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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필건 회장 추모] 잘가요~ 김필건... 그리고 미안해요.
2019년 03월 22일 () 06:00:23 국승표 mjmedi@mjmedi.com
   
 

본지는 홀로 많은 것을 떠안고서 가슴 아프게 떠나간 고 김필건 회장의 영면을 바라면서,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각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고 김필건 회장의 활동을 되돌아 봅니다.

-편집자 주

 

나는 김필건 전 회장과는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향도 아니다.

내가 김필건 당시 천연물신약 비상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7년 전 협회관 에서다. 아니 만난 게 아니라 보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2012년 10월 28일 첩약건보시범사업 문제가 불거져 나는 회원들과 협회관 점거 농성을 막 시작하려던 때였다. 후줄근한 티에 각이 잡히지 않은 양복바지를 입은 키 작은 아저씨가 우리 모임을 지켜보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처음엔 협회관 경비 아저씨인줄 알았다. 그는 투박하고 촌스런 모습이었으나 만화 캐럭터 같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인데도 그는 협회관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와 언제 정식인사를 하고 서로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강원도 정선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었고, 강원도 한의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중앙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천연물신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잘 나가던 한의원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협회관 한쪽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비대위 수석으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평안하고 성공적인 한의사 생활을 뒤로하고 그는 스스로 고행의 길을 찾아 왔다.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 무슨 광영을 보겠다고...’ 생각했을 나 같은 범인의 인생 선택지에는 없는 선택이었다.

3일 후인 11월 1일 평회원 협회관 집회에서 그가 단상에 올라 자신에 대한 소개 차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제가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여러분 뒤에 있는 저 아파트 대 여섯 채는 지금 당장이라도 캐쉬로 땡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청중 속에서 폭소와 함께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날 집회에 모인 수 천 명의 한의사 대다수는 자신의 후배 뻘 되는 젊은 한의사가 주축이었기에 당시 암울한 상황에 있는 후배들에게 뜬구름 같은 희망보다 구체적인 전망을 보여주기 위한 김필건 방식의 직설화법이었다. 그는 성공한 임상가라서 빈말은 아니었다.

그는 2013년 3월 압도적인 표차로 한의협 최초의 직선제 협회장이 되었다. 그가 안락한 정선 생활을 버리고 서울로 온 결단을 한 것처럼 그는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좌고우면 하는 일이 없이 밀고 나갔다. 주위 환경은 만만치 않았다. 당선된 해 여름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회원들의 의사에 반하여 약사를 배제할 수 없는 첩약건보 시범사업 추진이 결정되자 평회원 협의회 요청에 따라 사원총회 개최를 추진했다. 의약단체 어느 곳에서도 성공한적 없는 사원총회였지만 그는 회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며 성공시켰다. 천연물신약 투쟁에 나설 때도 비슷했다. 거대 제약 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는가? 라는 걱정과 회의론이 많았지만 그는 특유의 집중력과 돌파력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는 뜻을 세우고 펼칠 수 있는 그 시기가 행복해 보였다.

2013년 봄으로 기억된다. 당시 충남 당진에 있던 내가 2012년 10월 있었던 협회관 점거농성으로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반에서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몇 시간에 걸친 조사 끝에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읽어보고 지장을 찍고 터벅터벅 경찰서를 나서는데 어두컴컴한 경찰서 앞마당 부근에서 김필건 회장이 나타났다.

“국대표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두 손을 잡아 주었다. 경찰서에서 혼자 조사 받는 것, 그것도 서울까지 올라와 조사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김필건 회장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나는 김필건 회장 일행과 근처 해장국집으로가 회포를 풀었다.

김필건 회장이 자주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지 않겠어요?’

김필건 회장은 재임시절 두 번의 단식투쟁을 했다. 한 번은 현대의료기기 사용관련 투쟁 때였고 다른 한 번은 노인정액제 인상투쟁 때였다. 현대의료기기 사용관련 단식투쟁 때 주말 늦은 저녁 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겨울이었는데 차디 찬 협회관 로비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누워 있었다. 내가 로비에 들어서자 그가 일어났다. 며칠 째 이어지는 단식으로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내가 건강상태와 의료기기 관련 상황은 어떤지를 묻자.

“걱정마세요. 잘 될 겁니다”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서 ‘어렵습니다.’ ‘힘든 상황입니다.’ ‘불가능 합니다.’ 라는 말을 좀처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는 그랬다. 그는 긍정적이었으며 또 그만큼의 긍정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적당히를 몰랐다. 그래서 무리하기 일쑤였다.

단식투쟁 끝에 심장에 무리가 와 스텐트를 2개나 박고 참모들과 주변에서 건강을 염려했을 때도 ‘걱정마세요.’로 일관했다. 그는 투사처럼 전진만 했고 좀처럼 자신을 돌볼 줄 몰랐다.

그는 42대 협회장 재선에 성공하고 우리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위해 국회로, 복지부로, 방송국으로 불철주야 혼신을 다해 뛰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국민 여론도 압도적 찬성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마침내 국회에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법안이 여당 뿐 아니라 야당까지 동시 발의가 이루어졌다. 한의계 역사상 없던 일이었다. 단순한 바람이 희망의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적이 많았던 탓이었을까? 2017년을 두 달 남겨둔 10월,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자신을 두 번이나 뽑아준 회원들에 의하여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정치적 파산선고였고 치욕이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안타까웠고 우리 한의계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그는 낙향했고 강원도 강릉에서 두문불출 했다. 지인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지만 그 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환자 보기를 즐겨했는데 진료도 할 수 없었고 사람을 만나러 다니지도 않았다. 산에 자주 올랐고 가끔 경찰조사를 받으러 서울을 오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즈음 내가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무탈한 듯 아무런 내색도 없었다. 늘 그렇듯이 ‘걱정마세요...’ 가 그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무심한 1년 3개월이 지났고 지난 2월 그는 강원도 정선에서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그는 오랜 침잠 속에서 막 깨어 나왔다.

그리고 지난 3월10일 일요일 아침 나는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들었다. 그렇게 강단 있던 김필건 전 회장이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것이다. 향년 59세. 너무 이르다.

환자를 아끼고 사랑했던 성공한 임상가이자, 한의계에 역사상 없었던 성과와 발전을 일구어 냈던 협회장!

치열함과 성실함으로 몸을 불살라 열심히 살았던 한 인간으로 그의 족적은 흔한게 아니다. 한의계는 다시 볼 수 없을 큰 인물을 잃었다. 애통하다.

며칠 전 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6년 전 내가 경찰서에서 나올 때 그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준 것처럼 그가 회원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당장 달려가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지 못한게 회한으로 남는다.

‘잘가요~ 김필건 그리고 미안해요...’

 

국승표 /전 한의사평회원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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