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命論」의 구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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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命論」의 구조에 관하여
  • 승인 2018.07.0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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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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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동무 이제마를 탐색한 뛰어난 저작1)을 내놓았던 정용재 원장2)이 또 한 번 역작을 출간했다. 바로 『동의수세보원』3)이다. 이 책은 신축년(辛丑年)4)에 『東醫壽世保元』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 출간된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높은 성취를 이룬 저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로써 동무 이제마의 난해함을 모두 극복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을 딛고 향후에 그가 도달할 경지에 대해서 큰 기대를 품게 한다.

나는 8체질의학에 입문한 후에 사상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자료들과 책을 보았다. 용약(用藥) 면에서는 류주열 선배의 강의록인 『동의사상의학강좌』5)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6) 그런데 『東醫壽世保元』의 전반부에 위치한 논편들7)에 대해서는 어떤 자료나 책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간의 번역은 대개, 동무 공이 한자(漢字)로 제시한 용어(用語)에 겨우 조사(助詞)만을 붙여서 나열하는 방식에 그친 경우가 많다. 그동안 탁월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이을호(李乙浩) 선생의 번역8)조차도 별 감흥이 없었다.9)

고민을 하던 중에 2007년에 「성명론(性命論)」을 한번 번역해보자고 작심했다. 그리고 책과 자료를 헤치고 끙끙대면서 번역을 끝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번역과 내가 붙인 해설에 만족했다. 하지만 다음 논편으로 더 전진하지 못하고 멈추었다. ‘8체질론을 더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면 또 다른 눈이 열리겠지’ 하고 혼자 핑계거리를 만들고 그걸 믿고 미루었다.

동료들과 다달이 하는 공부 모임에서 2018년의 텍스트로 정용재 원장의 책을 정했다. 「사상인변증론」, 「광제설」, 「의원론」, 「장부론」을 지나 「성명론」을 읽었다. 올해 다시 「성명론」을 보면서 2007년에 만든 파일을 컴퓨터에서 지웠다. 그건 아주 졸렬하고 부끄러운 작업이었다.10) 정용재 원장의 번역과 해설은 훌륭하다. 해박하고 사상의학 전공자답게 원전(原典)에 대한 이해가 깊다.

「성명론」의 주인공은 천(天), 인(人), 지(知), 행(行)이다. 그 중에서도 지와 행이다. 그런데 지와 행을 통해서(方法) 도달(目標)하려는 곳이 바로 성(性)과 명(命)이다. 그래서 「성명론」이다. 「성명론」의 구조와 천·인·지·행의 관계를 궁리해 보면서 나는 정용재 원장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정용재 원장은 「성명론」의 ‘1조는 천기(天機)의 사분(四分), 2조는 인사(人事)의 사분’이고, 지와 행 또한 사분되어 있으니, 지가 설명되는 7조 앞에는 ‘기지유사(其知有四)’가, 행이 나오는 9조 앞에는 ‘기행유사(其行有四)’가 생략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천·인·지·행의 관계와도 연결되고, 「성명론」 전체를 이해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점이다. 정용재 원장은 천과 인, 그리고 지와 행을 대등한 비교 대상으로 설정하고 지를 천과, 행을 인과 연결시켰다. 그렇게 해서 11조의, “?臆臍腹行其知也 頭肩腰臀行其行也”를 “함억제복(?臆臍腹)은 하늘의 지(知)를 행(行)한다. 두견요둔(頭肩腰臀)은 인간의 행(行)을 행한다.”고 번역했다.

1조부터 10조까지 천·인·지·행이 서술되었고, 11조부터는 이것이 서로 엮이면서 관계가 서술되는데, 11조의 번역에서 정용재 원장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나는 천·인·지·행에서 지는 천과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와 행은 인에 한정된 부분이다. 나의 견해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도표를 만들었다. ‘성명론의 구조와 개관’이다.

이 도표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요순(堯舜)과 불위요순(不爲堯舜)으로 구분된 곳이다.11) 그 부분을 경계로 천·인과 지·행은 인(人)과 아(我)로 나뉜다. 25조에 가이위요순(可以爲堯舜)과 자불위요순(自不爲堯舜)이 나온다. 그리고 29조는 28조에서 지(知)와 우(愚), 현(賢)과 불초(不肖)를 제시한 것에 관한 설명인데, 여기에 ‘인지(人之)’와 ‘아지(我之)’의 구분이 나온다. 정용재 원장은 29조의 내용 중에 아자위심(我自爲心)과 아자위신(我自爲身)을 ‘내 마음과 내 몸이라고 착각한다’고 번역했다.12) 이목비구(耳目鼻口)와 폐비간신(肺脾肝腎)은 ‘인지’이고, 함억제복과 두견요둔은 ‘아지’이다. 이를테면 ‘인’은 보편론이며 원론이고, ‘아’는 실천론이며 각론이다.13)

사람(人)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런 가능성이 이목비구와 폐비간신이다. 참다운 나가 별도로 있고, 착각하는 나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요순의 가능성을 방해하는 인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我)의 마음(心)과 몸(身)인 함억제복(?臆臍腹之中)과 두견요둔(頭肩腰臀之下)에 있다. 그곳에는 이상적으로 지(性)와 행(命)이 거해야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사심(邪心)과 태심(怠心)이 언제든지 방해공작을 한다. 그래서 어리석고(愚) 못난(不肖) 처지에 쉽게 빠진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존심(存心)과 수신(修身)이다. 그리하여 지행(知行), 성명(性命), 도덕(道德)에 이르면 요순이 될 수 있다.

