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體質鍼에 原理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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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體質鍼에 原理가 없다니
  • 승인 2019.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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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1] 入門

나는 1997년 봄에 8체질의학에 입문했다. 입문을 권했던 정인기 선배1)가 자료집을 한 권 주었다. 동국대학교 한방병원 침구과에서 1996년 1월에 만든 ‘8체질 침법 정리집’이다. 그리고 배철환 선배가 청년한의사회에서 강의2)한 내용이 담긴 VHS테이프를 함께 받았다. 그런데 이 비디오테이프는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복사되어서, 영상 속의 배철환 선배가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는지 분간하기가 곤란한 수준의 화질이었다.

그리고 입문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초(年初)에 샀던 『8체질건강법』3)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 충북 제천시에 있었고, 위 자료가 입문 당시에 내가 접한 8체질 정보의 전부였다.

정인기 선배가 자료집을 주던 날 한의원에서 쓸 만한 체질침 처방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례로 읊어 주었다. A4 한 장 정도의 분량이었다.

내가 KZP4)를 알게 된 것은 입문 후에 1년 반 정도 지나서였다. KZP를 알기 전까지 요통 환자에게 쓴 처방은 [KZp / KZp+KVp / KZp×3 / KZp+KBp]5) 이런 처방들이었다.

당시에 고단방까지도 알고 있었던 배철환이 한의사통신망 동의학당에서 1994년 8월부터 공개한 것은 체질침 기본방과 2단방이 끝이었다. 배철환 선배는, 권도원 선생이 처방의 추가 공개를 막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권도원 선생은, 후학들이 처방을 운용할 능력이 안 되므로 높은 단계의 처방을 알려줄 수 없다고, 2013년까지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었다.6)

그렇게 나는 체질침 임상의 시작부터 정보에 굶주렸고 늘 처방에 목이 말랐다.


[2] 蒐集癖

수집벽은 목음체질의 특징이기도 한데 내 수집이력도 다채롭다. 초등학교7) 때부터는 우표, 경제적 곤궁기에는 껌 종이, 대학 때는 시집(詩集)을 모았다. 8체질의학 입문 이후에는 체질침 처방을 수집했다. 물론 처방이 수록된 자료를 수집한 것이었지만 처방에 대한 궁금증은 늘 끝이 없었다.8)

‘체질침 처방’은 8체질의사가 치료의 기술을 완성시키는 필수 요소다. 종종, 자신이 전 인류의 질병을 다 고쳐줄 것도 아니면서, 체질침 처방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만 아는 구중심처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Onestep8.com 개설자란 타이틀이 한의사 사회에 알려져서 각지에서 자료를 보내주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얻은 자료를 정리해서 Onestep8.com을 통해서 아낌없이 공개했다. ‘자료의 공개와 공유’는 내가 Onestep8.com을 열던 초심(初心)이다.9)

사실 나는 치료보다는 8체질의학의 원리 탐구에 더 흥미가 있다. 특히 체질침 처방이 운용되는 원리를 궁리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그러려면 다양한 처방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처방 정보라는 것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충실한 정보가 되려면 최소한 체질과 병증, 그리고 침 처방이 온전히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갖춘 처방 정보는 많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니 만약에 어떤 체질의 어떤 질병에 어떤 처방을 운용하여 어떠한 치료경과를 밟았는지 기록되어 있다면 아주 훌륭한 정보가 된다. 그런 자료가 바로 임상보고서이다.

처방이 어느 정도 쌓이자 이번에는 임상례를 구했다. 처음 임상례를 구하던 시기에는 공개되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2002년 3월에 새로운 서버로 옮기고 Onestep8.com을 개편했을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이 [임상보고란]이었다. 여기에 열성 회원들의 임상 보고서들이 축적되었다. 내가 수집한 체질침 처방 자료들과 Onestep8.com이 축적한 임상보고서를 결합하여 만든 것이 「Onestep8.com 임상자료집」이다.10)

이것을 Onestep8.com에서 기금을 모아서 자체 출판하려고 했다. 사실 출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이것이 이미 편집을 마친 파일 형태였으므로 인쇄소에서 출력해서 제본을 하여 책자 형태로 만들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계획을 취소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원고를 읽어보니 참으로 부끄러웠고, 어쩌면 쓸 데 없는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이 때 정리해 둔 자료가 「의료인을 위한 체질학교」11)의 심화반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임상 8체질의학』 12) 을 만들 때도 기반 자료가 되었다.

 

[3] 脈絡의 探索

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 속에 빈 곳이 있다면 앞뒤의 맥락을 궁리해서 빈자리에 들어갈 것을 색출해내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함축된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도 제법 잘 한다. 그런데 이런 궁리도 임상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현실이 된다는 것을 깨우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의료기술이나 의학이론은 실제적인 임상 경험과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허황한 주장에 불과하다.13) 아무리 훌륭한 치료처방이라도 자신이 직접 그것을 사용하여 치료결과를 도출해내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 직접경험을 통해서 그 처방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사람의 몸과 질병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만의 결과물이 『임상 8체질의학 Ⅲ』14)이다. 침 처방만 수집하는 사람에 머물렀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또 원리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고 처방을 수집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다. 처방을 수집했고, 처방을 분석했고, 처방을 탐구했고, 처방을 사용했고, 처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정리했다.

