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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일을 하는 데는 순서가 중요하다
2019년 05월 17일 () 06:25:15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43대 협회의 정책이 본격적인 논란에 오르고 있다. 추나의 건강보험 급여화까지만 해도 임기 초의 성과로 인정받았지만, 추나가 건강보험을 준용해야 할 자동차보험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협화음과 함께 그 대응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협회의 정책이나 발언, 협의체 등을 협회 공지가 아닌 언론 기사나 다른 경로로 먼저 접하게 된 회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세계의과대학목록(WDMS) 문제, 의료기기 문제, 전문의 문제에 의료일원화와 한약의 건강보험 도입, 한약제제 분업 등의 협회에서 초기부터 추진해 온 정책들이 최근 몇 주 사이에 모두 논란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언뜻 보면 마치 자보 추나로 인한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건강보험과 다른 기준으로 적용된 추나의 여파 정도로만 보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협회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개의 정책이나 안건들에 있어서 결과가 기대와는 다른 실패나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회원들의 입장에서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용 가능할 부분에 대해 충분히 말해왔다면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할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불안이 표출된 것은 이전부터 협회가 불신을 초래했고 불신이 곧 협회의 전체적인 정책 전반에 대한 불안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보 추나는 단지 하나의 계기였을 뿐, 언제 터져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던 상황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자보 추나 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협회의 태도와 같은 더 본질적인 측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의사라면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접했을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 대학은 과거의 리더쉽 트레이닝을 위한 교육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따르게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하는 책이다. 대학에는 '지소선후 즉근도의(知所先後 則近道矣)'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을 할 때 무엇이 우선이고 어떤 것이 지엽적인 것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우선할 것, 먼저 할 것을 구분해 그렇게 하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현재 회원들이 느끼고 있는 협회의 정책에 대한 불안과 불만은 바로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정도에 어긋났기(失道) 때문이다.

보험 정책은 정부의 건강보험 및 보험의 정책 방향성, 재정, 이해당사자 간의 조율에 따라서 상황이 계속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꽤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라도 적절한 기회가 있다면 재빨리 포착해야 한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매번 임기응변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협회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어떤 방향의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가 이미 한참 협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문제가 제기되고 해명하는 듯한 상황은 아무래도 이해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최소한 회원들 전체와는 힘들더라도 관련 학회, 대학 등의 전문가들과 공청회나 토론회 등으로 공론화하고 논의를 하고 문제점을 짚어 보는 토론을 하는 것이 우선이 되고 필요한 부분은 연구를 맡기거나 준비를 해놓았어야 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정해놓고 설명을 뒤늦게 하겠다거나 이미 협의는 시작해 놓고 이제야 연구를 뭘 맡겨서 결과는 나중에 나온다 같은 상황이 되면 이미 신뢰의 상당 부분을 잃고 시작하는 것이 된다. 게다가 정책 추진에 있어 중요한 협회의 한 부회장이 토론 중 협회 임원의 이해상충을 공지하기로 회원들과 약속을 하고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 등은 토론에 임하는 협회의 태도 문제와 함께 협회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게 한다. 회원들과의 약속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과 과연 정부나 이해단체가 어떻게 믿고 협상이든 회의든 일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토론은 어떤 형태로든 논의를 하는 것인데 이미 결정하고, 협의체까지 만들어서 추진을 하면서 토론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부터 토론을 거쳐서 세부안을 만들고 논의를 하면서 우리의 형식을 만들어 내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에 협의체를 구성하고 협의 전엔 알려줄 수 없다거나 협상을 해봐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너무도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발언이다. 회원들에게 협의 불가능한 조건들이나 명확하게 협회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기만 해도 이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 탄핵은 가급적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될 비극적 상황이다. 특히 바로 직전 협회가 탄핵을 겪은 직후에 다시 탄핵이라는 상황을 맞이하면 치명적일 정도로 협회의 정책 능력에 손실이 생길 것이다. 탄핵은 정말 그 정도의 피해를 껴안고라도 막아야 할 정도로 회원들의 뜻에 역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나게 해서도 안 된다. 지금처럼 하면 탄핵으로 가게 된다. 부디 협회가 탄핵에 이르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선후와 본말을 갖췄으면 한다. 외부와의 협상에 앞서 회원들의 이해가 우선이다. 회원들의 불안을 선동으로 치부하기 전에 협회가 어떻게 해왔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똑같이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서 진정성 있는 모습과 함께 선언부터 하는 식이 아닌 적절하고 충분한 과정을 거치며 해왔던 것이라면 갑작스럽게 회원들의 불안과 의구심이 고개를 치켜들진 않았을 것이다(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 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그것이 바로 대학에서 강조하는 리더쉽이다. 정책에 있어 보다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절차를 갖춰 가면서 일을 하면 신뢰는 저절로 따를 것이고, 과도하게 협회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상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거나, 일방적으로 협회를 믿고 협회의 뜻을 따르라고 하면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원들이 믿을 수 있는 협회는 훨씬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고, 진심으로 한의사협회가 그런 협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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