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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구출 하세요
2018년 06월 15일 () 07:11:33 김영호 mjmedi@mjmedi.com
   

김영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한국인처럼 참을성이 많은 민족이 드물다. 어떤 상황이든 <인내>가 미덕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모든 걸 참아내는 부모님들 아래 커왔고 뛰어놀아야 할 어린 시절에 책상 앞에 앉아 의무교육을 받고 자랐다. 한참 꿈을 펼쳐야 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하루 종일 공부에 매진했고, 대학초년 시절 잠깐의 자유 후엔 취업과 가족 부양의 의무수행으로 쉬지 않고 살아 왔다.

과거의 인내와는 별도로 오늘의 우리도 매일매일 인내심을 소모하며 살고 있다. 매일 운전으로 출근하는 길엔 적어도 5번 이상 무례한 운전자들과 마주친다. 층간 소음으로 매일이 전쟁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타기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출근해서는 직장이 아니라면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하루 종일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대다수 을(乙)의 입장인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참고 인내하며 쥐어짜낸 미소로 살아간다. 한 달을 살아내려면 버틸 수밖에 없다. 이 괴로운 일상을 벗어나면 더 괴로운 경제적 궁핍이 기다리니까.

여러분이 서 있는 오늘의 그 자리는 인내의 결과인가, 아니면 원해서인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주변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서 있는 자리는 아닌가? 다들 이렇게 산다고 한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고 한다. 원래 인생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라고. 그런데 아직 철이 덜 든 나는 우리 사회에 깔린 이런 보편적 인내와 고통의 정서가 불편하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넘어 꽤 심각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프다.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속 공간에는 마음을 지탱하는 기둥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기둥이 여러 개고 어떤 사람은 기둥이 하나라고 한다. 기둥이 여러 개인 사람은 한 두 개가 무너져도 일상이 유지된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고통이 엄습해도 나머지 기둥의 힘으로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반면 기둥이 하나인 사람도 있다. 여러 개의 기둥을 하나로 합쳐서 큰 기둥 하나로 살아가는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하나의 문제만으로도 일상이 휘청거린다. 이성적이고 냉철하지 못한 대신 감성적인 경우가 많아 철들고 얼굴 두꺼운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하는 이 유형의 사람들과 달리 사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하이에나 같은 어른들로 가득하니까.

이 사회의 보통 어른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면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오늘의 여기>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해야 한다. 힘들어 신음하고 있는 스스로를 구출해야 한다. 계속 내버려두었다가는 구출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구출할 수 있는 타인은 없다. 이미 모두 힘든 것이 정상이라는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 헤아려줄 사람을 만나기는 힘든 일이다. 다들 힘들다 하면서도 그냥 사니까 그냥 그 정도인 줄 안다. 술 한 잔하고 취미생활 좀 하면 견뎌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정도.

다시 말하지만 힘든 나를 구출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어서 구출해주자. 불쌍하고 가엾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구출하자. 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나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를 구출하더라도 당장은 이전보다 배고플 수 있다. 그런데 고통의 바다에 빠져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지, 어느 정도까지는 마음의 기둥이 무너지지 않는 수준에서 견딜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굉장한 소득이다. 적어도 나의 고통과 불행을 피하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경계를 알게 된다. 불행과 고통을 최대한 피하는 범위 안에서 살 기만 해도 그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오늘과 만나게 된다.

조선 후기 대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현은 자신의 집에 수오재(守吾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학자인 정약용도 유배를 가서야 ‘수오(守吾), 나를 지키는 것’의 어려움과 형의 참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의 세상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것의 출발은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나를 구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행복의 시작 역시 불행을 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그리고 여기’가 힘든 모든 분들, 용기내서 스스로를 구출하기 바란다. 매일 들리는 힘들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자.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이 곧 행복의 출발점이다. 정약용 선생도 그렇게 힘들었다는 ‘나를 지켜내는 일’, 그 일을 오늘부터라도 시작하자. 인생의 행복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를 통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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