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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 水陸數萬里를 헤맨
2019년 06월 08일 () 06:00:35 이강재 mjmedi@mjmedi.com

[1] 1966년 설날
  권도원 선생은, 1965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일본침구사회(日本鍼灸師會)가 동경상야문화회관(東京上野文化會館)에서 개최한 국제침구학회(國際鍼灸學會)에 참가하여 그의 체질침(體質鍼) 논문을 국제적으로 처음 발표하였다.1)

   
 

  그로부터 3개월 후, 경향신문 1966년 1월 22일자에 「名醫를 찾아 韓國땅에…水陸數萬里 곳곳 헤맨 美國人」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실린다. 이날은 음력(陰曆) 1월 1일, 즉 설날이었다. 아래에 기사 내용을 옮긴다.

   
 

  名醫를 찾아 수륙수만리를 헤맨 한 미국인이 21일 하오 한국땅을 찾아왔다. 10여년간의 심한 위장병으로 수척해진 몸을 이끌고 이날 공항에 내린 미국인 ‘골드링(39)’ 씨는 ‘이번만은...’하며 희망 속에 부풀어 있는 듯 했다.

  하버드대학에서 동양문학을 전공했다는 골드링 씨는 10여년전부터 위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내의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해 보았으나 허탕. 그때부터 명의를 찾아 카나다, 멕시코, 하와이 등지를 헤매다가 2년 전에 日本으로 건너왔다. 양약(洋藥) 치료에 지친 골드링 씨는 日本서 단식요법 등을 주로 하는 한편 한의(漢醫)에 몸을 맡겼으나 일본 의사들도 두 손을 번쩍. 마침 지난해 10월 東京서 열린 「국제침구학회」에서 한국 한의가 유명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일본침구학회 회장의 소개로 한방의사 權度沅(경희대 의대 강사) 씨를 찾아온 것.

  ‘한국이 나의 투병생활의 종착역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희망을 걸어보는 골드링 씨의 푹 꺼진 두눈은 애처롭기만. (昇)

  ‘승(昇)’이라고 적은 기자(記者)가 쓰던 연재 기사의 제목이 바로 ‘氣流, 空港 문턱에서’이다. 명의인 닥터 권(權)을 찾는다는 골드링 씨의 입국 일성(一聲)은, 마침 김포공항을 통한 입출국(入出國) 소식을 전하던 기자에게 바로 알려졌던 것 같다. 그런데 골드링 씨는 닥터 권의 주소나 전화번호도 없이 공항에 내렸던 것이다. 기자는 곧바로 닥터 권의 소재를 수소문했고 골드링 씨와 연결시켜주었다. 

 

[2] 오카베 소도(岡部素道 Okabe Sodo) 

오카베 소도2)는 국제침구학회가 열린 1965년 당시에 일본침구사회 회장이었다. 그래서 국제침구학회의 대회장(大會長)을 맡았다.3) 1907년 11월 20일생이니 학회가 열린 1965년에 58세였다.4) 고전파(古典派)를 지탱하던 스승과 동지들은 일찍 세상을 떴고, 그는 『六部定位 比較脈診 69難의 本治法』, 『鍼灸經絡治療』5) 등의 저서를 남겼다. 후세에 그를 경락치료(經絡治療)의 완성자라고 평한다.

  오카베 소도는 국제침구학회에서 논문6)을 발표했다. 이것은 오행침(五行鍼)을 이용하여 간염(肝炎)을 치료한 사례 보고였다. 권도원 선생은 그것이 궁금했다.

  대한한의사협회를 대표하여 국제침구학회에 참가한 대표단은 배원식(裵元植), 진태준(秦泰俊), 권도원 세 명이다. 대표단은 10월 18일에 출국했다. 그리고 일본 측으로부터 허가 받은 체류기간이 20일7)이었다. 권도원 선생은 학술대회가 끝나고 21일에 바로 귀국하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두 선생은 허가 받은 기간 동안에 일본 한방계도 방문하고 동포들의 생활상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내세워 체류하기로 하였다. 권도원 선생은 10월 27일부터 11월 5일까지 두 사람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8) 오카베 소도의 진료소는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소도시에 있었다. 

  권도원 선생은 1992년 5월 9일, 기독한의사회 두 번째 강의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가서 이 사람이 치료하는 방법을 보고 있는데, 한번도 오행적인 방법을 쓰지를 않아요. ~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한번도 오행적인 방법을 쓰지를 않아요. ~ ‘당신의 논문을 보니까 간염을 혼마의 오행적인 방법으로 치료했다고 논문이 나와 있는데, 내가 그걸 보고 당신을 찾아 왔다. 그런데 전혀 오행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오행적인 방법은 무지 어렵다. 이건 진단이 대단히 어려워서, 진단을 할 수가 없어서 쓸 수가 없다.’ ‘그러면 간염 환자는 어떻게 진단을 했길래 나았느냐?’고 물어봤더니 우연히 그랬다고 합니다. 이렇게 치료해도 안 되고, 저렇게 치료해도 안 되고, 우연히 그 방법으로 치료를 했더니, 자기도 모르게 이유도 모르게 나았다고 합니다. 아주 솔직한 고백을 하더라구요.

