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48> - 『穡經』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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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48> - 『穡經』 ①
  • 승인 2018.1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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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일본 열도에서 실종된 꿀벌들

최근 해외뉴스에 일본에서 양봉하던 꿀벌들이 종적 없이 사라졌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벌꿀은 인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 동물성 약류이자 대표적인 감미료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오늘날 한의학에서 蜂毒이나 벌침 또한 중요한 치료수단의 하나로 응용되고 있으므로 무관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 『색경』

마침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西溪 朴世堂(1629~1703)의 『색경』을 들척이다가, 본문 가운데 꿀벌 기르기[蜜蜂]에 대해 설명한 조문이 있어 자연스레 눈길이 끌렸다. 여기에 관련 내용을 모두 얘기하긴 어렵고 벌통에서 꿀 따내는 요령만 간략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먼저 “꿀을 따는 방법은 10월에 벌통 뒷문을 열고 쑥을 태워 연기를 쏘이면 그 벌이 자연히 앞을 향해 날아간다. 만약 벌이 쏠까봐 겁이 나면 박하 잎을 잘게 씹어 손바닥에 바르면 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비단 천을 머리와 상체에 뒤집어쓰며, 혹 가죽으로 다섯 손가락을 싸는 것은 더욱 좋다.”고 하였으니 재료와 약재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 사용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벌과 인간에게 모두 안전할 것이다.

또한 “양을 헤아려 겨울과 봄에 벌이 먹게 하고 나머지 큰 꿀은 골라서 예리한 칼로 떼어내고 벌통을 봉해 버린다.”고 하였으니 모아둔 꿀을 모두 빼앗는 것이 아니라 반분하여 벌들과 공유하는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벌이 먹을 꿀이 넉넉지 않을 경우에는, 암탉 1~2마리를 털을 뽑고 내장을 빼서 벌통 속에 걸어두면, 벌이 그것을 먹고 힘이 평소의 갑절이 된다고 하였다. 정말 그럴까싶은 얘기지만 이듬해 2월에 벌통을 열어 보면 닭 뼈만 남게 된다고 하니 옛 분들이 몸소 징험해 본 일이었음이 분명하다.(이상 농진청 국역본 참조.)

아울러 벌통에서 떼어낸 꿀은 깨끗하게 잘라 사용하는데, 불에 녹이지 않은 것을 白沙蜜이라 하고 불에 녹인 것은 紫蜜이라한다 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으니 이른바 백사밀이라는 것은 불에 녹이기 이전의 굳어있는 상태의 꿀 덩이를 말한다. 의서에서 말하는 白蜜과는 성상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져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잘라서 채취한 꿀은 솥에 담아 약한 불로 끓여서 녹은 뒤에 짜내는데, 찌끼를 걸러내고 다시 졸인다고 하였다. 이것이 의서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煉蜜 과정인데, 이 책에서는 특별히 연밀법에 대해서 지칭하고 있지는 않다. 『동의보감』에서는 불에 녹인 꿀에 종이를 덮어 납초를 걷어내고 색이 변할 때까지 다시 졸인다고 하였는데, 대략 원밀 1근에 12냥 정도를 걸러내면 좋으니 너무 과도하게 거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4냥 정도의 밀랍을 걸러내는 셈인데, 이를 환산하면 꿀과 밀랍의 비율이 3:1 정도가 적당한 기준이다.

또 밀랍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질그릇에 냉수를 담아놓고 납수를 기울여 쏟으면 안에서 응고되어 저절로 黃蠟이 된다고 하였다. 지난 가을 약초축제에서 자연산 밀랍초와 다양한 가공품이 선보인 것을 보았는데, 석유에서 추출한 파라핀을 가공하여 만든 양초가 인체에 유해하다해서 천연 밀랍에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수년전『三方撮要』를 번역하던 무렵, 尤庵 宋時烈(1607~1689)이 포항의 장기에 귀양가서 지내던 시절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 있어 읽어보니, 유배지의 초막 앞뜰에 벌집을 짓고 꿀벌을 치는 대목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궁벽한 바닷가에 圍籬安置된 정객이 상심한 마음을 달래려는 소일거리이자 스스로 부식재나 거두려는 요량으로 여겼더니 이 책에도 역시 중요한 대목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낙향한 山林處士가 가정살림에서 주요사 가운데 하나로 여겼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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