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肩臂痛의 體質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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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肩臂痛의 體質鍼 자료
  • 승인 2018.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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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http://


(1) 권우준과 조재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의 가든그로브(Garden Grove)에 있는 경산한의과대학은 1995년에 캘리포니아주 교육국과 침구위원회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았다.

  사우스베일로(South Baylo)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에서 1986년부터 크리닉1)을 열었던 권우준 씨2)는, 부친인 권도원 선생을 모시고 1995년 여름에 피서여행을 했다. 그리고 이 때에 권도원 선생은 첫 미국강연3)을 했다.

  1990년에 도미하여 하와이를 거쳐서 LA에서 선교사 보조로 있던 조재희(趙載熙) 씨는 미국에서의 장래가 걱정되어 경산한의과대학 LA캠퍼스에 입학했다. 입학한 1학기에 조재희 씨는 권도원 선생의 미국강연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권도원 선생의 8체질론에 충격을 받게 된다.

  조재희 씨의 부인은 RN 4)인데 같은 직장에 권도원 선생의 작은며느리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조재희 씨와 권우준 씨가 처음 만나게 된다.5) 권우준 씨의 진료실을 방문했던 조재희 씨는 서가에 꽂힌 기독교 관련 책을 통해서 권우준 씨가 과거에 한국에서 신학생(神學生)6)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재희 씨는 선교사 훈련을 받았고 그런 목적으로 미국에 갔던 것이므로, 두 사람은 기독교라는 또 다른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조재희 씨는 한국에 들어와서 지인을 만나 체질침에 관심을 가진 한의사들을 모았고 LA지역에 있던 임상의들도 몇 사람 추가해서, 권우준 씨가 진행하는 8체질의학 첫 강좌를 1997년 6월 30일부터 5일간 하와이에서 연다. 이렇게 시작한 권우준 씨의 미국강의는 하와이와 LA에서 다섯 차례 열린다. 이 당시에 미국강의에 참가한 한국 한의사들이 후일에 신기회(新紀會)의 리더그룹인 십인회(十人會)의 주축이 된다.

  권우준 씨는 2000년부터 한국에서 강좌를 열었다. 지방에서는 부산과 대구에서 주로 열렸고, 서울에서는 상신(相信)한의원에서 수요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십인회 멤버들은 자신들의 진료소가 있던 도시의 지역장이 되어 지역모임을 주도했다. 신기회는 2001년 1월 15일에 상신한의원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권우준 씨의 강의와, 한국에서 신기회가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립되는 제반의 활동은 조재의(趙載宜 Jay Cho) 씨의 기획과 추진에 의한 것이었다.7)

(2) 8체질의학적인 안목
  어떤 생소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려고 할 때 거치는 과정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초보시절에는 거의 주입식의 교육방식에 따른다. 1992년 5월에 기독한의사회 주관으로 한의사를 대상으로 한 권도원 선생의 강의8)가 있었다. 그리고 배철환은 1994년 8월부터 한의사통신망인 KOMA의 동의학당에서 체질침을 알렸다. 1990년대에 한의계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이명복 선생과 소위 배철환 4인방9)과 황 민10), 하한출11) 등이다. 이들은 자신이 습득한 8체질 지식에 임상경험을 더한 자료를 전파했다.

  1993년 7월에 나온 이명복 선생의 책,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12)는 8체질론과 체질침을 정확하게 서술하지는 못했지만, ‘권도원과 체질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6년 10월에 출간된 『8체질건강법』은 8체질론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과 갈증을 일부 해소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식의 습득과 경험의 추가’는 체질침의 자료 축적과 전파의 공통적인 방식과 과정이다. 이것은 의료지식이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의 전파 과정에서 ‘검증’은 어느 단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식을 먼저 습득하였던지 나중이었던지 간에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초보고, 거기다가 거의 독학수준이었던 처지였으므로 검증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8체질론과 체질침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상황은 이와 같았다.

