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기병증과 사상인 질병분류(23) - 《자법론》ㆍ《본병론》의 오역려(五疫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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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기병증과 사상인 질병분류(23) - 《자법론》ㆍ《본병론》의 오역려(五疫癘) ①
  • 이정우
  • 승인 2019.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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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불천정(剛柔不遷正)의 오역려(五疫癘) 개요

역려(疫癘)는 대규모로 유행하는 전염병을 일컫는 용어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역려(疫癘)를 “역, 민개질야(疫, 民皆疾也)”, “려, 악질야(癘, 惡疾也)”라고 기록하고 있다. 민개질야(民皆疾也)는 “백성 모두가 앓는 병”이란 뜻이며, 악질(惡疾)이란 “고치기가 매우 어려운 병”을 뜻한다. 《석명(釋名)》은 “역, 역야. 언유귀행역야(疫, 役也. 言有鬼行役也)”라고 기록하고 있다. 역(疫)이란 어떤 귀(鬼)가 행(行)하는 일로 정의한 것이다. 《자법론(소.72)》 8장은 “오역지지, 개상염이, 무문대소, 병상상사(五疫之至, 皆相染易, 無問大小, 病狀相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역(五疫)이란 서로 전염되는 돌림병으로 남녀노소(男女老少)할 것 없이 그 증상이 똑같다는 뜻이다. 역(疫)에는 역병(疫病), 역질(疫疾), 역려(疫癘), 시역(時疫), 장역(瘴疫), 온역(溫疫), 악역(惡疫), 독역(毒疫) 등 다양한 표현이 등장한다.

역병(疫病)이란 전염병(傳染病), 돌림병으로 병원체(病原體), 즉 역기(疫氣)가 다른 사람으로 옮겨져서 일으키는 질병이다. 역려(疫癘)의 병원체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생물로 서의(西醫)에서는 바이러스로, 《황제내경》은 역기(疫氣), 려기(癘氣), 귀신(鬼神)으로 부르고 있다. 대역(大疫)이란 갑자기 출현하여 광범위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졸지에 앗아가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역병(大疫病)을 과연 침으로 치료할 수가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자법론(소.72)》 7장은 “시위근지가견, 필유도문(是謂根之可見, 必有逃門)”이라고 답하고 있다. “근지가견(根之可見)”은 뿌리를 볼 수 있다는 뜻이요, 범인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알려진 병원체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가 있겠지만 “만물자시, 오운종천(萬物資始, 五運終天)”의 법칙에 따라 전염병의 병원체 역시 풍역(風疫), 열역(熱疫), 습역(濕疫), 조역(燥疫), 한역(寒疫)의 5종류에 불과할 뿐이다.

“근지가견(根之可見)”의 근(根)이란 병원체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의미한다. 근(根)이란 “강유이간, 실수기위(剛柔二干, 失守其位)”이다. 오강간(五剛干)-오유간(五柔干)이 정위(正位)로 천정(遷正)해야 되는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토역(土疫)의 주범(主犯)은 갑강간부득천정(甲剛干不得遷正)이요, 토려(土癘)의 범인(犯人)은 기유간부득천정(己柔干不得遷正)이다. “필유도문(必有逃門)”의 도(逃)는 “달아날 도”다. “달아나다, 도망치다. 벗어나다, 면하다”는 뜻이다. 들어온 구멍이 있으니 빠져나가는 구멍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란 의미다.

 

천지이갑자 실수기위(天地二甲子 失守其位)의 오역려 기전

《본병론(소.73)》 8장은 “천지이갑자, 십간십이지, 상하경위천지(天地二甲子, 十干十二支, 上下經緯天地)”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지이갑자(天地二甲子)”는 천갑자(天甲子)와 지갑자(地甲子)다. 천상갑자(天上甲子)와 지하갑자(地下甲子)를 말한다.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다. “상하경위천지(上下經緯天地)”의 상하(上下)는 위, 아래다. 경위(經緯)의 경(經)은 남(南)과 북(北)을 세로로 연결하고 있다는 뜻이요, 위(緯)는 동(東)과 서(西)를 가로로 연결하고 있다는 뜻이다. 천갑자(天甲子)는 하늘의 운기(運氣)를 대변하고, 지갑자(地甲子)는 땅의 운기(運氣)를 대변하는 부호인 것이다.

