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시평] 통합의학과 한의학의 관계: 이분법적 구별을 넘어서기
상태바
[이태형 시평] 통합의학과 한의학의 관계: 이분법적 구별을 넘어서기
  • 승인 2019.09.27 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태형

이태형

mjmedi@mjmedi.com


경희이태형한의원

필자는 과거 학위 과정 당시 보완대체의학과 통합의학의 정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1) 논문을 작성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한의학과 통합의학 개념 간의 관련성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의 한의학은 전통의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의학으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의료계에서 기존 생의학과 구별되는 새로운 의료 흐름으로서 확대되고 있는 통합의학 개념은 한국의 한의학과 상호간에 참고할 만한 측면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이라는 용어는 1994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처음 이 용어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 개편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지만, 이후 통합의학이라는 개념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생의학과 다양한 보완대체의학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활용되어져 왔다.

통합의학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어 온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연구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기존에 생의학이 질병을 중심에 두고 의사의 관점 위주로 환자를 대상화하여 바라봤던 것과는 달리, 통합의학은 기본적으로 환자가 중심이 되는 치료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2) 때문에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기존 보완대체의학 연구 흐름에서와 같이 무작위 대조군 실험(RCT)이나 체계적 문헌고찰(SR)에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기 보다는 환자 개개인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통합의학에서 ‘환자 중심’이라는 요소를 중요시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과학적 검증’을 유일한 의학적 기준으로 설정함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못했던 요소들이 상당부분 존재해왔음에 기인하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환자 개개인의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양적 연구가 아닌 질적 연구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3) 예를 들어 이 주장은 특정 치료가 소위 “효과가 있다”라고 말할 때의 ‘효과’가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정신적인 만족감, 비용대비 효과, 통증의 감소 등이 있다. 또한 기존 생의학의 연구방법론에 의거해 보완대체의학을 연구할 경우 보완대체의학 각각의 학문적 체계가 분해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주장도 제기되었다.4) 통합의학은 기존의 생의학과는 다르게 환자 개개인, 그리고 전인적 관점에서의 치료를 추구하기 때문에 연구 방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연구 기준점으로 설정되었던 무작위 대조군 실험(RCT) 방식 외에도 환자가 중심이 되는 연구방법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연구에 있어 과학적 엄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학적 방법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보완대체의학의 학문적 배경 및 임상 진료방식을 존중하는 연구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통합의학 개념의 대두와 확산이 현대의 한의학 발전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왔다. 무엇보다 한의학 자체가 다른 어떤 학문보다 환자를 중심에 둔 진단과 치료를 추구해왔기 때문이고, 통합의학 개념의 확산이 한의학의 특수성을 반영한 현대적 연구를 진행하기에 용이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와 같은 학문적 방향성은 20세기 이후 한의학 현대화 관련 논쟁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온 전통과 근대 간의 이분법적 구별과, 이로 인해 반복되는 갈등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하지만 관련 논문을 작성한지 8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통합의학이 가지는 의미는 처음 그 시작과는 꽤 다른 방향으로 활용되어 지고 있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대표적인 것이 통합의학 개념과 의료일원화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통합의학은 본래 기존의 생의학에 보완대체의학의 치료방법을 덧붙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전인적 관점에서 환자의 건강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환자를 중심으로 생의학과 보완대체의학 모두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을 의미하였다.

예를 들어 한의학을 통합의학적 견지에서 활용한다고 한다면, 이는 한의학의 치료 술기만을 취하여 생의학 혹은 양방의학의 인식론 토대 위에 활용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 한의학이 가지는 전인적인 인체관, 질병관까지도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함을 말한다. 만약 기존의 생의학이 절대적인 의학 체계로 여겨졌다면 통합의학이라는 개념은 대두될 필요조차 없으며, 보완대체의학과의 협조적 관계 설정 또한 논의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처럼 통합의학 개념과 의료일원화 개념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함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논의는 “한의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현대의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의료적 공헌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의사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한의학은 단 한 번도 고정되었던 적이 없었다. 이 학문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으며, 그 변화의 기준은 무엇보다 임상적인 효용에 있었다. 아무리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의가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임상 실재에 부합되지 않으면 후대 의가에 의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로써 한의학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화 발전해올 수 있었다. 한의학의 이론 체계, 혹은 설명 방식은 임상 실재와 분리되어 존재해 온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한의학 현대화 관련 논쟁을 살펴보면 오히려 외부로부터 비롯된 고정된 관념을 토대로 한의학을 규정지으려는 시도들을 종종 접하게 되고는 한다. 예를 들면 “전통 한의학은 비과학적 산물이다”라거나 “전통 한의학은 음양오행과 같은 과거의 내재적 원리에 천착되어 있다”라는 등의 비판이 그것이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 한의학은 현대 과학을 통해 근본적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전통 한의학은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어 재편되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생의학에서도 과학의 의미는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근거중심의학(EBM) 개념이 확산된 이후에는 기존에 의학의 과학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준점으로 작용하였던 특정 질병의 메커니즘 연구 뿐 아니라, 특정 치료의 임상적 효용성을 밝히려는 노력에도 과학적 가치를 부여해왔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임상적 효용성을 토대로 계속해서 변화 발전해 왔음을 상기해 보았을 때, 전통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단순히 비과학적이라고 평하거나, 전통 한의학이 고정된 원리에만 천착되어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같은 시각보다는 전통 한의학에서는 무엇을 질병으로 보았으며, 무엇을 원인으로 진단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후를 판단해 왔는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제는 우리 한의계가 전통과 현대, 철학과 과학, 한의학과 생의학과 같은 이분법적 구별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온 한의학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의학의 하나로서 역할 할 수 있다. 한의학의 음양오행 뿐 아니라 정기신, 오장육부, 십이경락, 풍한서습조화 등과 같은 개념은 실제 임상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토대로 보다 넓은 범주에서 과학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대과학을 통한 한의학 연구 성과들 또한 기존의 전통 의학적 측면과 충분히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 또한 한의학과 생의학도 더 이상 상호 배타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통합의학적 견지에서 각각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적 공헌을 토대로 상호 협조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이는 환자 뿐 아니라 한의학계와 생의학계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통합의학적 노력은 한의계 내부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한의과대학 안에서도 한의학 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의서를 토대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학문 분야가 있는 반면, 현대 과학적 연구를 위주로 시행하는 학문 분야가 존재한다. 또한 임상 연구를 위주로 하는 학문 분야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학문 분야 모두가 현대의 환자를 위한 최선의 한의 치료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우리 모두는 보다 열려 있는 견지에서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한 연구 결과에 귀 기울이고 상호간 건강한 비판과 수용을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한의학이 이제는 그 동안의 이분법적 구별과 이로 인한 갈등을 넘어서서, 앞으로는 가장 성공적인 통합의학의 한 예시로서 전 세계 통합의학을 선도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각주

1) 이태형. 보완대체의학 및 통합의학의 정의에 대한 고찰. 경희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1.
2) Lesley Rees, Andrew Weil. Integrated medicine Imbues orthodox medicine with the values of complementary medicine. BMJ. 2001 Jan 20; 322(7279): 119-120.
3) Bonnie B. O'Connor. Personal Experience, Popular Epistemology, and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Research. The Role of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2002. Georgetown University Press. pp.54-73.
4) Iris R. Bell, Opher Caspi, Gary E. R. Schwartz, Kathryn L. Grant, Tracy W. Gaudet, David Rychener, Victoria Maizes, Andrew Weil. Integrative Medicine and Systemic Outcomes Research. Arch Intern Med. 2002 Jan 28;162(2):133-4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