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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여행을 떠나보니 뜻밖의 수확이 생기더라
도서비평┃여행의 이유
2019년 09월 06일 () 06:00:57 강솔 mjmedi@mjmedi.com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좀 수상하다고 느꼈다. 글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박학다식하게 말 잘하는 작가를 보면서 글은 멋 내는 문장들이 많지 않을까 혼자 의심했다. 현학적인 작가일거라고 마음속에선 이미 단정을 내렸다. 글을 읽어볼 생각이 없었는데 생일 선물로 친구가 이 책을 보냈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간

이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서로의 생일에 책을 보내주는 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병원 수련의를 마치고 결혼하기 직전, 친구와 함께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던 친구 덕에 그때만해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던 터키에 갔다. 막 21세기가 되었던 때다. 밤이면 버스를 타고 자면서 도시를 이동하고, 카파도키아에서 하루 종일 걸었던 여행은 그 뒤의 어떤 여행보다 아름다웠다. 어느 도시에선가 핫산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이들과 가족이 많았던 핫산 아저씨가 자기 집에 초대를 하셨다. 한국에선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친구가 여행의 계획을 취소하고 그 아저씨를 따라가자고 했다. 나는 질겁을 하고 말렸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친구가 걱정하지 말라며 원래 여행지에선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자유여행이 거의 처음이었던 나는 많이 무서웠다. 결국 나 때문에 핫산 아저씨의 대가족을 만날 기회를 놓쳤다.

친구가 김영하의 이 책이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이라고 얘기하였다. 나도 기대 없이 일요일 오후 책을 슬렁슬렁 읽기 시작했다. 어머나, 몇 장을 읽기도 전에 마음이 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작가는 중국에서 추방당했던 경험으로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에서 추구하는 표면적인 목표와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내면의 목표 – 여행을 하고 보니 엉뚱하게 얻어지는 어떤 소득 – 이 있더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점에 더욱. 오딧세이아의 여행, 작가 자신이 어려서부터 강제적으로 옮겨 다녔던 시간들과,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여 여행하는 것, 자신에게 여행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얘기하며 그는 인생과 삶과 인류에 대해서 슬쩍, 넌지시 말한다. 결국 인생은 여행이고 인류는 여행자임을.

내가 원했던 목표라기보다 뜻밖의 소득을 얻었던 내 결혼과 내 일을 떠올리며 모든 여행에서 얻어지는 <뜻밖>의 수확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마이너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은 없었을 야구선수들이 결국은 마이너리그가 그 인생 여행의 종착점이었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인생에는 <뜻밖>의 소득들이 있는 것이다.....

멋 내는 문장을 쓰지 않을까? 자기가 아는 것들을 현학적으로 드러내지 않을까? 하던 내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고, 전혀 다른 사소한 일화로 시작해서 그 얘기까지 매끄럽게 흘러갔다가 나도 그런 생각이 맴도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인생에 대해서 툭, 치듯이 알려준다. 화장을 하지 않은 듯 보이는 맨 얼굴이 사실 정말 화장을 잘 한 얼굴이듯이 술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퇴고를 많이 거쳤을 것으로 짐작되는 선명한 글이었다. 문장들이 껄끄러우면 눈이 간질거리고 호흡이 불편하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데 이 책은 호흡을 따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데다가! 삶에 대한 통찰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맞아 여행이라는 게 이런 거야, 이렇게 삶이 곧 여행인거지, 우리는 지구별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구! 혼자 신나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핫산 아저씨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환대에 대해서 작가가 썼던 장면에서였다. 작가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낯선 이에 대한 환대들을 읽으며 핫산아저씨가 떠올랐다. 두 젊은 동양 아가씨에게 터키의 호감을 보여주었던 핫산 아저씨를 따라가지 않았던 그 순간을 이십년 만에 후회했다. 그때 갔었어야 했는데. 그러면 나는 내가 예정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삶을 마주쳤을 것을. 이제는 알고 있는데, 살다보면 내 계획대로 되는 일은 참 적고 계획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나더라는 것을. 길이 구부러지면 거기엔 또 다른 길이 연결되더라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놓쳐왔을 많은 핫산 아저씨들이 또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삶의 곳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도, 여행을 떠나기 두려워하는 사람도, 매일 한의사 말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도, 전혀 한의사로써의 삶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도, 그 누구에게도 썸바디와 노바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여행의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책을 덮으며, 이 삶이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고 느긋해지는 일요일 저녁을 맞이할 수 있다. <여행의 이유>를 읽어야할 이유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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