惠庵이 燕行 중에 남긴 진료기록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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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이 燕行 중에 남긴 진료기록에 대한 연구
  • 승인 2019.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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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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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36)

Ⅰ. 서론

 惠庵이 남긴 서적으로는 <本草附方便覽>(1855), <醫宗損益>(1868), <醫宗損益附餘>(1868), <醫方活套>(1869), <方藥合編>(1884) 등이 있다. 최근 구현희1)에 의해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 <燕行日記>2)가 惠庵이 黃度淵으로 改名하기 전인 1849년에 저술한 것임이 밝혀졌다. <燕行日記>는 일기체 형식의 筆寫本으로 惠庵의 진료기록이 있는 첫 저서로서 의미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惠庵이 燕行 중에 남긴 진료기록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惠翁과 惠庵

 <燕行日記>의 崔日奎 서문에는 “是時同僚黃司果惠翁, 亦以太醫特蒙 天恩.(이때 동료인 司果 黃惠翁도 太醫로서 특별히 天恩을 입었다.)”라고 되어 있다(그림 1).

그림 1. <燕行日記> 서문의 惠翁 기록

 구현희1)는 다음의 네 가지를 근거로 黃惠翁이 惠庵 黃道淳과 동일 인물이며, <燕行日記>의 저자임을 밝혔다. 첫째, <조선시대 의관총목록>에서 黃道淳이 奏請使行으로 갔던 연도와 黃惠翁의 <燕行日記> 저술 연도가 철종 1년(1849)으로 일치한다. 둘째, 함께 使行을 했던 沈敦永의 <燕行錄>을 통해 일행 중 御醫가 黃度淳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셋째, <燕行日記>에 기록된 黃惠翁의 書啓와 <承政院日記>에 보이는 黃道淳의 書啓 날짜와 장소가 일치한다. 넷째, <燕行日記> 서문의 白文(陰刻) 藏書印이 ‘黃道淳印’이다.

 이상의 근거들로 인해 <燕行日記> 또한 惠庵의 저서임을 알 수 있다.

2. <燕行日記>의 진료기록

 <燕行日記>에는 다음과 같은 惠翁의 진료기록이 있다(그림 2).

 

그림 2. <燕行日記>의 惠翁 진료 기록

“偶入第五家, 叙其彼此之禮, 其姓王, 字滙川, 山東人也. 聞余之知醫而曰, 內外俱有病無子, 請敎求嗣之方. 余曰, 君試加味八味元, 內內則彼人之稱妻曰內內試附益地黃元, 必有庶幾之望, 遂錄授而歸, 彼合掌而謝矣.(우연히 다섯 번째 집에 들러서 서로 소개하는 예를 나눴는데, 그는 성이 王이고, 字가 滙川으로 山東 사람이다. 내가 의술을 안다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내외가 모두 병이 있어 자식이 없는데 代를 잇는 자식을 나을 처방을 알려 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加味八味元을 쓰고, 內內(그의 妻를 칭하여 內內라 함)에게는 附益地黃元을 쓰면 반드시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고 처방을 적어 주고 나오는데 그가 손을 모아 사례하였다.)”

3. <燕行錄>의 진료기록

 <燕行錄>에는 다음과 같은 黃度淳의 진료기록이 있다(그림 3).

그림 3. <燕行錄>의 黃度淳 진료 기록

 “二十三日. 半晴半陰. 留, 似有挾滯之症, 邀見黃度淳, 更服保和湯一貼.(23일. 맑았다가 흐림. 숙소에 머물렀는데, 마치 滯症이 낀 것 같아 黃度淳을 불러 보이고 다시 保和湯 1첩을 복용하였다.)”

