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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한글’이라는 혁명
도서비평│한글의 탄생
2019년 10월 04일 () 06:00:16 안세영 mjmedi@mjmedi.com

곧 한글날입니다. 이맘때면 늘 오래 전 국립박물관에서 한글의 창제원리에 관한 전시물을 처음 접하며 받았던 충격이 되새겨집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한글의 초성 기본 글자 ‘ㄱ·ㄴ·ㅁ·ㅅ·ㅇ’ 아·설·순·치·후음(牙·舌·脣·齒·喉音)이 발음기관의 상형(象形)임을 통 몰랐었거든요. 해서 올여름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논란으로 조기종영된 점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팩션(faction) 사극에서의 클리셰(cliché)는 불만스러웠지만, 세종대왕의 고뇌와 한글의 탄생 과정을 꽤나 흥미롭게 파헤친 작품이었거든요. 흥행에 성공했더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긍심이 충만했을 텐데….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돌베개 출간

『한글의 탄생』은 무형의 소리에서 유형의 글자가 창조된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어 구입한 책입니다. 지은이가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라는 일본인이고, 한국어와 한글을 거의 모르는 일본어 화자를 대상으로 썼다는 사실에 애초에는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인지라 보다 객관적이겠다 싶었고, 마이니치(每日)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저술상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다기에 한편으론 믿음이 가더군요. 완독 후에는? 이런 게 소위 ‘모노쓰쿠리(物作り) - 일본의 장인 정신’이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저자는 ‘한글’이라는 ‘지(知)의 혁명이자 에크리튀르(écriture; 문자)의 기적’에 대한 감동을 전달하고픈 욕심에 무리한 도전을 시도했다던데, 저는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한글의 진면목으로 친절하게 인도하려는 저자의 노력에 크나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글 창제에 대한 감동이야 대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 있잖아요? ^^)

책은 모두 9장으로 나뉩니다. 서장 「한글 소묘」는 주시경 선생께서 ‘크고 바른 우리 겨레의 글’이란 의미로 이름 붙인 ‘한글’의 정의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록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의 체계에 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본문에 해당하는 1장부터 7장까지는 한글의 탄생 및 문자로서의 정착 과정에 관한 본격적인 탐구입니다. 한글 창제 이전의 문자 생활 환경, 소리에서 문자를 만들려는 대담한 발상, 입말과 글말의 관계, 자음·모음·음절·음소 등의 현대 언어학적 개념, 아랍·로마·몽골 문자 등과 같은 이른바 ‘알파벳로드’의 영향, 한글과 한자·일본어와의 비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로 대표되는 당시 기득권 세력의 반발 및 그에 대한 세종대왕의 반론, 결국 한글이 글자·글·문장·책이 됨으로써 이룩한 한반도에서의 지적 혁명, 한글의 서예법(특히 궁체) 및 컴퓨터 구현 글자체의 아름다움 등등. 마지막의 종장 「보편을 향한 계기」는 훈민정음을 읽는다는 일이 문자 탄생의 원초(原初)를 만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이고 지(知=앎)란 무엇인지 깨우치게 만드는 희유한 기적임을 역설합니다.

“한글이 불러일으킨 모든 것이 ‘지의 혁명’이었고, 한글은 그것을 가능케 한 ‘지의 원자(原子)’였다”는 저자의 웅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들 모두는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자체계인지 잘 압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누구나 아끼고 사랑해야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한의대생들이 한자를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은 영 못마땅합니다. ‘꼰대(kkondae)’ 소리 듣겠지만, 우리 땐 ‘전공 문맹’ 취급했는데….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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