「성명론」은 37개의 조문(條文)으로 나눈다. 1조에서 6조까지는 천기와 인사를 이목비구와 폐비간신에 배당하였고, 7조에서 10조까지는 지와 행이 함억제복과 두견요둔에 있다고 하였으며, 11조에서 14조는 천·인·지·행이 대동(大同)과 각립(各立), 그리고 박통(博通)과 독행(獨行)한다고 하고, 15조에서 18조에서는 호선(好善)과 오악(惡惡)으로, 이목비구와 폐비간신이 선악의 준거(準據)임을, 19조에서 22조까지는 사람이 살면서 극복해야할 과제로서 사심(邪心)과 태심(怠心)을 말했다. 이하의 조문에서 그 실천방법으로 존심양성(存心養性)과 수신입명(修身立命)을 말했고 그리하여 요순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37조에서는 “存其心者 責其心也”라고 했다. 마음을 늘 꾸짖어서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명론」의 결론이면서 『東醫壽世保元』을 통한 동무 이제마의 지향이기도 하다. 책심(責心)은 이어지는 논편인 「四端論」의 애노희락(哀怒喜樂)과 연결된다.

동무 이제마는 ‘요순의 도(道)’ 곧 ‘공맹(孔孟)의 도’만이 천하를 다스리는 정도(正道)라고 말했다.14) 동무 공은 자신에게 익숙한 유학(儒學)의 용어를 선택해서 『東醫壽世保元』의 전반부에 위치한 논편들을 서술했다. 그것은 거의 『孟子』에 나오는 용어들이다.

‘인간에게 체질(體質)의 구분이 있다’는 것이 ‘참’이라면, 인류가 역사 속에 남겨둔 유산 속에는 다양한 체질의 흔적과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언어와 문자 속에도 체질은 각인(刻印)되어 있을 것이다.

동무 공은 세상과 인간을 네 가지의 구조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려고 했다. 인간을 태소음양인(太少陰陽人)으로 나눌 수 있다고 인식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열하고 집요하게 넷으로 나눈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전적(典籍)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떠받칠 수 있는 적절하고 정밀한 용어들을 탐색하고 정리했다. 그렇게 선택된 용어들은 ‘네 가지로 조직된 세상과 사람의 틀’ 안에 배치되었다. 그 용어들은 네 가지의 구분 중에 다른 세 곳이 아닌 오직 그 한 자리를 위해 존재하는 용어라고 믿어지는 것들이었다.

『東醫壽世保元』은 최후의 저술이고,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은 동무 공의 치열함과 집요함의 결정체다. 태양인(太陽人)은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밀하면서도 간략(簡略)함을 추구한다.15)

19세기말과 20세기초, 격동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반도 또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다. 외세의 침탈과 동족 사이의 전쟁을 겪었다. 그동안 이 위대한 학문의 전승(傳承)을 위해 애쓴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가치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인 시대를 지나야 했다. 그렇게 유학자 이제마는, 전후(戰後)에 한글이 익숙한 세대와 단절되었다.

한의학 공부를 한 사람들도 「성명론」을 펼쳐서 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이 용어들은 왜 이렇게 난해한가. 이런 철학적 의미들을 다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억지로 넷으로 짜 맞춘 것이 아닌가. 이것은 환자 치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가. 이것에 공감하고 써먹을 수 있는가.

천기는 사람이 태어나는(四象人으로 구분되는) 환경조건의 다름을, 인사는 사람들이 맡아서(四象人이 저마다) 해야 할 일의 다름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다름’이 『東醫壽世保元』의 기본이라고 동무 공이 모두(冒頭)에서 천명(闡明)하고 있다. 「성명론」에서는 이것만 기억해 두자. 그런 다음에는 너무 네 가지 구조에 몰두할 필요는 없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정용재 『이제마, 인간을 말하다』 정신세계사 2013.

2) 서울시 동대문구 세선부부한의원

3) 정용재 『동의수세보원』 글항아리 2018.

4) 1901년

5) 류주열 『동의사상의학강좌』 대성문화사 1998.

6) 이 책의 ‘정오표’를 만들어서 대성문화사에 보내기도 했다.

7)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8) 이을호, 홍순용 『사상의학원론』 행림출판사 1977.

9) 그건 당연하게도 내게 그런 가치를 알아볼 만한 실력과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0) 공부의 재미는,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성장한다.

11) 이 결정적인 아이디어는 이의원의 책에서 얻었다.

이의원 『인간, 세상 그리고 체질의학』 삼화출판사 1996.

12) 정용재 『동의수세보원』 p.138 글항아리 2018.

13) 이후에 34조에도 人과 我가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14) 『東武遺稿』 辛巳五月元山港問答

“이 글의 대부분은 고종 18년 신사년(1881), 동무 나이 45세에 원산항에서 일본인들과 필담한 내용이다.”

이창일, 『東武遺稿』 p.32 청계 1999. 1.

15) 이것은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추구했던 디자인 철학인 ‘단순하고 쉽게’와도 통한다. “뺄 수 있는 모든 것을 생략해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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