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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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
  • 승인 2019.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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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이상한 정상 가족

우연히 드라마를 보았다. 남친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미 사랑이 식었던 여자는 남친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이 남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분노하고, 여친의 헤어지자는 말을 무시하며, 이 여자를 말려야한다고 얘기하는데, 이유는 새로 등장한 남자가 미혼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 남친은 그 남자가 미혼부라는 이유로, 헤어지자는 여자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며, 자기보다 못한 남자라고 생각해서 분노한다. 이 드라마에서 남자가 미혼부라는 사실은 갈등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양쪽 가족 모두 파란만장 폭풍이 몰아칠 예정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김희경 著, 동아시아 刊

이 책은 처음에 묻는다.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가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대의 현장은 끔직하다. 부모에게 학대당했는데 그 아이를 다시 부모에게 데려다주는 친권. 학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녀의 교육적 체벌에는 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호함이 갖는 문제들.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은 옳지 않고 <자녀살해 후 부모 자살>이라고 불러야한다는 구절들. 한 장 한 장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엔 부모가 엄격하게 이성을 지킨다면 체벌도 훈육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나? 얼마나 애를 남겨두기 어려우면 부모가 아이랑 같이 죽겠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은 아이가 나와 별개의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엄마가 되었을 때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잘 가르치고 보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한 존재로써 존중했는가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나의 보호가 필요한 이유는 이 아이가 약자이기 때문이지 부족하거나 미완성의 존재라서가 아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생명을 따로 지니고 태어난 이상, 아이는 그 나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한 <인간>인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들은 중학생이었다. 매우 섬세한 아이였고 키우면서 나는 때마다 많이 울었다. <아이 키우기가 제일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어떤 분이 <아이는 키우는게 아니고요. 아이가 자라는 거지요>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이 책을 읽은 후 아이가 한 사람으로 온전한 개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서야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동시에 아들의 인생이 나 때문에 결정적으로 잘되거나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몫이고 작품이니까..... 그 무렵 아들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좀비처럼 살았는데 이젠 세상의 여러 일들에 대해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토론하고, 엄마가 자기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종 얘기한다, <엄마는 꼰대는 아니지>라고. 아직도 아들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구가 훅 올라올 때, 명문대를 척척 들어가는 엄친아들이 부러울 때, 나는 이 책을 떠올린다. 방임 못지않게 과보호도 학대이다. 진료실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 중에 고등학생인 아이가 똥을 하루에 몇 번 싸는지도 엄마가 대답하시는 분들이 있다. 숨도 쉬지 않고 얘기하시는 엄마 옆에 그 아이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보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혼부는 비정상가족이고, 그래서 정상 가족에선 터부시한다. 가족 내의 학대,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에 대한 차별,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들, 사회적 안정망이 부족해서 오롯이 가족이 모든 것을 떠안고 매일 쫓기며 생활하는 많은 엄마들, 가족이 나에게 무거운 짐일 뿐인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돌봄, 책임, 계약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인정 하는 것,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을 이 책에선 꼽았다. 공감의 의미에 대한 의미심장한 구절을 덧붙인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한다’고.

그렇다, 아픔에 같이 눈물 흘리는 공감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내가 잘 몰랐던 개념들을 명확히 알고, 내 생활에 바꾸어 적용하고, 사회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이성적 공감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20190626

강솔 / 소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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