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의 생물학적 기원을 추적해보자
상태바
모유수유의 생물학적 기원을 추적해보자
  • 승인 2018.12.28 0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나희

김나희

mjmedi@mjmedi.com


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모유수유, 산전산후관리,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전문가 직능이다. 수유를 비교동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임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수유의 진화와 본질에 대해 고찰해보겠다.

 

태초에 털이 있었다

포유류는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인다. 이 말이 정말일까? 절반만 사실이다. 새끼 대신 알을 낳는 포유류도 있기 때문이다. 哺乳類, 젖먹이동물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포유류는 태생이 아니라 모유수유로 정의된다. 그리고 모유를 생산하는 유선(젖샘)의 기원은 피지선(기름샘)이고 피지선의 기원은 모공(털구멍), 곧 털이다.

약 2억 년 전 털이 등장했다. 털의 모공에 달린 피지선이 분화되어 유선이 되고 젖을 분비했다. 단공류를 포함한 모든 포유류의 공통 조상은 수유했으며, 젖의 주요 단백질인 카제인을 만드는 카제인 유전자는 유선에서만 활발하게 활동한다. 카제인 유전자의 염기 서열은 단공류를 포함하여 모두 하나의 기원을 갖고 있다. 털, 카제인 단백질, 젖먹이기는 모든 포유류가 공유한다.

유당(락토오스, 젖당)은 1억2500만년 전 유대류와 태반 포유류가 분기한 뒤, 태반 포유류의 공통 조상 때 등장했다. 따라서 자궁 속 태반에서 태아를 키우는 태반 포유류의 젖에는 공통적으로 유당이 들어 있다. 단공류와 유대류는 유당 대신 다른 종류의 올리고당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람 아기를 위한 분유를 만들 때 오리너구리 젖이나 캥거루 젖은 후보가 될 수 없다. 한편 우유나 산양유를 사람 아기에게 먹일 수 있고, 야생에서 늑대 젖을 먹고 살아남은 소녀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소, 산양, 늑대, 사람의 젖이 모두 유당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인간 아기는 이차적으로 미숙성 아기라서 잦은 수유가 필요하다

약 8천만 년 전에 교미에 의존하지 않는 자동 배란 및 자동 황체 형성 양상이 나타났다. 영장류의 공통 조상은 약 한 달로 긴 편인 자동 배란 주기를 갖고 있다. 인간 여성을 포함한 영장류의 난소 주기가 약 한 달인 이유가 달의 공전 주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필 달의 공전 주기와 여성의 난소 주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우연, 그리고 절대 크기와 지구로부터의 절대 거리가 엄청나게 차이나는 해와 달의 시야각이 하필 0.5도로 거의 같아서 우리 눈에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는 얄궂은 우연이 고대의 이분법적인 음양 배속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부분의 태반 포유류의 자궁은 두 개이며, 인간 등 아주 소수의 포유류만 하나의 자궁을 갖고 있다. 약 4천만 년 전 최초로 하나의 자궁이 등장했다. 인간 중에서도 3000명 당 1명꼴로 외부생식기와 자궁이 둘인 여성이 있는데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 박쥐의 여러 종에서 자궁의 여러 단계가 존재하는데, 크고 작은 두 개의 자궁이 있기도 하고 완전히 하나의 자궁이 있기도 한 것으로 보아, 두 개의 자궁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아니라 하나가 작아지면서 다른 하나가 커진 듯 하다.

◇그림 설명 : 여러 쌍의 유방이 태아 단계에 있다가 가슴의 한 쌍만 남고 퇴화하지만, 종종 남아 있는 채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은 단순히 갈색 점이나 물혹 정도로 생각할 수 있으니 부유방일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인간은 한 번에 아기를 한 명 낳지만, 한 배에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나 개를 보면 알 수 있듯, 발생 초기에 겨드랑이부터 서혜부까지 젖샘능선(유방능선, 유방융기, milk line)을 따라 여러 쌍의 젖꼭지가 존재한다. (그림 참조) 인간의 경우 태아시기에 가슴 부위의 유방과 유두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퇴화하여 출생 시에는 한 쌍의 유방과 유두만 남게 된다. 그런데 가끔 부유방이 남아 있는 여성도 있다. 겨드랑이에 가장 흔하며, 겨드랑이에 살이 찐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겨드랑이가 부어 있거나 임신 출산 후 특히 더 붓고 젖이 흘러나오기도 한다면, 환자에게 부유방 가능성을 설명하고 외과적 제거 수술 방법이 있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겨드랑이뿐 아니라 젖샘능선을 따라서 흔적 유두나 흔적 유방이 있을 수 있다. 단순히 갈색 점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으나 위치를 확인하면 부유방, 부유두임을 파악할 수 있다.

