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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한의계, 진정한 해방과 치료의학으로 정체성 확립
배원식 선생을 회고하다(2)
2019년 04월 19일 () 06:00:33 이종안 mjmedi@mjmedi.com
   
◇제헌국회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거대 의료인단체로 해를 거듭할수록 그 위상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당장 올해 신규 배출된 한의사를 포함, 한의사 면허를 발급받은 한의사의 숫자가 2만7464명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그 규모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대한한의사협회의 모습과 한의사의 위상은 불과 70여 년 전, 한의학과 한의계의 진정한 해방과 치료의학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신 선배 원로 한의사 분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야 말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리 한의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의료인으로서의 지위와 위상은 선배 원로 한의사분들의 노력이 마중물이 되어 얻어진 결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한의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20~30대 초반의 젊은 한의사들의 경우 현재의 한의사제도가 언제 확립되고 정착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시 말해 한의사협회와 한의계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사 제도, 선배 한의사들의 각고의 노력에 대한 결실

많은 한의사들이 국가로부터 의료인으로서 면허증을 부여받고 진료를 하는 현재의 한의사 제도가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했던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의사 제도의 탄생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서슬 퍼런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정국과 6.25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선배 한의사들의 피와 땀이 어우러진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의 역사를 배우듯 우리 후배 한의사들 역시 자신의 뿌리가 되는 한의계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처절한 현장 속에서 한의학과 한의계를 지키기 위해 도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 한의사들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통해 한의사와 한의계의 발전, 나아가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의 확고한 위상 정립이 가능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현재의 한의사 제도가 정착된 것은 1951년 9월에 공포된 국민의료법이 그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한의사 제도의 확립을 위한 노력은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조헌영 선생

먼저 현재의 한의사 제도의 확립에 대해 거론할 때 우리 후배 한의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선배 한의사 분들이 있다. 한국 한의계를 대표하는 조헌영 선생을 비롯해 박호풍, 김영훈, 박성수, 방주혁, 배원식 선생, 그리고 가양동 대한한의사협회 본관 입구에 기념비가 세워진 오인동지회의 이우룡, 윤무상, 우길룡, 권의수, 정원희 선생 등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이들 선배 한의사분들 외에도 한의사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분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활동을 하신 탓에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의 한의사 제도 확립을 위한 선배 한의사분들과 한의계가 전개한 노력과 활동은 크게 6.25 한국전쟁 이전 시기와 전쟁 중이던 부산 피난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의학 말살 정책에 반발하고 의료인으로서 한의사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전쟁 중이던 1951년 국민의료법의 제정·공포로 확립됐기 때문이다.

일제가 패망한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일제가 시행하던 조선의료령은 폐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존속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새로운 국민의료법을 제정, 국민보건향상 및 의료업자의 양성을 도모하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추진을 담당한 보건부는 1950년 2월 ‘보건의료행정법안’을 국회 문교사회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보건부가 제출한 보건의료행정법안은 시작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법안의 제1장 총칙(의료인)에 의사 치과의사제도만을 포함하고 있었고 한의사는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가 강압으로도 끝내 말살시키지 못하고 다만 의생으로 격하시켰던 한의사를 해방된 조국에서 배제하려 하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혹심한 천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한의사 배제 보건의료행정법안, 전국 한의계 강력 반발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의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당장 전국 곳곳에서 12만 통에 이르는 반대 진정서가 국회에 쇄도하는가 하면 국회에서는 유일한 한의사 제헌국회의원이었던 조헌영 선생이 이의 저지를 위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잘 알려진 대로 조헌영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한의학의 명맥을 잇고자 ‘통속한의학원론’을 저술하는 등 각종 학술활동을 전개한 한국 한의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되는 ‘승무’라는 시를 쓴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조지훈 시인의 부친이기도 하다.

조헌영 선생은 1900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사법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구 한말 의병장을 지냈던 조부 조승기 선생의 영향을 받아 일본 유학시절에는 재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학우회장, 신간회 동경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운동을 했고, 1935년에는 조선어학회 표준말 사정위원, 큰사전 편찬전문위원, 1945년에는 임시정부 및 연합군환영준비위원회 사무차장 등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조헌영 선생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오랜 기간 전개된 한의학 부흥 논쟁의 중심에서 한의학의 부흥을 역설하기도 했다. 조헌영 선생은 지면을 통해 당시 양의사인 장기무, 정근양, 약사 이을호 등이 제기한 한의학에 대한 견해들을 내용에 따라 찬동을 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한의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유도해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이처럼 한의학과 한의계에 무한 애정을 지녔던 조헌영 선생이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국회 내에서 강력히 반대하고 전국의 한의약계가 크게 반발하면서 보건부가 제출한 보건의료행정법안은 결국 폐기됐다.

이로써 일제 강점기에 이어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말살 위기에 처해있던 한의학과 한의사 제도는 일단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한의사 제도를 말살시키고자 획책하는 불순한 기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의 부흥과 제도권 진입을 위해 노력해온 조헌영 선생이 불행하게도 6.25 한국전쟁 기간 중 북으로 납북되면서 한의사 제도 확립을 위한 노력과 활동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그리고 한의사 제도 확립이라는 숙제는 전쟁 기간 중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피난살이를 하던 박호풍, 김영훈, 박성수, 방주혁, 배원식 선생, 그리고 부산 경남 지역 한의계를 대표하며 활동하던 오인동지회의 이우룡, 윤무상, 우길룡, 권의수, 정원희 선생 등에게 공이 넘어가게 된다.

(계속)

 

이종안 / 배원식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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