  권우준 씨는 강의를 통해서, 체질침의 원리를 이해하고 운용할 때 필요한 8체질의학의 독특한 병리개념을 전파했다. 특히 1997년 6월의 첫 강의 때부터 ‘8체질의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8체질의학적인 안목(眼目)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기존의 의학개념이나 전통적인 한의학의 원리와 8체질의학의 개념은 다르다. 사람의 몸과 질병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바로 8체질의학적인 안목인 것이다.

 

(3) 역대의 견비통 처방자료

 1997년에 입문한 후에 내내 독학이었던 나는 2001년 4월이 되었을 때, 신기회라는 성벽(城壁)13)의 밖에 있는 처지였다. 특히 체질침의 원리와 처방자료에 너무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5월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Onestep8.com이라는 인터넷게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기획으로 체질침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분야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답변이 바로 ‘견비통’이었다. 가장 어렵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치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견비통은 한의학의 다른 도구로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임상가에 유통되던 체질침 처방들의 수준은 아주 열악했다. 1997년 4월에 강남의림한방병원에서 행한 김영태 강의 자료에서 견비통 부분을 보면 ‘오십견(五十肩)은 KZc로 한다. 치료가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신경, 인대 이상으로 파악하여 KBc’ 이렇게 되어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 물론 감춰진 정보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설문에 응한 임상의들과 Onestep8.com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견비통에 대한 처방자료를 물었다. 그것을 2001년 5월 14일에 정리해서 회원들과 공유했다. 하지만 그 자료의 수준은 여전히 답답한 상태였다.

  이후에 많은 자료들을 그것들이 성립되었던 시기보다 훨씬 늦게 발견하기도 하고 얻게 되었다. 내가 ‘견비통 처방 역대자료’라고 표로 만든 것 중에서 2000년 이전 자료는 국내외에서, 권우준 씨의 강의와 크게 관련이 없이 유통되었던 것들이다.

※ 참고 문헌
1) [기독한의사회 강의 녹취록] 1992. 5.
2) [배철환 靑韓 강의 녹취록] 1995. 12.
3) [김영태 강의 녹취록] 1997. 4.
4) [Missionary John Baik 자료] (1998)
5) [Peter Soh 자료] (2000)
6) [부산 자료] (2000)
7) [8체질의학] 신기회 정리 제본 (2001)
8) 경산한의과대학 개교 6주년 기념식 『미주 한국일보』 2000. 10. 12.
9) 견비통에 사용되는 처방 검토 『step by step』 (제1호) Onestep8.com 2001. 5. 14.
10) [Peter Yoon 자료] (?)
11) [부산 고단방 자료] (2009)
12) 이강재, 『학습 8체질의학』 행림서원 2009. 11.
13) 이강재, 선생의 우려 『민족의학신문』 (1158호) 2018. 9. 20.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Jesun ECM Acupuncture Clinic

2) 캘리포니아주 침구면허 취득일은 1986년 6월 2일이다.

3) 권도원 선생의 두 번째 미국강연은 1997년 8월 9일에 South Baylo 한의과대학에서 열렸다.

4) Registred Nurse

5) 두 사람은 동갑이다.

6) 총신대학교에 입학했었다고 한다.

7) 미국과 한국에서 열린 권우준 씨의 강의를 표로 만든 것은, 강의자료가 남아 있는 것을 기초로 정리한 것이다. 자료로 남지 않은 모임도 더 있었을 것이다.

8) 대한기독한의사회의 월례집담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1992년 5월 2일(土)부터 매주 토요일 아침에 4회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9) 배철환, 김영태, 김상훈, 류주열

이들 네 명은 ‘8체질의학회’라는 이름으로 1996년 10월에 『8체질건강법』을 출간하였다.

10) 『하늘건강법』

11) 『8체질의학 혁명』

12) 이명복,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대광출판사 1993. 7. 8.

13) 신기회는 당시에 health8.co.kr이라는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회원에게만 접속이 허락되고 있었다.

14) KZc와 KBc에서 c는 con-puncture로 상초치료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상초치료를 c로 하초치료는 p로 표기했다. 지금은 KZa와 KBa라고 표기한다. 이 때 a는 ana-punctu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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