 뜻과 계획을 말할 때에 부드러운 것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도구다. 그런데 옥을 씀이 이롭다 한 것은,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이 남을, 혹은 나 자신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初九 屨校 滅趾 无咎

 

남의 발가락을 없애놓고 허물이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보통은 가벼운 형벌에 그침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으니 남이 알 리도 없고 그러니 허물도 없다.

 

六二 噬膚 滅鼻 无咎

 

육이는 피부를 씹었으니 결국 내 속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나와버린 상태다. 하지만 코를 없앴다는 것은 내 말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지 못하도록 원천봉쇄를 했다는 뜻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충청도 양반답게 어릴적 내게 “아유, 우리 혜원이는 어찌나 똘똘한지 혼자 생각해서 다 하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게 한참 지나고 보니 ‘어른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한다’는 뜻의 돌려까기였던 것이다. 이렇듯 독설의 냄새는 맡지 못하게 한 말이니 그 의중이 어떤지 몰라도 일단 허물은 없다.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육삼은 이제 본격적으로 ‘씹는’ 단계에 돌입했다. 더 이상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독설이 나와버렸으니 인색하지만 허물은 없다. 왜? 육삼의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에 상관도 없는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해대는 말은 쉽게 무시당한다. 육삼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러니 사안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진 못하여 허물은 없지만, 본인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독설을 하였으니 조금 인색하긴 한 것이다.

 

九四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吉

 

육삼까지야 무슨 말을 해도 그닥 상관이 없는 위치였으나 구사부터는 다르다. 주역에서 볼때 구사는 대부분 다섯번째 효의 측근이다. 구사는 씹다가, 황금 화살을 얻는다고 했다. 화살은 무언가를 쏘아 떨어뜨릴때 쓰는 무기이다. 즉, 저격 도구이다. 그러니 구사의 독설은 누군가를 겨냥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마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누군가를 향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에 인색하거나 흉하지는 않지만 심사숙고하여 나온 바른 말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황금 화살’에 걸맞는 것이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잘못 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 아닌 그저 독설에 불과하다면 결코 길하지 않을 것이다.

 

六五 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

 

마른 고기를 씹었는데 황금을 얻는다. 그 말은 곧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누군가에 대해 맘에 들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불편함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육오가 하는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 대한 사회적 살인에 버금가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르고 위태로워야 겨우 허물만 면하는 것이다.

 

上九 何校 滅耳 凶

 

초구에서는 발가락을 없앴는데도 허물이 없는데, 상구에서는 귀를 없애서 흉하다. 왜 그럴까?

원래부터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듣다가 못 듣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데,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의 눈초리가 이상한데 입을 움직이면 내 욕을 하는 것 같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웃으면서 사실은 ‘못 들으니까 욕해도 되겠지’ 하며 내 면전에서 나를 조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해 줘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소통 없이 독설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옆에 누가 남아 있을까. 흉할 수 밖에 없다.

입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냥 음식을 받아들이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닌, 관계를 구축하고 지식을 전하며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형체 없는 것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흉기도 된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은 잘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일침을 가할 때 쓰는 것이지만, 그 잘하고 못한 것은 누가 가리는가? 다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언제나 옳고 지성적이고 냉철해야만 한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 해서 함부로 꺼내고, 내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해서 함부로 휘두를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마음대로 날뛰려는 혀가 있거든 일단 감옥에 가두라.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

재능을 가지고 반짝거리던 젊은 생명 하나가 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무엇이 그렇게 옳다고 믿었기에, 무엇을 그렇게 고쳐야겠기에 그렇게들 함부로 입을 놀렸던가. 부디 그녀가 저 세상에서는 깊고 고요한 평안을 얻었기를 바랄 뿐이다.

#고 최진리씨의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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