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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31> 평범한 일상생활의 기적 –치매를 경험하며
2019년 03월 22일 () 06:00:42 강형원 mjmedi@mjmedi.com
   

강형원

원광대 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계절은 우리의 꿈과 일상을 이끌며 찾아온다. 정원을 가꾸는 게 꿈인 아내는 봄이 오자 화분갈이와 구근식물을 들여오고 꽂을 보기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우리의 일상은 변화하는 계절과 함께 연습을 거듭하며 풍성해지고 추억이라는 선물을 얻게 된다.

자연은 위대하고 우리는 그 위대함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다. 일상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시간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소중함은 더 이상 소소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할 때 더욱 간절해진다. 아침 기상과 함께 밥을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혹은 집안일을 하며 낯을 보내고 해가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고 저녁을 보내는… 평범한 하루의 일상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이 안 될 때의 불편함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말한다. 하루 일상은 기적이라고!

정신과 진단에서 일상생활의 가능 유무는 진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울하면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으로 본다. 불안이 크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걱정거리일 수 있다.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인 DSM-5 진단에서 어김없이 주 증상을 나열하고 함께 따라오는 진단 범주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느냐는 것이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은 정신과 진단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많은 종류의 질환들이 그렇겠지만 치매의 예만 들어도 일상생활 수행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기억력 저하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장애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때 비로서 치매라고 한다. 만약 건망증이 있는데 나름대로 메모하고 확인하면서 약속을 지키고 자기 생활을 해나간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치매로 진단하진 않는다. 이렇게 객관적, 주관적 기억력 저하가 관찰되지만, 직장, 가정 등에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으면 치매의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범주로 보고, 일상생활에 하나, 둘 문제가 생기면 치매로 본다.

사람이 태어나 일상생활능력을 독립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두발로 걸어 다닌다는 것, 하늘 향해 두팔 펼 수 있다는 것, 음식을 삼켜 넘길 수 있다는 것, 함께 만나 먹고 마시고 웃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복합적인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자를 신체적 일상생활능력(physic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PADL)이라 하고, 대소변가리기, 화장실사용, 세면, 목욕하기, 식사, 옷입기, 이동, 보행, 계단 오르기와 같은 기본적이고 육체적인 기능들을 포함한다. 후자는 도구적 일상생활능력(instr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IADL)이라고 하는데, 옷, 안경, 지갑, 열쇠, 휴대폰 등 소지품 관리하기, 청소, 설거지, 집안수리 등 집안일하기, 물건사기, 음식 요리하기, 돈관리 및 재정적인 일수행, 대중교통이용하기, 문단속하기, 약속과 모임 지키기, 약복용, 여가활동 등 보다 복잡한 기능들을 말한다. 치매환자들에게는 인지기능저하로 인해 도구적 일상생활능력(IADL) 저하가 흔히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함께 사는 가족이 일상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알려주는 경우가 많게 된다. 또한 치매환자가 증상이 호전될 때도 보면,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혹은 엄두를 못 냈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좋아지면서 주변사람들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받게 된다.

일상생활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 본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도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시간적, 경제적,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부담이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이유이다. 고열감기로 어린아이 한명만 입원해도 온 집안의 리듬이 깨져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잠깐 입원해서 괜찮아지는 수준이 아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긴 터널 속에 치매환자가 가족 내에 있다고 하면, 가족 전체가 부담해야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다행히 이런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확대 시행하면서 치매환자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가족들이 안고 가야만 하는 책임은 크기만 하다. 여기에 망상, 환청, 야간수면장애, 배회, 공격성 등과 같은 치매의 이상행동증상까지 나타나면 가족의 고통은 함께 오는 정신적 피로와 함께 이루 말 할 수 없이 커진다.

일상생활을 못하게 될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많은 부분 절망하게 되고, 더 이상해줄게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정확한 진단과 약물치료와 함께 무엇보다 치매 치료에 있어서 일상생활관리는 옆에 있는 보호자에 의해 예방, 관리되어야 함이 매우 중요하다. 치매환자와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말, 언어로 안 될 뿐이지, 느낌이나 감정은 그대로 전해지고 교류된다. 말, 언어를 초월한 감정공유야말로 치매환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늘 웃으시는 치매환자분이 계셨다.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더듬더듬하면서도 웃음으로 무슨 말을 하셨고 그때마다 고개 끄덕이며 같이 웃어주는 반향 표현에도 그저 웃음으로 좋아하시곤 하셨다. 이렇게 치매환자와의 감정교류의 기본은 미소이다. 치매환자의 이상행동증상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는 그 증상이 금방 가라앉는 것을 임상에서는 많이 경험한다. 낯선 환경과 대상은 불안을 동반한 경계반응으로서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 ‘이쁜 치매’, ‘순한 치매’라고 불리우는 치매는 피해망상, 야간섬망, 환각, 공격적 인격변화 등의 행동심리증상(BPSD)으로 대별되는 주변증상이 동반하지 않는 치매를 말한다. 그만큼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는 치매이다.

치매환자에게 감정공유가 가능한 두 번째 방법은 터치이다. 치매 어르신은 먼저 손잡아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만으로 안정을 찾으신다. 그 사이에 침도 놓고, 뜸, 부항도 하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터치를 통한 감정교류이다. 말은 기억 못해도, 치료받은 과정조차 곧 잊게 되어도, 진료실에 오갔던 터치의 느낌은 크게 남는다.

치매환자와 감정공유에 중요한 세 번째 의사소통방법은 존중이다. 존중은 치매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마음도 포함된다. 치료자는 치료실에 잠깐 뵙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를 돌보고 함께하는 이는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가족이다. 치매 환자와 가족 모두가 편해지는 감정공유이어야 한다.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보호자가 지치지 않아야 치매환자도 오래 일상을 유지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수가 있다. 이들의 말을 잘 듣고 존중하는 것 또한 서로의 감정이 공유되는 방식이다.

일본 우치다 병원 인지증 서포트팀을 중심으로 집필된 “인지증 케어 비결(북마크, 2016)”에서 치매환자의 중재 혹은 관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환자로 하여금 안전하면서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즐거움과 관리받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긍정적 자극을 통하여 최소한의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치매 환자가 원하는 5가지도 우리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편안함(안락함), 자아정체성(자신이 자신 일 것), 애착(유대감), 일하는 것, 함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상이 기적인 이유를 이미 경험하는 사람들과 앞으로 경험할 사람에게도 오후의 차 한 잔이 허락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차가운 계절일수록 온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인생에 겨울이 찾아들어도 당황하지 않고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고요한 평화를 찾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큰 위안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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