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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시평] 학문의 정치적 도구화를 우려한다: 한평원의 한의학교육 인증기준 개발
2019년 07월 04일 () 13:46:19 이태형 mjmedi@mjmedi.com
   

이태형

경희이태형한의원 원장

지난 2019년 6월 27일 목요일,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하 한평원)에서는 “한의학교육 인증기준 2021”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청회는 2021~2025년 적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한의과대학(원) 평가인증 기준을 소개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 공청회를 위하여 한평원에서는 “한의학교육 인증 기준 2021-2025(이하 KAS2021)”이라는 제목의 인증 기준안을 배포하였다.1)본 기준안에서는 새롭게 규정된 한의학교육 인증의 원칙을 명시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한의과대학(원)의 교육을 평가해 나갈 것인지 기준을 설명하였다.

이번에 공개된 기준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놀라움을 야기하였다. KAS2021 서두에서는 한의학교육 평가의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한평원은 2018년 6월 한의과대학(원)장협의회가 천명한 한의학 교육 방향성 및 2018년 5월 한평원 이사회가 선포한 평가인증 기준 방향성에 따라 세계의학교육협회(WFME) 기본의학교육 표준을 충족하고 그 이상의 한의학교육 수준을 유지할 것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방향과 국내 한의학교육의 기존 상황을 고려해 2021년부터 전면 적용될 한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을 제시함.”

상기 평가의 원칙에서 우선적으로 한의학교육 평가의 방향성을 “세계의학교육협회 기본의학교육 표준”을 근간으로 하겠다는 점이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다. 이 같은 원칙은 기존 2017년에 공개되었던 제2주기 한의학교육 평가인증 편람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2)최근 최혁용 협회장이 의료일원화 관련 정책을 추진하며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새로운 한의학 교육 평가 원칙의 갑작스러운 설정도 놀랍지만, 절차 상 이 같이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뒤바꿀 수 있는 변화가 한의계 전반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단순히 한의과대학(원)장협의회의 ‘천명’, 그리고 한평원 이사회의 ‘선포’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지점이다.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살펴보아도 놀라움은 이어진다. KAS2021에서 설정하고 있는 평가인증 기준 가운데 “2.3. 기초의학⋅기초한의학” 항목을 살펴보자. 여기서 ‘기초의학’은 한평원이 말하는 세계의학교육협회 인증 기준에서 볼 때 ‘생의학’, 즉 소위 ‘양방의학’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항목에서 제시된 작성 지침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3. 기초의학의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의 내용과 시간을 총 900시간 이상으로 구성 및 운영한다.”, “4. 기초한의학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을 적절히 구성 및 운영한다.”

세계의학교육협회 기본의학교육 표준을 충족하려다 보니 기초의학(양방의학) 교육은 총 900시간으로 ‘철저히’ 이루어야 하는 반면, 한의학 교육의 경우에는 그저 ‘적절히’ 혹은 ‘적당히’ 구성 및 운영하면 되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의사 결정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우선 KAS2021 평가 원칙의 근거가 된 2018년 6월의 한의과대학(원)장협의회(이하 학장협)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논의한 것인지 살펴보자. 2018년 6월 16일 개최된 학장협 워크숍에서는 대구한의대를 제외한 11개 한의과대학(원)장(동국대에서는 부학장이 참석)이 참석하였으며, 이 외에도 대한한의사협회의 최혁용 회장과 송미덕 학술부회장, 한평원의 신상우 원장과 서동인 선임연구원, 그리고 경희대 인창식 교수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한의과대학 교육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었으며, 더불어 이재동 경희대 한의대 학장이 만장일치로 새롭게 학장협 회장으로 추대되었다.3) 교육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안건으로는 “세계의학교육협의회(WFME) 인증”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학장협과 대한한의사협회, 그리고 한평원은 WFME 기본의학교육 기준 이상의 충실한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계속 점검하고 일치된 노력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4) 

그런데 이 워크숍에서 논의된 사항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우선 제기하고 싶은 것은 한의과대학(원) 교육의 세계의학교육협의회 인증과 관련하여 한의과대학(원)장협의회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논의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재동 교수는 지난 2018년 3월, 학장협 워크숍 불과 3개월여 전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신임학장으로 부임하였으며, 6월 학장협 워크숍 자리에서 학장협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학장협 회장으로 추대되자마자 학장협을 통해 결정된 안건이 KAS2021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가 학장 취임 인터뷰에서부터 “한의과대학의 세계의학교육기관 목록(WDMS) 등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였지만,5) 그렇다고 하더라도 6월 개최된 학장협 워크숍까지의 3개월이라는 기간이 한의과대학 교육의 방향성을 바꾸는 문제의 논의를 위해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가 단순히 학장협에서의 합의로만 결정되어 한의계 전체에 ‘천명’될 수 있는 사안 또한 아니다.