운기학(運氣學)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의 천지지간(天地之間)의 승강왕래(升降往來)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천상갑자(天上甲子)가 갑자(甲子)가 되었다는 것은 갑(甲)이 천상(天上)의 정위(正位)로 천정(遷正)했다는 의미요, 지하갑자(地下甲子)가 기묘(己卯)가 되었다는 것은 기(己)가 지하(地下)의 정위(正位)로 천정(遷正)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천상(天上)의 갑(甲)과 지하(地下)의 기(己)는 반드시 정위(正位)에서 상회(相會)하는가? 갑(甲)이 천상(天上)의 정위(正位)에 자리하지 못하고, 기(己)가 지하(地下)의 정위(正位)에 자리잡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는가?

《본병론(소.73)》 8장은 “수유질이, 실수기위(數有迭移, 失守其位)”라고 대답하고 있다. 수(數)는 물론 오운지수(五運之數)다. 《오운행대론(소.67)》 1장의 “여문오운지수어부자(余聞五運之數於夫子)”의 오운지수(五運之數)다. 질이(迭移)의 질(迭)은 “번갈아”라는 뜻이요, 이(移)는 “옮길 이”다. “옮기다, 나아가다, 따라가다. 움직이다”는 뜻이다. “수유질이(數有迭移)”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10개의 천간(天干)은 순서에 따라 자리를 이동한다는 뜻이다. 실수기위(失守其位)의 실수(失守)는 “한 지역을 지켜내지 못하고 빼앗김”이다. 정위(正位), 즉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뜻이다.

“강유이간, 실수기위(剛柔二干, 失守其位)”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가? 강유이간(剛柔二干)의 불입(不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강유이간(剛柔二干)의 부득천정(不得遷正)에는 어떤 천재(天災)가 생기는가? 《자법론(소.72)》 7장, 《본병론(소.73)》 8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黃帝問曰, 剛柔二干, 失守其位, 使天運之氣, 皆虛乎! 與民爲病, 可得平乎? 岐伯曰, 深乎哉問! 明其奧旨, 天地迭移, 三年化疫, 是謂󰡒根之可見, 必有逃門󰡓。-《자법론(소.72)》7장-

●帝曰, 余聞天地二甲子, 十干十二支, 上下經緯天地, 數有迭移, 失守其位, 可得昭乎? 岐伯曰, 失之迭位者, 謂雖得歲正, 未得正位之司, 卽四時不節, 卽生大疫。-『본병론(소.73)』8장-

 

“천지질이(天地迭移)”는 10간(干)이 천상(天上)-지하(地下)의 천정(遷正)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실지질위(失之迭位)”의 실(失)은 “잃을 실”이며, 질(迭)은 “갈마들 질”이고, 질위(迭位)란 갑(甲)・을(乙)・병(丙)・정(丁) 등의 10개의 천기(天氣)가 번갈아 가면서 차례대로 자리를 교체하는 것이다. “미득정위지사(未得正位之司)”는 정위(正位)로 천정(遷正)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삼년화역(三年化疫)”은 천정(遷正)하지 못한 에너지는 전염병 바이러스, 즉 역(疫)으로 탈바꿈한다는 뜻이다. “사시부절, 즉생대역(卽四時不節, 卽生大疫)”은 사시(四時)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전염병이 극도로 창궐하게 된다는 뜻이다.

 

역려의 병기 이해를 위한 내용들

강유이간, 실수기위(剛柔二干, 失守其位)-강유미정(剛柔未正)으로 인한 역려(疫癘)의 병기(病機)를 이해하기 위해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알아본다.

