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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이 저서에서 姓名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한 추론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42)
2019년 09월 14일 () 06:00:40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mjmedi@mjmedi.com

Ⅰ. 서론

 오늘날에도 본명 외에 다른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筆名을 따로 쓰는 작가나 藝名을 별도로 사용하는 예술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惠庵은 자신의 저서에 본명이나 筆名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號만 사용한 드문 경우이다.

 이번 호에서는 惠庵이 왜 당시 다른 사람과 달리 저서에 姓名을 기록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본 결과를 보고하는 바이다.

 

Ⅱ. 본론

1. 惠庵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醫宗損益> 跋文에 惠庵의 어린 시절과 관련하여 “我本早孤人 生無强近親 家計又不贍 一炊到三旬(나는 본래 일찍이 의지할 곳 없는 고아가 되었고, 살면서 아주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 가계 또한 넉넉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밥을 하였다)”라고 나온다. 이를 토대로 惠庵이 名門家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음을 알 수 있다.

 

2. 御醫로서의 惠庵

 최근 구현희1)에 의해 1849년 <燕行日記>의 저자 黃惠翁이 惠庵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燕行日記>에서 惠庵이 御醫로서 遂行한 燕行에 대한 素懷를 표현하였는데 “兒時讀史記 至秦皇築萬里長城 西至臨洮 東至遼東之偏 以爲絶遠 難見之地 今匹馬來見 男兒事 固不可知也(어린 시절 史記를 읽었는데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 서쪽으로는 臨洮에 동쪽으로는 遼東에 이른다고 해 너무 멀어 보기 어려운 땅으로 여겼다. 지금 한 필의 말을 타고 와서 보니 남자 일은 진실로 알 수 없도다.)”(그림 1)라고 되어 있다. 이를 보건대 惠庵이 당시 燕行을 할 정도로 뛰어난 御醫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燕行日記> 속 黃惠翁의 중국 여행에 대한 素懷 

3. 惠庵의 姓名에 대해 언급한 서적

 惠庵이 평소 저서에 姓名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아래 2책에 나타나 있다.

1) <醫宗損益> 惠庵 小像 속 識文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과 일본 杏雨書屋에 소장된 <醫宗損益>의 惠庵 小像 속에 있는 贊化堂主人 識文에는 “惠庵有像無名(惠庵선생은 肖像만 있고 이름이 없다)”라고 되어 있다.

2) <方藥合編>의 方藥合編源因
 家督 黃泌秀가 쓴 方藥合編源因에 “惠庵公 所著方藥書甚富 皆不留姓氏 但令施治者 捷於奇中(惠庵公께서 著述하신 方藥에 관한 책은 매우 많지만, 모두 姓氏를 남기지 않으시고 다만 治療를 施行하는 者로 하여금 奇拔하게 잘 的中하는 데에 이르게만 하셨다)”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들 泌秀는 아버지 惠庵이 姓名을 밝히지 않으려고 한 뜻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Ⅲ. 고찰

 <本草附方便覽>, <醫宗損益>, <醫宗損益附與>, <醫方活套> 등 惠庵의 저서들에서 서문은 모두 惠庵題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 遺稿인 <方藥合編>에서도 標題에 惠庵이란 號만 쓰고 姓名은 드러내지 않았다. 惠庵이 이렇게 姓名을 밝히지 않은 결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은 惠庵의 有號無名을 당연하게 여겼음을 <醫宗損益> 惠庵 小像의 識文과 <方藥合編>의 方藥合編源因을 통해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惠庵의 이름이 改名 전 黃道淳, 改名 후 黃度淵으로 나오는데 惠庵이 지은 서적에서는 姓名을 밝힌 것은 한 권도 없다. 이로써 惠庵이 姓名을 밝히기를 극도로 꺼렸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惠庵이 생존했던 시기 전후에 간행된 다른 서적의 경우 서문에서 號와 姓名을 어떤 식으로 기입하였는지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官撰 서적의 경우는 모두 姓名 또는 號와 姓名이 倂記되어 있었고, 號만 기입한 경우는 없었으며, 일반 문집의 경우도 대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다만 <揆園史話>의 경우처럼 北崖老人이라고 姓名 없이 號만 적은 책이 드물게 있을 뿐이다.

 <燕行日記>에 나타난 黃惠翁의 글을 보면 惠庵이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딛고 御醫로서 크게 성공하여 燕行까지 참여한 자신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御醫 惠庵에게는 名門家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서 자신을 내세우기 창피하고,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본인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惠庵이 名門家에서 태어났더라면 굳이 저서에서 姓名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惠庵이 책을 지으면서도 惠庵이라는 號만 사용하고 姓名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로 추정되는 渼隱 또한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 內紙의 識文에 스승의 뜻을 헤아려 본인의 姓名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통해 惠庵이 저서에 姓名을 밝히지 않고 號만 기입한 이유는 御醫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를 지우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번 연구에서 御醫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던 惠庵의 苦惱를 엿볼 수 있었다. 향후 惠庵이 姓名을 밝히지 않은 것과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진전된 연구를 기대한다.

 

Ⅳ. 결론

 惠庵이 저서에 姓名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추론한 결과 惠庵은 御醫로 성공한 후 불우했던 과거를 지우고 名門家 출신이 아니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저서에 姓名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1. 구현희, 황도순 수택본(手澤本) 『연행일기(燕行日記)』의 발굴과 의의, 한국의사학회지, 2018:31(2):17-26.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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