 

Ⅲ. 고찰

 일반적으로 ‘翁’은 연장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하는데, 본인 스스로 늙었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따라서 崔日奎가 <燕行日記> 서문에 惠翁이라고 쓴 것은 동료 醫官인 惠庵이 손아래 연배이기는 하지만 동료로서 서문을 쓰는 입장에서 존칭한 것으로 보인다. 黃道淳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인물 豹菴 姜世晃은 豹翁이라는 또 다른 號를 사용하였고 <豹翁先生書畵帖>을 남겼다.3) 姜世晃이 만년에 豹翁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늙었다는 의미로 쓴 경우이다. 그러나 惠庵은 스스로를 惠翁이라 칭한 경우가 없으므로 惠翁을 黃道淳의 또 다른 號로 보기는 어렵다.

 沈敦永이 남긴 <燕行錄>4,5)에도 동행했던 御醫 黃度淳의 진료기록도 남아 있다. 구현희1)는 “황혜옹과 심돈영이 각각 기록한 일행목록을 살펴보면 주요 삼사(三使)의 이름자는 일치하는 반면 (중략) 황도순의 이름도 그렇게 오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燕行日記>에 나타난 惠翁의 진료기록에 대해 구현희1)는 우연히 들렀던 회천(滙川)에서 왕씨 부부에게 加味八味元을 처방하고 더불어 地黃元을 더하여 쓰도록 하였다고 하였는데, 제대로 요약하자면 王滙川 부부에게 求嗣方을 처방하였는데 王氏에게는 加味八味元을, 妻에게는 附益地黃元을 처방하였다고 해야 한다.

 <方藥合編> 上統 103의 附益地黃元은 <醫宗損益> 처방으로 “治血虛, 月水不調, 不能受孕”이라 하였으나 加味八味元은 <方藥合編>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上統 40의 六味地黃元 항목에 “加肉桂 附子炮 各一兩, 名八味元, 治命門陽虛.”라 하여 八味元이 보이고, 活套에서 “加減八味元, 消渴久服, 永除消疾, 卽腎氣元也.”라 하여 加減八味元 처방이 보인다.

 <燕行錄>에 나타나는 黃度淳의 진료기록은 挾滯에 保和湯을 처방한 내용이다. 그러나 保和湯은 <東醫寶鑑> 雜病篇 虛勞門에서 “治虛勞勞嗽, 肺痿唾膿血.”이라 하였으며 挾滯之症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方藥合編>에서는 처방을 찾을 수 없다. <方藥合編> 下統 39의 保和丸은 <東醫寶鑑> 처방으로 主治를 “一切食傷, 及積聚痞塊.”라 하였다. 그러므로 <燕行錄>에서 黃度淳이 처방하였다고 하는 保和湯은 沈敦永이 保和丸을 잘못 기록한 것이라 생각한다.

 향후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 외에 <燕行日記>와 같은 기행문이나 문집에 나타난 惠庵이나 惠翁의 진료에 대한 추가적인 사료의 발굴과 연구를 기대한다.

 

Ⅳ. 결론

 이상의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惠庵은 의서가 아닌 서적으로 <燕行日記>를 남겼다.
2. 黃惠翁의 <燕行日記>에는 惠翁이 求嗣方으로 加味八味元과 附益地黃元을 처방한 기록이 있다.
3. 沈敦永의 <燕行錄>에는 黃度淳이 滯症에 保和湯을 처방한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1. 구현희, 황도순 수택본(手澤本) 『연행일기(燕行日記)』의 발굴과 의의, 한국의사학회지, 2018:31(2):17-26.
2. 燕行日記,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동양문고 소장,
http://kostma.korea.ac.kr/dir/list?uci=RIKS+CRMA+KSM-WM.1849.0000-20140417.TOYO_1225).
3. 김양균, 豹菴 姜世晃의 《豹翁先生書畵帖》, 東國史學, 2008:45:1-44.
4. 임기중 편저, 연행록총간, 한국의지식콘텐츠, 2016
(http://www.krpia.co.kr/viewer?plctId=PLCT00006852&tabNodeId=NODE06770796).
5. 沈敦永 원저, 燕行錄, 晩沙學術硏究院, 2005:322.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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