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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진돈의 도서비평] 세상의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라
도서비평┃의심의 철학: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2019년 02월 01일 () 06:47:13 김진돈 mjmedi@mjmedi.com

요즘 철학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가 높아짐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정신과는 달리 삶과 사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한 이유는 의심과 호기심 때문인데 과학시대에 의심과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철학은 과학과 기술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만일 인공지능이 인간에게서 빼앗아가는 것이 일자리뿐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노동한다면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이진우 著, 휴머니스트 刊

이 책은 ‘의심의 학파’인 각 철학자의 핵심 사상과 질문들을 곱씹고 그와 관련된 우리 삶의 문제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타자는 내 존재의 비밀을 쥐고 있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권태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베냐민, 아렌트 등의 철학자가 어떻게 문제를 의심하고 질문했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철학은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몇 분의 철학자 의견들을 살펴보자.

역사의 주체에 대한 마르크스의 의심은 실제로 ‘어떤 허구인가’라는 문제로 압축된다.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허구를 갖고 있는가? 우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마르크스가 역사에 집착한 이유다.

니체는 사회적 궁핍이나 생리적 퇴화 또는 부패를 허무주의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일종의 오류다. 니체의 관점에서 신의 죽음은 허무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이다. 신이 죽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중심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중심을 상실한 이 ‘허무주의 시대’가 니체를 호명한 것이라고 했다.

또, 기독교에 대한 니체의 비판보다 더 가혹한 것은 없다. 기독교는 사람들의 신앙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항상 구체적 현실 속의 궁핍과 위기의 비상사태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삶을 지옥으로 그려야 사람들은 천국을 기원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기독교가 허무주의의 기원이라고 단언하고,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는 ‘방향상실’을 의미한다. 신앙과 종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신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신이 있든 없든 삶이 가치가 있고 우주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심오한 종교적 마음이다. 고로 신이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다른 신이 필요 없는 것일까?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이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죽음 이후의 구원받은 삶을 미끼로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언어는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성도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특징을 인식하여 이 특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비판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적 문제는 이런 언어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언어가 없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와 관계를 맺는 사물들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동시에 ‘관계 맺기’다. 명명한 이름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를 서술하고 인식한다.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장미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그 꽃은 우리의 눈과 의식에 떨어진다. 이름 짓기는 관계를 맺는 하나의 사건이다. 언어가 없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까.

또한, 약 3,000만곡 수준의 음원을 제공하는 애플뮤직의 힘은 그 다양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취향을 알아내는 알고리즘을 통해 애플은 소비자 대신 음악을 골라준다. 아마존은 이미 독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읽을 책 목록을 대신 뽑아주고 구글은 빅 데이터를 토대로 개인의 취향을 정확하게 읽어낸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화산업은 소비대중에게 자신의 취향과 생각, 이념을 은연 중 믿게 만든다. 이것이 비민주적이고 문화산업의 기만장치라고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획일화시키는 문화산업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오늘날 새로운 복제 기술은 창조성과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 같은 일련의 전승된 개념들을 폐기시킨다. 칼 포퍼는 모든 생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모든 생물은 실력이 좋건 형편없건 또 성공하건 못하건 간에,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발명가 겸 전문가들이다. 또 자기비판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과학을 맹신하는 지금이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체주의를 경험한 우리는 '전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우리는 더 이상 전체주의적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사람은 자유와 정치의 문제를 치열하게 사유한 걸출한 정치철학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노동’, ‘작업‘, ‘행위’ 로 범주적으로 구분하면서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노동과 인공적 환경을 만드는 작업과는 달리 오직 행위만이 정치적 인간 조건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행위의 근본 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 조건, 즉 보편적 인간(Man)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men)이 지구상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정치적인 것이란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가졌을 때 비로소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란 다양한 차이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차이와 다양성이 생성되는 곳이다. 정치의 근본 조건은 ‘함께 행위하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민주주의가 정치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요하는 전체주의는 非정치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아이히만처럼 행위의 동기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매함과 어리석음에 기인할 때, 악은 발생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성은 대단한 천박성이라 할 수 있다. 그 행위가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행동과 과거 행적에서 탐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사유의 무능력’이었다. 사회적 악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평범한 무관심에서 나온다는 것과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의 통찰은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새해에는 이 책을 통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게 질문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시인 김진돈 / 운제당한의원장, 송파구립도서관 통합운영위원장, 전)송파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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