(1) 《천원기대론(소.66)》 3장은 “만물자시, 오운종천(萬物資始, 五運終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지간(天地間)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천기(天氣), 즉 오운지기(五運之氣)를 본질로 하고 생성된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바이러스 역시 다섯 가지 범주(範疇)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강유실수(剛柔失守)로 인한 역려(疫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역(五疫)은 오강간실수(五剛干失守)로 발생한 사기이며, 오려(五癘)는 오유간실수(五柔干失守)로 발생한 사기다.

(2) 오강간(五剛干)이 상위실수(上位失守)하게 되면 사천지기(司天之氣)-중운지기(中運之氣)가 다 공허해지게 되며, 오유간(五柔干)이 하위실수(下位失守)하게 되면 재천지기(在泉之氣)-중운지기(中運之氣)가 다 공허(空虛)해진다. 《자법론(소.72)》 7장의 질문은 “강유이간, 실수기위, 사천운지기개허호(剛柔二干, 失守其位, 使天運之氣皆虛乎)”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가령무신론(假令戊申論)은 “즉지운개허(卽地運皆虛)”라고 기록하고 있다. 강유이간(剛柔二干)의 상위실수(上位失守), 하위실수(下位失守)에 따라 천운지기개허(天運之氣皆虛), 지운지기개허(地運之氣皆虛)를 낳게 되는 것이다.

(3) 역기(疫氣)-려기(癘氣)는 실사(實邪)인가? 허사(虛邪)인가? 육기불퇴위(六氣不退位)의 사기는 실사(實邪)요, 육기불천정(六氣不遷正)의 사기는 허사(虛邪)다. 육기(六氣)의 천정조만(遷正早晩)에서 만기퇴위(晩期退位)는 실사(實邪)요, 조기퇴위(早期退位)는 허사(虛邪)다. 허사(虛邪)-실사(實邪)의 분류는 강유실수(剛柔失守)에서도 동일하다. 오강간미득정위지사(五剛干未得正位之司)의 사기도 허사(虛邪)요, 오유간미득정위지사(五柔干未得正位之司)의 사기도 허사(虛邪)인 것이다.

(4) 오역(五疫)은 오강간미정(五剛干未正)의 허사(虛邪)의 변신(變身)이며, 오려(五癘)는 오유간미정(五柔干未正)의 허사(虛邪)의 변신(變身)이다. 가령갑자론(假令甲子論)은 “여차삼년, 변대역야(如此三年, 變大疫也)”-“차삼년작토려(次三年作土癘)”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각론도 변역(變疫), 변려(變癘)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역(五疫)-오려(五癘)는 강유이간, 실수기위(剛柔二干, 失守其位)로 인한 허사(虛邪)의 변신(變身)인 것이다.

(5) 강유이간(剛柔二干)의 상위실수(上位失守)-하위실수(下位失守)로 역려(疫癘)로의 변신(變身)은 언제 일어나는가? 《자법론(소.72)》 7장은 “천지질이, 삼년화역(天地迭移, 三年化疫)”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가령임오론(假令壬午論) 역시 “삼년대역(三年大疫)”, “삼년변려(三年變癘)”라고 기록하고 있다. 강유이간(剛柔二干) 미정(未正)의 허사(虛邪)가 역려(疫癘)로 변신(變身)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년인 것이다.

(6) 강유실수(剛柔失守)로 인한 허사(虛邪)를 감수하는 장기(臟器)는 무엇인가? 《자법론(소.72)》 7장에서 제시된 혈수는 「신수(腎兪)」, 「심수(心兪)」, 「간수(肝兪)」, 「비수(脾兪)」, 「폐수(肺兪)」의 배수(背兪)와 「태백(太白)」, 「음곡(陰谷)」, 「경거(經渠)」, 「대돈(大敦)」, 「로궁(勞宮)」의 오수혈(五輸穴)이다. 제시된 혈수(穴兪)를 통해 상위실수(上位失守)의 역기(疫氣)와 하위실수(下位失守)의 려기(癘氣)는 다 같이 오장(五臟)으로 침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우 / 경희삼대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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