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구가 Smoking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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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구가 Smoking Gun
  • 승인 2018.10.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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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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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암 유석형
  백암(白岩) 유석형(劉碩炯)은 1908년 4월 9일생이다. 1928년에 경남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했고, 1939년에 조선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가 되었다. 1966년에 가톨릭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72년에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다. 1973년에 대전시에 유내과의원을, 1981년에는 경기도 성남시에 대동의원을 개업했다. 저서로는 『영혼의 세계』, 『달마역근 세수의 비결』 등이 있다. 1973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심령학회(心靈學會)를 발족하였고, 심령학회지를 발간하였다. 1) 1989년에 국립중앙도서관에 『영혼의 세계』 등 2,035권을 기증하여 백암문고가 설치되었다.2)

 

(2) 여구혈 자침
  1958년의 전반기쯤에 눈병이 생겼던 권도원 선생은 여구(蠡溝)혈 자침을 통해서, 실명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그 눈병을 고쳤다고 말했다. 권도원 선생은 눈병이 나기 전에는 침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여구혈 자침 이후에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선, 애초에 목표했던 미국 유학의 꿈을 접고 본격적인 체질연구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사상의학을 공부하면서 지녔던 체질론적인 인식의 바탕에서 경락과 침술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권도원 선생은 여구혈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된 것일까.

  경락과 침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사람이 혼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임의로 찌르던 중에, 우연히 어떤 특별한 자리를 찔러서 자신의 눈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아주 부족하다. 분명 ‘눈병’ 이야기 뒤에 숨겨둔 것이 있다. 그런데 숨기지 않고 오히려 도드라지도록 한 것이 바로 여구혈이다. 여구는 간경(肝經)의 낙혈(絡穴)이다. 여구는 사암침법(舍岩鍼法)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체질침 치료처방체계에서 치료혈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권도원 선생이 여구혈을 홀로 도드라지도록 한 것은 아주 적절한 은닉작전처럼 보인다.

 

(3) 이노우에 에리와 혼마 쇼하쿠
  일본 침구 고전파(古典派)3)의 중심인물은 야나기따니 소레이(柳谷素靈)와 이노우에 에리(井上惠理)이다. 먼저, 야나기따니가 이노우에의 스승이다. 혼마 쇼하쿠(本間祥白)4)는 도쿄에 있는 동양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야나기따니를 알게 된다. 그러다가 야나기따니의 소개로 1939년에 이노우에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리고 1943년 9월에 독립하여 개업할 때까지 이노우에의 문하에 있었다. 혼마에게는 야나기따니와 이노우에 두 사람이 항상 ‘스승’의 자리에 있었다. 혼마는 자료 정리와 문필(文筆)에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고전파가 이룩한 학문적인 성과들은 주로 혼마의 손을 거쳐서 출간되었다.5)

 

(4) 백암문고의 일본책들
  나는 2009년 11월에 『학습 8체질의학』을 낸 이후에 1년여 동안 국립중앙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6) 그러면서 일본책을 찾기 시작한 계기는 권도원 선생의 「1차 논문」7) Reference 8)에 나온 혼마 쇼하쿠(Honma Shohaku)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혼마가 정리한 『鍼灸補瀉要穴之圖 說明書』9)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찾은 책은 1959년에 나온 제7판인데 이 책은 초판은 1941년(昭和 16년)이다. 

  이 책의 32페이지에 ‘井上惠理先生取穴表’가 있다. 혼마의 스승인 이노우에는 1941년 7월에 이 취혈표의 내용을 수제자인 혼마에게 구술(口述)로 전수하였다. 혼마는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잡지 『醫道の日本』을 통해서 발표 10) 하였으며, 자신의 저서에도 실었던 것이다. 11) 이 취혈표는 책에 세로쓰기로 실려 있는데 이것을 가로쓰기로 옮긴다.

  이노우에의 취혈표에 나오는 처방들은 사암(舍岩)도인의 허실보사법(虛實補瀉法)과는 사뭇 다르다. 동 시대에 고전파의 수장으로 활약한 야나기따니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취혈표12)가 거의 사암도인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13)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노우에의 처방에는 여러 가지의 보사법이 혼재되어 있다. 이 취혈표에 간경허증(肝經虛證)에 대한 처방이 있다. 보(補)하는 혈이 네 혈[曲泉, 湧泉 (蠡溝, 大鐘)]이고 사(瀉)하는 혈이 다섯 혈[厲兌, 曲池, 合谷 (豊隆, 徧歷)]이다. 나는 이 처방에 있는 ‘여구’를 발견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유레카’라고 외칠 뻔 했다. 여구가 포함되어 있는 처방이 ‘간경허증’ 처방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권도원 선생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침을 찔러보겠다고 작정했을 때,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고 나는 짐작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체질연구를 통해 자신이 태양인(太陽人)이며 간(肝)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통해서 자신의 간허(肝虛)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탐색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간경허증(肝經虛證)에 해당하는 침술 처방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처방을 통해서 자신의 눈병이 치료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실명 위기에까지 몰렸던 눈병을 고치게 된 것도 놀랍지만, 경락원리(經絡原理)를 체질론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아울러 얻게 된 것이다.