 

[4] 체질침에 원리가 없다니

2013년 11월 10일 11시 50분에, 전국한의학학술대회가 열린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김상훈 선배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15) 김 선배가 체질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10월에 나온 『학습 8체질의학 Ⅱ』를 드렸다. 그랬더니 “이 원장은 체질침에 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는 것이다. ‘네, 그런 것에 대해 쓴 책입니다.’ 했더니, 자신은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체질침에는 원리가 없는 것 같아서 이제는 쓰지를 않고 버렸다’는 것이다.

체질침의 3단방까지는 계통성이 유지되고 있고, 처방이 가진 의미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체질침 고단방에 관한 정보는 공개된 적이 없었다. 나는 체질침 고단방의 수집과 원리 탐구에 오랜 기간 몰두해 왔다. 체질침 처방은 로마자와 부호(符號)로 기록한 약속이다. 당연한 것인데, 이 기록 방식을 공유한 사람끼리는 그 의미가 소통된다.

낮은 단계일 때 체질침 처방은 언뜻 질병에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체질침 처방은 계통성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그 계통에 맞는 질병에 적합하게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염방과 살균방이 조합된 처방은 체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부계통(腑系統)의 염증 질환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환자의 상태가 좀 더 복잡해지면 이런 통상적인 적용법이 잘 들어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8체질 임상의 연차가 길어지고 체질침 운용의 실력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때에, 오히려 환자에 따라 적합한 처방을 선택하기가 용이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발전한 것 같은데 임상은 더 어려워지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잘 짜여 있는 것 같았던 체질침 처방 시스템이 오히려 미로처럼 혼란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왜 이런 것일까. 체질침 처방은 원래 질병에 고정되는 것도, 그렇다고 체질에 고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체질침 처방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고정된다. 쉽게 말하면 100명의 환자가 있다면 100개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목도하고 ‘체질침에는 원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류가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부분 말고, 모르는 부분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기술과 학문인 의학도 이런 제한적인 지식에 기대고 있다. 8체질의학이라고 더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다만 8체질의학은 기존의 의학체계가 보지 않은 다른 세계를 본다.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이 세계를 이루는 구조는 관계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물망 속에서 모든 개체와 단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망(網)을 벗어나서 순수하게 독자적인 것은 없다. 체질론은 이런 관계를 보는 학문이다. 이 관계의 망 안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相對的)이다. 체질침 처방도 그렇다. 환자 개인의 매(每) 상황에 따라 처방도 상대적인 것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계성고등학교 졸업, 경희한의대 81학번 34기 졸업.
2) 1995년 12월
3) 1996년 10월 발행
4) KZP를 처음에는 척추방, 디스크방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관절염증방’이라고 부른다. 이 처방을 운용하는 개념과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5) 입문 당시에는 2단방 하초방 표시를 p로 한다고 배웠다. 상초방은 c로 표기했다. c는 con-이고, p는 pro-이다.
   현재는 상초방은 a로 하초방은 c로 표기한다. a는 ana이고 c는 cata이다.
6) 8체질 치료에 관하여 『민족의학신문』 제892호 2013. 3. 7.  
7)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학교였다.
8) 2015년 8월 12일에 [陽體質과 陰體質에서 처방의 구조를 통해 분류한 5단방의 짝]이라는 자료를 만든 후에, 비로소 더 이상 처방 수집이 필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자료는 『임상 8체질의학 Ⅱ』 p.347~353에 실렸다.
9) 그리고 이 원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책을 쓰는 일은 이 원칙의 적극적인 실천행위이다.
10) 이 《臨床資料集》은 2002년 3월부터 11월까지 Onestep8.com의 「임상보고란」에 보고된 자료를 중심으로 하고, Onestep8.com의 가비아(Garbia) 서버 시절(2001. 5.-2002. 2.)의 임상사례 보고 자료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체질침 관련 임상사례를 모아서, 「부산체질침자료」 중의 ‘체질침 치료 各論’ 부분과 합쳐서 편집한 것이다. 편집이 완료된 것은 2002년 12월 24일이다. 당시에 나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의무실에 근무하고 있었고, 12월말로 그곳에서의 근무가 종료되었다.
11) 2013년 2월 16일에 기초반을 먼저 시작했고, 심화반 5기의 강의를 종료한 것이 2016년 3월 26일이다. 기초반과 심화반을 합하여 총 173명이 수료했다.
12) 『임상 8체질의학 Ⅰ』 2016. 5. 20. / 『임상 8체질의학 Ⅱ』 2016. 6. 17.
13) 그래서 국가의 공식 면허를 가진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내세우는 의학이론이 모두 그 밥에 그 도토리 식으로 저열한 수준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14) 『임상 8체질의학 Ⅲ』 행림서원 2018. 3. 30.
15) 내가 전화를 먼저 해서 사전에 약속을 잡은 것인데, 막상 만나고 보니 서먹했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사실 1992년에 내가 경동시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다른 선배의 한의원에서 카드놀음도 함께 하곤 했던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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