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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평행선을 긋지 않으려면
이태형원장님의 시평 ‘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를 읽고 (상)
2019년 08월 15일 () 06:16:50 정창운 mjmedi@mjmedi.com

최근 민족의학신문 시평을 통해 소개된 이태형원장의 ‘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는 현재 한국 한의계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인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더불어 한의계 내부의 정책적 결정에 앞서 한의계 전체의 한의학의 뚜렷한 학문적 토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오웬 훌리의 ‘콜레라 시대의 지식 : 19세기 미국 의료계의 분쟁’에서 드러난 미국에서의 의료의 생의학화의 사례를 들어 주장했다.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현재 한의계 내부의 여러 난맥상에 공감하는 한의사들이 적지 않을것이며, 이태형 원장님의 시평은 이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보다 긍정적인 논의의 토대를 열어갈 수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최근 20년간 급격하게 진행되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한의학의 과학화의 성과들을 살펴보면,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에 필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한의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현황을 바탕으로 몇가지 견해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한 논쟁은 가깝게는 최근의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권을 둘러싼 논쟁에서, 멀게는 동서의학논쟁에 이르기까지 한의학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된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은 근대와 비근대, 자연철학과 과학, 동양과 서양과 같은 전통적인 도식을 통한 논쟁의 구도를 띠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논쟁에서의 한의학의 모습은 한쪽 극단에서는 근대에 대한 비판으로서 기능하는 탈서구문화의 이상향으로서의 한의학으로 그려지며, 그 반대의 극에서는 한국의 의사들이나 엄격한 과학 학술지에서의 비평에 등장하듯 현대과학이 수용할 수 없는 잘못된 학문인 한의학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한의학으로서 그려진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형태를 실제 사회에서 구현하는 사람들인 한의사들은 그 양쪽 극단이 아닌 중간 어딘가의 지점에 자신들의 의술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양 극단이건 절충적 시각이건 위에 언급된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선 모두가 한의학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 기원이 서구일뿐, 근대의 다양한 학술과 지식들은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일련의 누적적 활동을 통해 진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발전해온 과학으로서의 의학인 생의학은 그 이외의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을 가지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철저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의 과학이 쌓아올려온 논리적, 이론적, 기술적, 실제적 성공을 반영하는 것이고, 이 이외의 방법론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이러한 방법론이 가진 철학적 기반을 검토하다보면 이 이외의 방법을 통한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존재가 가능한가? 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체득하고 실제 과학을 만드는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한의학이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쌓아올려온 지식체계들과 이질적이며, 그러한 엄격한 이론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신뢰할 수 없고, ‘과학’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을 ‘과학주의’라고도 낮춰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얼마전 한의사 사회에서 회자된 치과의사 이성오의 “한방과 의료 그 사이”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시각은 대중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사회적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아직까지는 기존의 과학을 대체할 만큼의 위상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현재의 한의학은 다른 다수의 현대학문들이 이미 과학적 방법론이 새롭지 않은 현대에 들어 만들어졌거나, 혹은 연금술의 화학으로의 전환, 중세의학의 현대의학으로의 전환이 과학적방법론을 통해서 재주조(再鑄造)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의학이 현대의 주류 학문에 있어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비과학’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의학은 비과학이므로, 사라져야 할 대상인가? 일찍이 김두종이 한의학을 ‘민속경험방’이라고 한 바와 같이 현재 한의학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이론들은 검증되지 않았거나, 검증될 수가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론들이 한의사의 실제 임상현장에서의 경험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한의사들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것들에 기반한 이런 이론체계가 현대에 와서도 생명력을 가지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이것은 지난 100여년간 한의학 이론상에 이렇다할 변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이론과는 별개로 실제 임상현장에서 사용되어온 치료방식들, 침, 뜸, 한약 등은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소위 서양의학적 침구학 (Western Medical Acupuncture)은 어떻게 한의학이 현대 사회에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경혈의 해부학적 위치를 영추의 이론체계에서 빌려온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한의학의 이론체계라 할만한 내용들이 서양의학적 침구학 체계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현대 의생명과학만을 통해서 침구 치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질병 상태에서 어떠한 작용을 통해 질병의 영향에서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보호하고, 질병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수 있게 되었다.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한의학이 ‘가능성’이 아닌 ‘실체’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중약현대화(中藥現代化)사업이 구체화되면서 본초와 방제, 처방과 다양한 전통의학적 병증들의 의미가 현대과학의 시점에서 분석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맞물려 진행된 분자생물학, 면역학, 병리학상의 수많은 발견들을 통해 왜 한약이 특정 질환, 혹은 여러 의학적 상태에 효과적인지가 더 이상 전통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명쾌하게 설명할수 있게 될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의 대사체(metabolite)와 장내미생물에 바탕을 둔 한약의 약리기전에 대한 연구들은 한약을 연구해왔던 전통적인 약리학적 접근 방식이 문제였지 결코 현대적인 시각에 기반을 둔 접근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침구학에서 일찍이 일어난 변화가 한약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 임상분야에 적용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소위 임상적 지혜(clinical pearl)로서 수많은 처방경험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많은 한의학 연구자들이 “한약의 가치는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규명하였기에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며, 이는 침구만이 아니라 한약의 이해에도 전통의학적 시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의학이란 이론체계가 현실에 적용되는 작용기(effector)인 침구 및 한약이 현대과학을 통해 운용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전통이론에 비해 한약이 더 잘 활용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한의학에 대한 극단적 거부도, 극단적 수용도, 절충도 아닌, 한의학 임상의 경험적 측면과 현대과학의 수많은 이해를 연결짓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한의학이 이미 등장한지 오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거두고 있는 수많은 학문적인 진보들은 한의학 그 자체의 성격을 바꾸며 기존의 시각들을 크게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편으로 이어짐)

 

정창운 / 청연중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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