포유류의 새끼는 태어날 때 성숙 정도에 따라 미숙성과 조숙성으로 나뉜다. 미숙성 새끼와 조숙성 새끼는 명확히 갈라지고 중간 단계는 없다. 개, 고양이, 토끼, 쥐 등의 미숙성 새끼는 털이 없고 눈, 귀가 막으로 막혀 있어 ‘핏덩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사슴, 말, 소, 코끼리 등의 조숙성 새끼는 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뛰어다니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람 아기는 미숙성일까, 조숙성일까? 사람 아기는 털이 있고, 눈과 귀가 열린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조숙성이지만, 전형적인 조숙성 새끼보다는 미숙한 상태이다. 사람 아기는 조숙성 새끼이지만 큰 두뇌를 생후까지 발달시키기 위해 이차적으로 다시 미숙성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영장류 새끼들도 조숙성이지만 약간은 미숙성이고, 따라서 엄마와 밀착해서 잦은 수유가 필요하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영장류도 새끼가 수유의 시간을 결정하므로 아기가 원할 때마다 먹여야 한다. 영장류의 젖은 4% 정도로 지방 함량이 낮아 수유를 자주 해야 한다. 인간의 모유는 특히나 지방 함량이 낮아 묽으면서도 유당의 농도가 높은데, 신생아의 뇌에 필요한 당을 실시간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 뇌의 무게가 체중의 10%이므로, 신생아의 뇌는 전체 흡수 에너지의 무려 60%를 차지한다. 신생아가 원할 때마다 수유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도 젖을 생산할 수 있다

출산 경험이 없으면서 (또는 출산한 적 있는 경우라도) 자신이 출산하지 않은 입양아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싶은 엄마는 유도수유를 하기도 한다. 아기의 입양일에 맞춰 미리 호르몬을 투여하여 가상 임신 상태, 가상 출산 상태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유축하고 최유제를 복용하면서 모유 분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프롤락틴은 합성 약제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돔페리돈으로 프롤락틴 생산을 유도한다.) 아기와 만난 뒤에는 분유를 담은 가느다란 튜브 끝을 유두에 연결하고 아기가 분유를 빨 때마다 유두에도 빠는 자극이 전해지도록 유방에서 수유를 하면서 모유생산량이 늘어나도록 유도한다.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인데도 서구권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는 입양모들이 있다. 설령 모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유방에서 피부 대 피부 접촉을 하면서 수유를 하는 것 자체가 아기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 (자신의 모유량이 적다고 고민하는 환자들에게, 이런 유도수유 사례를 근거로 모유수유 자체가 아기와 엄마에게 이롭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겠다.)

 

생물학적 남성도 젖을 생산할 수 있다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뿐 아니라, 인간 남성도 유선과 유두가 발달하므로 젖을 생산할 수 있다. 마유(魔乳, witch’t milk)는 엄마의 프롤락틴의 영향으로 신생아의 유두에서 흘러나오는 소량의 젖을 부르는 단어이다. 즉, 여아뿐 아니라 남아의 유두에서도 젖이 생산된다. 남성의 젖꼭지를 흔적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유선이 아예 퇴화하지는 않은 것이다. 간경화 등 호르몬 문제가 생기는 남성의 유방에서도 젖이 생산되기도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엄마가 사망하여 굶고 있는 신생아에게 막막한 아빠가 젖을 물려봤더니 수유가 가능했다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사실 진화 초기에는 양성 모두 수유를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컷 박쥐도 젖을 만든다. (이런 경우에는 母乳授乳가 아니라 父乳授乳라고 불러야 할까?)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성을 재지정한 트랜스젠더 여성(MTF)이 모유수유에 성공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 여성은 입양아에게 유도수유하는 프로토콜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치료를 미국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센터에서 받았다. 이 여성은 6주간 분유 없이 모유로만 아기에게 수유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기의 하루 섭취량으로 충분한 양의 모유가 생산된 것이다. 6주 이후에는 분유와 혼합수유를 이어갔으며 이 아기는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수유는 다른 포유류와 공유하는 특성이면서도 다른 종들과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이며,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상당히 유연하고 상대적일 수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나희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