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시평] 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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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시평] 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 승인 2019.07.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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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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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경희이태형한의원

미국의 사회학자 오웬 훌리는 그의 저서 <콜레라 시대의 지식: 19세기 미국 의료계의 분쟁>1)에서 19세기 이후 미국에서 생의학(혹은 이종의학)2)이 주류의학의 지위를 획득해 간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였다. 이 책은 한국의 한의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특히 한의학이 1951년 제도권에 진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의료체계 내 ‘생존의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시평에서는 우선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한의학이 현대에 가지는 학문적 가치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19세기의 미국 의료계는 생의학 뿐 아니라 톰슨의학, 동종요법 등과 같은 의료 체계들이 공존하며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1832년과 1849년 미국 내에서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였던 시기, 생의학이 콜레라를 치료하는데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자 이 같은 경쟁은 보다 치열해졌다.

생의학이 콜레라 치료에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자 생의학계 내부에 있어서도 위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생의학계는 기존에 질병의 기전을 중시했던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관찰을 중시하는 ‘경험주의적 관점’으로 생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바꾸려는 노력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의학계는 여전히 콜레라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못하였다. 또한 다른 의학체계보다 임상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이지도 못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1884년, 미국 생의학계는 독일의 로버트 코흐에 의한 콜레라균 발견으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동종요법 측에서도 코흐의 콜레라균 발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생의학계에서는 학문적 네트워크를 통해 코흐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주도적인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독일에서 코흐로부터 세균학을 직접 사사 받았던 윌리엄 웰치가 1893년 개설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첫 번째 학장으로 부임하자, 이를 계기로 미국 생의학계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을 발판으로 독일과 기관 간의 밀접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미국 생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기존의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다시금 ‘합리주의적 관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코흐의 영향으로 인해 미국 생의학계에서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은 임상현장에서 감별되는 환자증상이 아닌, 실험실에서의 미생물 확인을 통해 확진되는 대상이 되었다.

독일의 실험실 의학이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카네기재단과 록펠러재단의 후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카네기재단은 미국의사협회(AMA)로 하여금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미국 의과대학을 평가하는 플렉스너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제공하였다. 당시 미국의 생의학은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생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과 구분된 카네기재단의 지원과 같은 별도의 동력이 필요했다.

플렉스너 리포트에서의 평가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는데, 록펠러 재단은 플렉스너 리포트를 미국의과대학을 후원하는 평가 지표로서 활용하였다. 록펠러 재단의 후원 없이는 재정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던 미국 내 의과대학들은 플렉스너 리포트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대학 교육 방식에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미국의 생의학은 학문적 전문성과 함께 배타성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생의학이 그 학문적 토대가 항상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의료체계들과의 경합, 학문적 네트워크, 그리고 재단의 막대한 지원 등을 통해 현재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플렉스너 리포트 이후에는 미국의사협회가 존스홉킨스 모델을 토대로 생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분명하게 하려는 노력을 강하게 추진함으로써 그 결과 배타적 전문성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음도 알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한의계는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가 뒤흔들릴 수 있는 몇몇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앞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현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협회장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일원화 정책, 그리고 지난 6월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 발표한 한의학교육 평가의 방향성을 ‘세계의학교육협회(WFME) 기본의학교육 표준’에 두겠다는 평가원칙 설정을 들 수 있다. 또한 지난 2018년 9월 대한한의사협회 자문위원회에서 한국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가 제안한 “한의학은 생의학적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과, 이와 관련하여 “한의학이 생의학에 바탕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한 최혁용 협회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리하자면 현재 한의계와 관련해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은 하나 같이 ‘한의학의 생의학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최혁용 협회장은 지난 6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생회 주최로 개최되었던 한의정책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도 제기하였다. 그는 “원전 의사학 대학원 가서 배우면 된다. 원전 의사학 열심히 잘 배운다고 해서 폴리카테터 낄 줄 아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여러분들(한의대생)은 의사 역할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논리로 현대의료에서 한의사에게 요구되는 직능을 ‘폴리카테터 삽입’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동의할 수가 없다. 앞서 미국에서 생의학이 주류의학의 지위를 차지해가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 특정 의학이 전문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는 우선 그 학문의 학문적 토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문적 토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이를 기초로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전문성이 구체화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1951년 이후 지금까지도 한의계에서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사실상 없었다.3)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의학이 제도권 의학 내에서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이 더 시급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예를 들어 “과학화, 표준화, 객관화를 추구해야 한다”거나, “국제적 기준에 맞춰야 한다”거나, 혹은 “국가의료정책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RCT에 의거한 EBM이 가장 중요하다”는 등의 주장들이 그 동안 한의과대학과 부속병원, 그리고 한의학연구원 등의 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표어와 목표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노력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많은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과학화, 표준화, 객관화, 그리고 EBM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한의계가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왔다는 사실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가장 피해를 입는 대상은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한의대 학생들이다. 현재에도 학생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교과과정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 교수님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져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수업에서는 경락 개념의 임상적 의의에 대해 교육하지만, 어떤 수업에서는 경락의 존재가 부정되며, 어떤 교수님은 오수혈을 활용한 침법은 논리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 어떤 수업에서는 음양과 오행 개념에 대해 가르치지만, 또 다른 수업에서는 이 같은 사유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는 몇몇에 의해 선언적으로 정의 내려지거나, 정치적으로 선택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의학 뿐 아니라 어떤 학문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우리가 단순히 ‘생의학’이라고 부르는 대상도 앞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항상 일관된 학문적 토대를 가지고 왔던 것도 아니다. 생의학에 대해서도 막연한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필자는 한의학의 학문적 토대가 흔들리고 혼란이 가중되는 현 시점이 보다 본격적으로 한의학이 가지는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콜레라가 발생하였을 때 생의학이 미국 의료계 내에서 위기에 빠졌던 것은 무엇보다 뚜렷한 치료 효과를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한의학이 처한 상황은 이와는 매우 다르다. 많은 임상 한의사들이 경험하고 있듯이 한의학은 현대 의료 환경에서도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의 존재 가치는 환자를 배제하고서는 논의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한의학이 환자에게 의료적으로 최선의 공헌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나간다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각주
1) Whooley, Owen. Knowledge in the Time of Cholera: The Struggle over American Medicine in the Nineteenth Century. 2013.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 생의학은 biomedicine, 이종의학은 allopathic medicine의 번역어이다. 모두 현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양방의학을 지칭한다. 이종의학이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동종요법(homeopathic medicine)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비롯되었지만 현재에는 일반적으로 과학 기반 양방의학을 의미하며, 현재 미국에서는 정골의학과 대비되는 의학 개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3) 이태형. 해방 이후 한의학 현대화 논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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