  나의 이런 추리에 대하여 권도원 선생이 ‘그건 맞지 않다’고 부인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선생이 일본책을 가까이 했다는 단서는 또 있다. 이명복 선생은 자신의 오래된 위장병을 고친 후에 스스로 권도원 선생의 제자를 자처한다.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환자가 아니라 제자로서 권 박사 댁에 드나들었다. 권 박사는 맥 짚는 법부터 가르쳐주었다. 나는 권 박사의 논문들을 읽었다. 일본의 관계서적과, 종류가 적었지만 우리나라의 책들도 닥치는 대로 읽고 연구했다.”

  내가 찾았던 일본책들은 거의 ‘醫道의 日本社’에서 출간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백암 유석형 선생이 소장했던 책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5) 오카베 소도
  1965년에 권도원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 『동아일보』는 ‘국제적으로 유대를 갖는 침구’라는 제목으로 국제침구학회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이노우에는 ‘대회장(大會長)’이라고 기술되고 있다. 사실 이노우에는 국제침구학회(國際鍼灸學會)를 개최한 대회장이 아니다. 대회장은 당시의 일본침구사회(日本鍼灸師會) 회장이던 오카베 소도(岡部素道)이다. 기사에서, 이노우에가 ‘체질침은 독창적인 연구 발견’이라고 찬사를 주었다고 하므로, 이 기사의 소스는 아마도 권도원 선생이 제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도원 선생은 일본에 갔을 때 오카베 소도를 만났고, 그의 진료소를 방문했고, 가족들의 체질을 감별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서울에 와서는 대회장이 이노우에라고 말했던 것일까.  

※ 참고 문헌
1) 本間祥白, 『鍼灸補瀉要穴之圖 說明書』(제7판) 醫道の日本社 1959.
2) 국제적으로 유대를 갖는 침구 『동아일보』 1965. 11. 27.
3) 『國際鍼灸學會誌』 醫道の日本社 1966. 6. 20.
4) 本間祥白, 『鍼灸經絡治療講話』(제9판) 醫道の日本社 1972.
5) 개인기증문고 공개 내일 국립중앙도서관 『한겨레신문』 1989. 5. 28.
6) 해부학자서 「늦깎이 한의」로 『동아일보』 1993. 6. 27.
7) 8체질의학회 『8체질건강법』 고려원 1996. 10.
8) [동의대학교 강연 녹취록] 1999. 12. 16.
9) [신기회 강의 녹취록] 2001. 3. 3.
10) 『미래한국』 〈357호〉 2009. 11. 18.
11) 이강재, 일도쾌차 신화가 되다 『민족의학신문』 〈1136호〉 2018. 4. 5.
12) 이강재, 눈병은 象徵이다 『민족의학신문』 〈1141호〉 2018. 5. 10.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그러다가 유석형 박사는 중국의 선도(仙道) 수행에 관심을 두면서, 대만의 선도 도사들과 교류하여 선도 수련에 전심하다보니 한국의 심령학은 자연히 와해되게 되었다. 한국심령학회 이후로 대한초능력학회와 정신과학학회가 그 길을 이었다.
2) 국립중앙도서관에 책을 기증하게 된 것은 아마도 유석형 박사의 별세(別世)와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별세와 관련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3) 1940년 9월에 고전연구회(古典硏究會)를 창립했다. 그래서 고전파라고 부른다.
4) 야나기따니 소레이(1906~1959) / 이노우에 에리(1903~1967) / 혼마 쇼하쿠(1904~1962)
5) 야나기따니 소레이는 1938년 1월에 잡지 『蓬松』을 발간했다. 그리고 10월에 제호(題號)를 바꾸어서 침구전문지인 『醫道の日本』을 창간했다. 혼마가 정리한 것들은 이 잡지를 통해서 발표되고, 또한 醫道の日本社를 통해서 출간되었다.
6) 2010년에 1년 동안 매주 화요일 오후에 진료가 없어서 주로 이 때를 이용했다.
7) Dowon Kuan, 「A Study of Constitution-Acupuncture」
8)S hohaku Honma, Des 14 Meridiens illustres, Idono Nihonsha, Tokyo, Japan, 1962
9) 本間祥白, 『鍼灸補瀉要穴之圖 說明書』(제7판) 醫道の日本社 1959.
10)『醫道の日本』 4卷 2號
11) 혼마의 다른 책인 『鍼灸經絡治療講話』 274페이지에도 동일한 취혈표가 실려 있다. 本間祥白, 『鍼灸經絡治療講話』(제9판) 醫道の日本社 1972. (初版 1949년)
12) 本間祥白, 『鍼灸經絡治療講話』(제9판) 醫道の日本社 1972. p.273
13) 그러니까 사암허실보사법(舍岩虛實補瀉法)을 그대로 베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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