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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儒醫 우암 송시열 발자취를 따라서
도서비평┃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2018년 06월 15일 () 07:12:14 정유옹 mjmedi@mjmedi.com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에서는 매 학기 한국의 의약유적을 답사한다. 이번에 답사할 곳은 송시열의 유적이 있는 대전과 괴산 지역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효종과 함께 북벌론의 대표적인 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송시열은 한의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김영사 刊, 이덕일 著

송시열은 지금도 많은 유학자들에게 송자로 칭송받으며 성인의 반열에 있는 학자이다. 얼마 전에는 송시열이 지은 『삼방촬요(三方撮要)』가 출판되어 송시열이 의학에 능통하였고 의술도 펼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송시열은 효종의 명령으로 『삼방촬요』를 편찬하였다.

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의 안상우 단장은 『삼방촬요』를 “국왕이 친히 나서서 편찬을 명하고 당대 최고 실권자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주관하여 팔도의 명의들을 소집해서 거둬들인 경험 치료법을 모은 책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민족의학신문, 2007년 8월 17일) 효종은 병자호란의 아픔을 북벌로 설욕하고자 하였는데, 전쟁에 필요한 의료 체계 정비를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하도록 한 것일까?

대전 지역에는 조선 중기 의서인『주촌신방(周村神方)』의 저자 신만(申曼)이 송시열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회덕향교와 의술을 펼친 진잠 지역도 있다. 병자호란 이후에 유학자들이 오랑캐에게 당한 치욕으로 같은 하늘 아래서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각 지역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이들을 산림(山林)이라고 한다. 대전 지역 산림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이고 신만은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산림의 학자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며 의학 지식을 갖추어 지역사회에 공헌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대전 동구의 우암 사적 공원에 가면 송시열이 예전에 공부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남간정사(南澗精舍)가 있다. 답사로 방문한 남간정사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오리들이 유유자적 놀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남간정사의 대청마루 밑으로 물 흐르는 길이 뚫려 있다. 그곳으로 주변의 계곡물이 흘렀다고 하니, 물소리 들으며 공부할 맛이 절로 나겠다.

우암 사적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괴산 화양계곡에 가니 송시열이 벼슬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한 암서재와 송시열의 위패를 모신 화양서원이 있다. 화양계곡에서 송시열은 명나라 주자학의 전통을 잇는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꽃피워나갔다고 한다. 화양계곡은 필자도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여름철 몇 번 가본 적이 있을 정도로 물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이다. 송시열이 중국의 무이구곡에서 영감을 얻어 이름 지은 화양동의 구곡을 따라 걸으며 송시열의 유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재야 역사학자인 이덕일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송시열의 모습과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송시열은 북벌론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효종의 북벌론은 송시열 때문에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시열은 율곡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았지만,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주자학을 교조주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소중화사상’으로 개방의 문을 닫았기 때문에 송시열을 계승하는 서인들에 의해 근대국가로 발전이 늦어지고, 서인에서 나온 노론의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송시열이 효종의 무모한 전쟁 의지를 꺾은 것은 아닐까? 오히려 ‘소중화사상’으로 민족사상의 자존감을 높인 것이 아닐까? 같은 사실을 보고도 역사학자의 성격에 따라 이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자호란 후폭풍으로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송시열은 효종을 말렸다. 전쟁보다는 자신이 수양하고 내실을 먼저 다지도록 건의하였다고 한다. 백성들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11책의 종합의서 『삼방촬요』를 저술한 것이다. 이는 『동의보감』 편찬 이후에 나온 종합의서로 『동의보감』에 비해 부피가 작으면서도 외형편부터 시작하여 응급처치까지 갖추어 당시 의학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삼방’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병증에 방약, 단방, 침법을 실었다. 값비싸고 구하기 힘든 방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송시열의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일찍 시작되었고 길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 가족들과 함께 시원한 화양 계곡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산책도 하고 물놀이도 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유옹 / 사암한방의료봉사단,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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