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연구 없인 학문 정체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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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연구 없인 학문 정체성 없다”
  • 승인 2004.01.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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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사회·한의계, 의사학 홀대 말아야


독도 영유권 문제와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역사적 고증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동시에 한의학 문헌을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하는 의사학의 중요성도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있다.

현대는 총·칼로 전쟁을 하기보다 우월한 문화능력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형태의 전쟁을 하기 때문에 영토와 역사를 지키는 가장 우월한 수단으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르고, 같은 동양의학권에서 중의학과 다르다는 역사적 사실을 문헌적으로 입증할 때 한의학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이어서 세계보편의학으로 발전할 터전이 마련된다는 게 의사학 전공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한국의사학회(회장 맹웅재)는 이런 판단에 따라 지난해 11월 국제동아시아 전통의학사 학술대회를 통해 한·중·일 의학교류의 흔적을 더듬어 각 국가마다 전통의학이 무슨 목적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의 특성을 형성해왔는지를 규명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중국 등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영추경판본이 고려본이었다는 사실과 16세기 한­중간 한의학 교류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 한국한의학의 독창성을 입증한 바 있다.

역사적 고증의 중요성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의사학교실이 원전의사학교실에서 분리돼 점차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과는 달리 의학사에 대한 한의계와 국가·사회의 관심은 여전히 적은 편이다.

문헌연구는 국가프로젝트에서 제외되기 일쑤고 한의학계의 고문헌 연구도 문자에 치중할 뿐 내용과 의미를 규명하는 일은 뒷전에 밀리고 있다. 한의학제도는 없어도 의학사 연구는 활발히 하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사학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 나라의 정치인이 정통성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는 의사학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최근 일고 있는 민족주의와는 관계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일제시대 이래 한의학 논쟁의 핵심은 치료능력에 한정됐을 뿐 민족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김남일(경희대 의사학교실) 교수는 이 점과 관련해 “근대 한의학이 서양의학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념이 아닌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이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의학이 의학으로서 보편성을 가지려면 한의학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한의학에 대한 패러다임을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지식의 공급이 요구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한의학을 쉬운 언어로 번역하고, 인접학문과 교류하며, 생활에서 사고체계를 굴릴 수 있는 철학의 창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연과학을 무리없이 받아들이 듯 한의학을 무리없이 받아들이도록 학력고사에 출제하는 방법이나 한의대 교과과정 및 한의사국가고시 등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사학계가 모처럼 맞이한 사회적 쟁점들을 내재화하여 학문발전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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