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진돈의 도서비평] 인간의 실존과 전체주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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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진돈의 도서비평] 인간의 실존과 전체주의에 관하여
  • 승인 2019.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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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

김진돈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인간의 조건

요즘 국제사회적으로 여러 분쟁과 자국이익을 위해 우방도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 국내적으로 여야정쟁과 세대 간의 갈등 등이 뉴스에 비친다. 과연 인간에게 가장 인간적이고 같이 잘 사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이 인간적인 것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인터넷, AI 등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점을 줄까, 생각하며 지내다 이 책과 마주쳤다.

한나 아렌트 著, 이진우 譯, 한길사 刊

유대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악의 경험은 인간과 지구의 유한성을 토대로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관점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아렌트 자신의 저서가 아모르 문디(Amor Mundi, 世界愛)로 불러주기를 바랐듯이, 이 책은 세계에 관해 단순히 관조하고 성찰하는 형이상학적 전통을 넘어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실천철학적 방향을 제시한다.

아렌트는 인간실존의 세 조건으로 생명, 세계성, 다원성을 명명했다. 전체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신적 차원에서‘사유하지 않음’과 실천적 차원에서의‘정치적 행위능력의 상실’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진단한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시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정치철학자이다. 정치의 목적은 자유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전제조건은 다양성(다원성)이라고 했다. 정치를 올바르게 하려면 공사구분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국가를 가족처럼 관리하면 무너진다고 했다.

근본악을 경험하고 세계애로 사유하고 ‘전체주의’로 특징지어진 시대를 사유와 행위로 살았던 사상가이다. 또 20세기의 세계적 철학자인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야스퍼스 등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이후에도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터 베냐민, 슈테판 츠바이크, 하인리히 블뤼허와 같은 저명한 지성들과 교류했다. 저자는‘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사고력의 결여’때문이라는 것이다.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하지 않은 이 사고력의 결여가 어떻게 한 인간을 세기의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어떻게 근본악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가 유대인으로서 그녀의 철학적 화두였는데 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한 책 중의 하나다.

민주주의가 전 지구에 보편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발견될 수 있는 전체주의와 근본악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는 기술시대에 우리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근본악은 어떤 것인가? 『전체주의적 기원』에서 근본악을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파헤쳤다면,『인간의 조건』에서는 기술시대의 근본악을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활동적 삶의 가능성을 탐측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가능한 한 인간을 자연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에 의해 완전히 통제될 수 있는 인공세계를 구축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이를 기술시대에 내재하고 있는 전체주의적 경향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과학과 기술의 시도는 기술시대의 근본악이라고 진단한다.

한나 아렌트는 삶을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으로 나눴다. 활동적 삶(Vita Activa)은 인간의 근본활동인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등 3가지 범주로 표현했다. 한국인은 노동과 작업이 구분이 잘 안 된다. 가장 의미 있고 높은 위계의 활동적 삶은 행위이다. 노동은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과 일치하는 활동이다. 신체의 자연발생적 성장, 신진대사와 부패는 노동에 의해 생산되어 삶의 과정에 투입된 생명 필수재에 묶여 있다.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삶 자체다. 왜 활동적 삶인가? 활동적 삶의 경시는 전체주의를 야기했다. 전체주의는‘인간의 조건’을 부정한다. 전체주의를 극복하려면, 인간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잃어버릴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찰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인간 실존에 대한 반란(핵폭탕, 생명공학,자동화)이다.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자유를 위협하는가? 기계적으로 살아가면, 말이 무의미해지는 삶의 방식이 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전체주의가 온다. 어떤 형태이든 생각한다는 것은 능동적이다. 21세기 여러 사안 중에 지식과 사유가 분리되고 있다. 지식은 많은데 판단력이 떨어지고 전문가 백치도 생긴다. 요즘 생각 없이 말하는 정치인이 많다. 지식과 사유의 분리는 인간과 세계의 분리를 의미한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계소외가 근대사회의 방향과 발전을 규정했다면, 지구소외는 근대과학의 기호가 되었다.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세상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수많은 태양계에서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일이 얼마나 미세한가! 이런 환경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라고 생각한다면 세계소외에 있다. 과학과 기술은 21세기에 커다란 위협은 기술적 전체주의를 야기할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1주일에 2번 정도 스마트폰을 놔둘 필요가 있다.

우리 미래는 우리자신이 결정한다. 생각하고 타인과 의사소통하고 행위하는 시민이 되라! 지구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너의 몸을 사랑하라! 아모르 문디(Amor Mundi)

전체주의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자유와 정치는 위협받고 있다. 이 책은 이런 근본 사실을 철저하게 사유함으로써 자유의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아렌트는 인공지능과 자동기계의 출현이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활동을 할 때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지를 성찰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인 김진돈 / 운제당한의원장, 송파도서관 운영위원장, 전)송파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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