학장협과 대한한의사협회, 그리고 한평원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학장협 워크숍이 한의과대학의 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기 때문에 신상우 한평원 원장이 참석한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최혁용 협회장은 왜, 어떠한 자격과 목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KAS2021 평가 원칙 구성의 또 하나의 근거인 2018년 5월 개최된 한평원 이사회에서의 논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의신문 기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5월 13일 한평원은 제2회 이사회를 열고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의 기본의학교육 표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였으며, 이 결의문은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의 권고에 따라 논의를 거쳐 최종 의결되었다고 한다.6)

여기서 또 다시 물음이 제기된다. 왜 한평원의 결의문이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에 의해 최종 의결되어야 하는 것인가? 한의과대학 교육의 기준을 세우는 한평원이 대한한의사협회의 산하 기구인 것인가? 한의과대학의 교육 기준은 한의사협회 정책 기준에 따라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가?

여기에 언급된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의 목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최혁용 한의협 회장, 최도영 대한한의학회 회장,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 이응세 한약진흥재단 원장, 손인철 한평원 원장, 이재동 한국한의과대학 학장협의회 회장, 이기준 한의협 시도지부장협의회 회장, 권영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원장, 이은경 한의협 기획이사 및 한의학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자문단의 구성 멤버로 소개되어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에 최혁용 한의협 회장 본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기존 한평원 원장이었던 원광대 손인철 교수는 사임하였고, 새롭게 부산대 신상우 교수가 한평원 신임 원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부임한 신상우 한평원 원장은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의 권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대한한의사협회와 한평원 간의 흥미로운 관계는 다음 한의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혁용 협회장이 협회장 당선 직후인 지난 2018년 2월 개최된 한평원 이사회에서 한평원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이다.7) 기사에 따르면 기존에 이사장을 맡고 있었던 신준식 이사장은 “한평원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의협 회장이 이사장을 맞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하였으며, 이후 최혁용 협회장이 만장일치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정리하자면 2018년 5월 13일에 열린 한평원 이사회는 최혁용 협회장 겸 한평원 이사장에 의해 개최된 자리였으며, 같은 날 한평원 이사회를 통해 도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의 기본의학교육 표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결의문은 최혁용 협회장이 포함된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단의 권고에 따라 최종 의결되었다. 한평원 의사결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최혁용 협회장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부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평원은 2016년 교육부로부터 한의과대학 평가인증 인정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며, 이로써 의료인 양성기관의 질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평가와 인증을 위한 권한을 부여 받았다. 특히 한평원은 한의학 발전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현 한의계 상황 속에서 한의학 교육의 지향점을 설정해야 하는 임무까지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한의과대학(원)의 교육 실태를 평가하는가는 곧, 한의과대학이 어떠한 교육을 추구해 나갈지에 대한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학문의 영역’은 ‘정치 혹은 정책의 문제’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분리되어서 논의되어야 한다. 학문이 나름의 기준점 없이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면 이는 더 이상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임상의학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는 ‘환자’이지, 한의학의 학문적 특성을 간과한 무조건적인 ‘의료일원화’를 위한 정책 추진이 아니다. 한의학 교육을 책임지고 계신 한의과대학의 교수님들과 더 많은 한의사분들이 이 사안에 관심을 기울여 한의학의 방향성이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천명’되거나 ‘선포’되지 않도록 노력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각주

1)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한의학교육 인증 기준 2021-2025>. 2019.06.

2)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 제2주기 한의학교육 평가인증 편람>. 2017.04.

3) 한의신문. <한의과대학 학장협, 세계의학교육 기준 충족 위해 노력 ‘결의’>. 2018.6.19. http://www.akomnews.com/?p=398275

4) 민족의학신문.<전국 한의대 및 한의전, WFME 기준 이상 교육 시행 한다>. 2018.6.21. 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98

5) 민족의학신문. <“한의대 교육, 임상 현장에서 역량 강화할 수 있도록 힘쓸 것”>. 2018.3.15 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34476

6) 한의신문. <“한의학 교육 방향 명확히 규정하는 결의 필요” 한평원, 제2회 이사회 개최...세계적 의학 교육 흐름에 발맞추기로>. 2018.5.14 http://www.akomnews.com/?p=396211

7) 한의신문, <“교육 통해 의사 역할 수행할 능력⋅자격 있다는 것 보여줘야” 한의학교육평가원 이사회, 최혁용 신임 이사장 선출>. 2018.2.22 http://www.akomnews.com/?p=39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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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규
(211.XXX.XXX.137)
2019-07-04 16:59:35
좋은 시평에 감사드립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학문의 출발과 전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섣부른 통합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가르치면 더 좋은 언어능력이 개발될까요? 한국어는 한국어 답게, 영어은 영어답게. 통합은 그 이후입니다.
한의학은 한의학 답게, 서양의학은 서양의학 답게 발전하면서 대등한 학문적 교류가 있을 때 국민과 인류의 건강에도 더욱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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