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의 刊記와 판권지
상태바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의 刊記와 판권지
  • 승인 2018.12.08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mjmedi@mjmedi.com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25)

Ⅰ. 서론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 중에는 여타 線裝本 <方藥合編>과 달리 책의 말미에 里洞新刊이라는 刊記만 있는 판본과 더불어 刊記에 추가하여 책의 후면에 오늘날의 출판에서 사용하는 저작자, 발행자와 인쇄소, 발행소, 판권, 가격 등의 판권지가 인쇄되어 있는 판본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의 진짜 刊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판권지가 없는 판본에는 里洞만 나타나 있고, 판권지가 추가로 붙은 판본에는 里洞과 관련된 기록은 보이지 않고, 판권지에 全州가 發行所로 표시되어 있어 연구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里洞新刊의 판권지를 중심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판권지의 유무

 판권지가 없는 里洞新刊은 刊記가 里洞新刊으로만 나와 있다. 반면에 판권지가 첨부된 것은 里洞新刊이라는 刊記 외에 발행년월일, 著作兼發行者, 印刷兼發行所 등의 정보가 판권지에 나타나 있는데, 1911년에 간행된 里洞新刊의 경우 “明治四十四年八月二十二日發行 定價金五拾錢 著作兼發行者 全州郡府西四契13統6戶 卓鐘佶, 印刷兼發行者 全州郡府西四契13統6戶 梁元仲, 印刷兼發行所 全州郡府西四契 西溪書鋪”라고 적혀 있고, 1932년에 간행된 里洞新刊의 경우 “昭和七年十月十八日 著作印刷兼發行者 全州郡龍進面牙中里八九0 梁承坤, 印刷者 全州郡雨林面龍伏里 梁昌朝, 發行所 全州郡龍進面牙中里 梁冊房”으로 적혀 있다.

그림 1. 1909년의 출판법(관보 제4311호)

2. 판권지의 필요성

 고종은 1909년 관보 제4311호(융희 3년 2월 26일)를 통해 융희 3년 2월 23일 반포 법률 제6호 출판법의 제2조에서 “文書·圖畵出版코져하時著作者又其相續者와及發行者가連印야地方長官(漢城府에서警視總監으로홈)을經由야內部大臣에게許可申請이可홈”이라고 규정하였다(그림 1).
 따라서 1909년 이후에 발행된 里洞新刊에는 법률 제6호 출판법에 의해 管轄部署인 朝鮮總督府의 인허가를 받았다고 하는 “朝鮮總督府 警務總監部 認可 板權所有”(그림 2)나 “朝鮮總督府許可 複製不許”(그림 3)의 내용을 판권지의 상단에서 볼 수 있다.

그림 2. 1911년에 간행된 里洞新刊(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소장)

3. 著作兼發行者

 1911년 판권지가 있는 里洞新刊의 著作兼發行者는 卓鐘佶로 되어 있고(그림 2), 1932년 판권지가 있는 里洞新刊의 著作印刷兼發行者는 梁承坤, 印刷者는 梁昌朝로 되어 있다(그림 3).
 그렇다면 惠庵이 지은 <方藥合編>을 卓鐘佶이나 梁承坤이 다시 ‘著作’했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전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著作者는 글쓴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펴낸이 내지 엮은이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證脈方藥合編>의 著者는 惠庵이고, 發行者는 卓鐘佶이나 梁承坤이라고 써야 하는데, 이것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즉 發行者나 著作者에 대한 표기 오류라기보다는 출판법에 의거해 출판의 허가를 받기 위해 불가피하게 본인을 著作兼發行者 또는 著作印刷兼發行者로 표기한 것이다.

4. 印刷兼發行所

 1911년에 간행된 里洞新刊의 印刷兼發行所는 西溪書鋪로 되어 있고(그림 2), 1932년에 간행된 里洞新刊의 發行所는 梁冊房으로 되어 있다(그림 3). 즉, 판권지에 發行所가 里洞이 아니라 西溪書鋪나 梁冊房으로 되어 있는데, 설령 里洞에서 인쇄 또는 발행하였다 하더라도 출판법에 의거해 출판의 허가를 받기 위해 불가피하게 西溪書鋪나 梁冊房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림 3. 1932년에 간행된 里洞新刊(필자 소장)

Ⅲ. 고찰

 朝鮮總督府官報 1호(1910.8.29. 28면 ‘朝鮮의 法令의 效力에 關 件’)에 나타난 바와 같이 “制令第一號 朝鮮總督府 設置時에朝鮮에셔其效力을失帝國法令과及韓國法令은當時內朝鮮總督이發命令으로니그로其效力을有이라”1) 라고 하여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도 일제는 1909년에 제정된 출판법을 그대로 유지하여 대한제국의 警視總監 許可를 朝鮮總督府 警務總監部認可로만 바꾸었다.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에 판권지가 붙은 이유로는 다음의 4가지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가설은 이미 里洞에서 印出한 線裝本 <證脈方藥合編>을 전주의 西溪書鋪나 梁冊房에서 판매(오늘날의 재고 처분과 같이)하기 위해 發行者 卓鐘佶이나 梁承坤이 출판법의 규정에 의해 里洞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불가피하게 판권지에 發行所로 西溪書鋪나 梁冊房을 명시한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초기에는 1909년 반포한 출판법 발효 이전에 간행된 里洞新刊을 재고 처리하는 수준으로 西溪書鋪 또는 梁冊房에서 판매하다가 후기에는 西溪書鋪 또는 梁冊房에서 직접 인쇄 및 발행하여 판매한 것이다.

 세 번째 가설은 里洞의 板木을 전주 西溪書鋪로 가지고 와서 인쇄 및 발행하여 판매하였으나 판목이 훼손되어 더 이상 발행할 수 없었고, 梁冊房에서는 西溪書鋪의 재고를 인수하여 단지 판매만 한 것이다.

 네 번째 가설은 이미 里洞에서 印出한 線裝本 <證脈方藥合編>을 1911년에는 전주 西溪書鋪에서 판권지만 붙여 판매하고, 1932년에는 西溪書鋪의 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梁冊房에서 판권지를 고쳐 판매한 것이다.

 里洞新刊은 여타 판본에 비해 현존하는 판본이 많지 않고 梁冊房의 里洞新刊은 더욱 傳本이 희귀한 상황이다. 현존하는 線裝本 <方藥合編> 중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은 판권지 첨부 여부와 관계없이 본문의 판본은 거의 동일하다. 이는 西溪書鋪나 梁冊房에서는 새로 판각 하지는 않고 기존의 판목을 그대로 가져와 印出만 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里洞新刊의 판권지를 분석하여 볼 때 첫 번째 가설이 가장 타당하다.

 

Ⅳ. 결론

1. 목판본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은 판권지가 없는 판본과 판권지가 있는 판본이 모두 존재한다.
2. 판권지가 없는 판본은 1909년 반포한 출판법 발효 이전에 간행된 것이고, 판권지가 있는 판본은 출판법 발효 이후에 간행된 것이다.
3. 판권지가 있는 판본에는 著作兼發行者가 卓鐘佶 또는 梁承坤으로 되어 있다.
4. 판권지가 있는 판본의 發行所는 西溪書鋪 또는 梁冊房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1. 송민호, 일제강점기 미디어로서의 강연회의 형성과 불온한 지식의 탄생, 한국학연구, 2014:32:125-154.

 

한기춘·서정철·최순화(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