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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76> - 『黎居士簡易方』②
단절된 불교의학의 遺痕을 찾아서
2019년 07월 13일 () 06:00:21 안상우 mjmedi@mjmedi.com

지난 호 중풍론에서 미진했던 특이점 한 가지를 짚어보기로 하자. ‘간이방’ 풍문에서 획기적인 논의는 ‘左癱右瘓’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氣虛한 경우, 좌우 구분 없이 瘓증이 되는 것이고 血澁한 경우, 양쪽 모두 癱증이 오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기혈이 모두 허하면 癱과 瘓 두 가지 병증이 모두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기존의 설과 차이가 있다.

   
◇ 『의방유취』에 실려 있는 『간이방』

만약 氣行은 순조로운데 혈이 澁하면 癱風이 생겨 근맥이 구급하고 오그라든다고 했으며, 血行은 순조로운데 기가 虛하면 瘓風이 되어 근맥이 늘어지고 힘을 주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니 구태여 좌우로 나누어 좌우탄탄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아가 瘓風에는 풍약만 써서는 안 되니 理氣약을 겸용해야 하고 癱風에는 益血補筋하고 거풍하는 약으로 처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방유취』안에는 여기서 언급하는 풍문보다 앞서, 총론편에 이미 『여거사간이방』에서 인용한 男女動靜說, 四大奧論, 五常大論 같은 주목할 만한 논설이 수록되어 있다. 또 오장문에는 五臟象位, 六腑象位, 五臟의 平脈, 病脈, 死脈, 眞脈, 色候, 聲音, 臭味, 主配, 五臟相涉, 病屬五臟과 같은 독특한 병론이 실려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풍문에는 독창적인 중풍론이 실려 있어, 사기로서의 풍과 정상 육기로서의 풍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잘 논변해 놓았기 때문에 초학자들이 육음사기와 육기의 변별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독할 만한 글이라고 여겨진다.(이상 533~534회 『簡易方』, 2012년 4.19일, 4.26일자 참조.)

필자가 구태여 오래 전에 일실된 고문헌인 이 책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조선시대 이후 단절된 민족전통의 불교의학의 단초를 추적하여 그 끄트머리라도 찾아보고자 함이다. 삼국시대 불교의학은 향가나 신통력 있는 고승의 道力에 의한 치병얘기가 주류이며, 삼국통일 이후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도교의학과 피차 나눠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습합되어 있고 그 특성을 쉽사리 논하기 어려운 난점이 가로 놓여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수년전부터 문화대혁명 이후 이미 오래 동안 단절된 불교의학의 흔적을 낱낱이 찾아내어 하나하나 복원해 내는 작업을 진행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별도의 연구단체를 결성하고 종단이 주축이 된 후원조직을 상시 가동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방대한 분야를 망라하여 향후에 진행될 연구총서 발간계획까지 치밀하게 구성하여 예고해 놓았다.

불교의학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할지라도 이 책의 지은이 여거사처럼 선비가 유업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였다든지, 舍巖처럼 속가를 떠나 불도의 몸으로 의학을 연구했다하여 그것이 무조건 불교의학이라 정의할 순 없을 것이며, 명료하게 개념범주를 정하는 것부터가 다급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냉대 속에 조용한 산사 속에서 인인전수로 면면히 전해져 왔을 우리 불교의학의 본래 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

작년 가을 汗蒸僧과 汗蒸浴이 고려시대 이래 佛寺에서 주로 전담해 온 전통의학의 일면임을 부각한 이후, 『佛頂心陀羅尼經』에 실려 있는 秘字印과 治病符의 불교의학적 성격을 규명하는 논고가 발표되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잔존해 있는 불교의학의 잔편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조각조각 원형을 맞춰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것은 사멸된 고대종교의 유흔을 되살리자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민족의학의 발전과정을 되짚어 정체성과 미래의학의 동력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삼기 위함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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