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本草附方便覽>에 대한 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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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本草附方便覽>에 대한 연구(2)
  • 승인 2019.1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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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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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44)

지난호에 이어

<本草附方便覽>의 下版口 위치에 있는 好古堂은 <醫宗損益>의 遊藝室처럼 惠庵이 <本草附方便覽>을 집필한 장소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철상9)은 黃泌秀가 編한 <銅板袖珍日用方>(刊記: 同治辛未好古堂鑄)10)을 연구하면서 “황필수가 교정한 <河洛理數>의 서문 끝의 ‘愼村黃泌秀 題于好古書室’을 통해 신촌 황필수의 당호가 호고당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好古堂은 이미 황필수의 부친인 惠庵이 <本草附方便覽>에서 먼저 사용하였으므로 “황필수의 당호”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일본 동양문고 소장의 <燕行日記>11)는 惠庵이 1849년에 저술한 것인데 여기에는 연행길에 “求本草景岳保元以銀三兩”이라고 나오는데(그림 2), “本草” 책을 구매하였다고 나오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1855년에 <本草附方便覽>을 저술하는데 참고가 된 <本草綱目>일 것으로 추정된다.

 <本草附方便覽>의 목차를 보면 <東醫寶鑑> 목록과 대략 일치하지만, 內景篇에서 言語와 五臟六腑, 肝臟, 心臟, 脾臟, 肺臟, 腎臟, 膽腑, 胃腑, 小腸腑, 大腸腑, 膀胱腑, 三焦腑가 생략되었다. 한편 <東醫寶鑑> 內景篇의 胞는 <本草附方便覽>에서는 是集‧卷二十六으로 항목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東醫寶鑑> 外形篇에서는 臍, 肉, 脉, 骨이 <本草附方便覽>에서 생략되었으며, 雜病篇 卷一의 天地運氣, 審病 辨證, 診脈, 用藥, 吐, 汗, 下 항목들은 모두 생략되었다. <東醫寶鑑> 外形篇의 頸項과 背는 <本草附方便覽>에서 項背 하나로 축약되었다.

 또한 道集‧卷二十四에는 製造 한 편이 더 있는데 <東醫寶鑑> 雜病篇의 雜方과 婦人 사이에 해당된다. 이것은 <本草萬方鍼線> 권4 通治部의 製造門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本草萬方鍼線>은 淸의 蔡烈先이 1712년에 8권 4책으로 구성하였는데, 내외과 증상별로 7部 106문으로 나누고, 각 문의 구체적인 증상에 따라 <本草綱目>의 몇 번째 권 몇 번째 항 또는 發明, 主治下 등의 類를 표시하여 찾아보기 용이하게 색인화한 것이다. 그런데 惠庵이 저술한 <本草附方便覽>의 경우 <本草綱目>의 내용을 <東醫寶鑑> 목록에 따라 기재하고 있어서 <本草萬方鍼線>을 참고하여 일일이 <本草綱目>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한편 오재근6)은 “항목 중에 언어(言語)와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의보감』과 동일한 편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으나, 그 외 차이점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소 있음을 알 수 있다.

 <本草附方便覽>의 편찬시기에 대해 惠庵은 1855년과 1856년이라고 달리 서술하였는데 필자는 서문의 “上之六年乙卯仲夏下澣 惠庵 題”에 근거하여 哲宗6년인 1855년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惠庵이 <醫宗損益附餘> 서문을 쓰면서 1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1855년을 1856년으로 誤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필자는 여강출판사 영인본 <本草附方便覽>에서 제5권이 끝난 다음 쪽 여백에 高濟栢의 필적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病名例 霍亂 痲疹 百日咳 回歸熱 右九月中診療이無홈 大正六年十月 日 昭格洞一0七番地 醫生高濟栢”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高濟栢은 大正3년 2월 13일자 朝鮮總督府官報 제460호에 醫生及入齒營業免許 등록번호 11번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에서 소장 중인 원본12)에는 卷之五와 卷之六 사이에 앞에서 언급한 高濟柏 筆跡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림 3). 또한 高濟柏 筆跡이 있는 쪽의 광각의 크기도 다르고 판심에 好古堂도 없어 <本草附方便覽>과 다른 종이가 삽입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서문에서도 藏書閣 소장본과 영인본의 차이점이 있는데 원본의 서문 하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있으나 영인본에는 “李王家” 부분이 잘려 있으며, 원본의 서문 상단에는 藏書印이 없으나 영인본 상단에는 “국립중앙도서관장서인”의 일부가 잘려 있다. 이러한 차이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979년에 장서각 원본을 영인하여 보관한 것을 이후 여강출판사에서 영인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외 영인본의 나머지 부분은 藏書閣 소장본과 동일하다.

 

이상에서 藏書閣 소장 필사본 <本草附方便覽>에 대해 살펴보았다. 향후 <本草附方便覽> 28권 전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惠庵에 대한 추가 연구를 기대한다.

 

Ⅳ. 결론

 <本草附方便覽>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本草附方便覽>은 테두리가 쌍변으로 되어 있고 界線이 있으며 판심 상단에 附方便覽, 하단에 好古堂이 있고 上下向二葉花紋魚尾로 보아 출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 <本草附方便覽>의 목차는 <東醫寶鑑>과 대략 일치하는데, 일부 항목은 생략과 倒置가 보이며, 道集‧卷二十四에는 製造 한 편이 추가되었다.
3. <本草附方便覽>의 편찬시기는 서문의 “上之六年乙卯仲夏下澣 惠庵 題”에 근거하여 哲宗6년인 1855년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참고문헌>
9. 박철상, 조선시대 투인본(套印本) 『동판수진일용방(銅板袖珍日用方)』, 문헌과 해석, 2007:185-197.
10.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https://www.nl.go.kr/korcis).
11. 燕行日記,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동양문고 소장, http://kostma.korea.ac.kr/dir/list?uci=RIKS+CRMA+KSM-WM.1849.0000-20140417.TOYO_1225).
12. 惠庵, 本草附方便覽.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

* 자료 열람에 도움을 주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김희경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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