  오카베 소도와의 만남은 실망으로 끝났다. 도리어 오카베 씨는, ‘지금 어떤 환자를 보는데 죽을 지경’이라면서 권도원 선생에게 자신이 오래 치료하던 환자를 대신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 사람을 나중에 보내겠다고 했다.

  ‘승(昇)’ 기자는 골드링 씨가 찾는 닥터 권에게 전화를 했고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3] 골드링(Goldring)

  일본에서 오카베 소도의 소개를 받고 무작정 ‘닥터 權’을 찾아온 골드링 씨는 39세9)의 미혼 남자였고 유태인이었다. 굉장한 부호(富豪)의 아들인데 자기가 앓고 있던 위병(胃病)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고 병을 고치러 미국 전국을 돌고, 다른 나라에도 가고, 하다가 일본까지 가서 오카베 소도를 만났던 것이다. 그곳에서 치료를 해보니 낫는 것 같다가 안 되고 자꾸 시간만 끌게 되어, 그렇게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피차(彼此)에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권도원 선생이 진찰을 해보니 금양체질이었다. 체질침 치료를 했다. 다음날 바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에 머물면서 치료받기 위해 부암동에 집을 사고, 일본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줄 여자를 데리고 오겠다며 갔다. 그런데 7~8회 치료를 받고는 병이 다 나아버렸다. 골드링 씨는 같이 있던 일본인 여자의 여권이 만료되어 여권을 갱신하러 일본으로 함께 갔는데,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한국에 다시 오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외국어대학에 있는 골드링 씨의 친구가 집을 대신 처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찾아와서 골드링 씨의 또 다른 부탁을 전했다. 권도원 선생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골드링 씨가 응해 주겠다고 했다고 하면서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였다.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은 무척 익숙하지 않나. 권도원 선생이 무어라고 답변을 했을까.

  옳다. 독자들이 예측한 그대로다. 
 

※ 참고 문헌
1) 裵元植, 國際鍼灸學會의 참관기 『醫林』 52호 1965. 12.
2) 名醫를 찾아 한국땅에 『경향신문』 1966. 1. 22.
3) 대한기독한의사회 초청 강의 [권도원 선생 강의 제2강 녹취록] 1992. 5. 9.
4) 동의대 한의 강연 [권도원 선생 강연 녹취록] 1999. 12. 16.
5) 新紀會 강의 [권도원 선생 강의 녹취록] 2001. 3. 3.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권도원 선생은 1965년 10월 20일 오전에, 미국대표인 R. B. Amber의 「The Treatment of the Emotionally Disturbed-East and West」 발표 후에 두 번째로 논문을 발표하였다.
2) (1907~1984)
3) 국제침구학회 조직위원장은 일본침구치료학회(日本鍼灸治療學會) 이사장이던 하루토 키노시타(木下晴都)였다.
4) 권도원 선생은 오카베 소도를 만났던 사실에 대하여, 이후 여러 자리에서 말하였는데 그의 신상(특히 나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고의적으로) ‘오카베 소도’라는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2001년 3월에 신기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오카베 소도를 처음 만났을 때 ‘대회장 어른의 나이가 70대였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5) 1983.
6) Sodo Okabe,
   「經絡의 證明-肝臟疾患의 治驗例-
    Proof of the meridian - Therapeutic Experience in Liver Diseases-」 
    『國際鍼灸學會誌』 日本鍼灸治療學會 1966. 6. (pp. 54~68)
7) 國際鍼灸學會에 참가한 대표단의 일본체류기간은 1965년 10월 18일(출국)부터 11월 7일(귀국)까지이다.
8) 배원식 선생이 『의림』 제52호에 실은 ‘國際鍼灸學會의 참관기’ 결론에서 “인간은 만나고 또 만나는데 情이 드는 것이 常情임을 東西가 같은 바요, 정든 곳에 通事情도 述懷할 수도 있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특수한 학술 논문이 못될 바에는 해박한 지식과 能한 외국어로 통사정할 수 있으며 그리고 폭 넓은 社交術을 겸비한 漢醫學者가 가야만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强調하여 두는 바이다.”라고 강조하여 밝힌 것은, 아마도 권도원 선생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이 당시 裵元植 선생과 權度沅 선생은 모두 경희 의대의 講師였다. 그래서 배원식 선생은 참관기에서 ‘우리 慶熙大學校’라고 쓰고 있다.
9) 권도원 선생은 동의대 한의 강연에서는 골드링 씨가 당시에 47세였다고 하였고, 신기회 강의에서는  57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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