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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주변 환경과 설계 5
5. 상한론 교과목의 설계 試想: 에필로그를 겸하여
2018년 06월 15일 () 07:12:52 지규용 mjmedi@mjmedi.com

<상한론>은 명실 공히 한의임상의 전범으로 중국에서도 필수경전과목으로 되어 있다. <동의보감>을 지금도 인용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이 1800년 전 것을 지금도 대학에서 글자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공부한다고 하면 뭐라 할지 자못 궁금한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효율적인 교육만을 목표로 한다면 이미 알려진 탕증·약증을 학습하여 가감운용하면 족하겠지만 거기서는 질병이나 인체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나 치료법이 나오기 어렵다. 그렇지만 중경은 맥진법과 경방이라는 서로 다른 두 임상계열을 종합하고 친족의 2/3를 잃는 참혹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경방을 계승·창조한 실전임상가였기 때문에 원서를 그대로 읽으면서 생리병리현상의 해석방법과 맥증·징후를 결합하여 약물을 운용하는, 이른 바 낚시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가장 큰 목표여야 한다. <동의보감> 내용이 임상 각과에 들어 있듯이 <상한론>의 내용도 역시 각과에 들어 있으며, 처방은 방제학에 나오고 맥증은 진단학과 병리학에도 나온다. 즉 구체적 지식보다는 인체반응에 따른 논리전개방법과 질병 자체에 대한 사유방법을 파악하는 것이 교과목표로서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1) 중경의 임상·변증정신

<상한론> 서문은 의사로서의 윤리와 사회적 책무·의학관·애민정신 등이 잘 드러나 있어 의학윤리과목의 재료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 문답체로 된 부분(29~30)이나 조문이 긴 48조, 212조 등은 증후본질을 가리기 위해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대개 처방이 없는 조문 중에 많다. 그래서 본 교과수업은 암기 이전에 내용을 이해하고 상황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면서 임상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처방에 대한 의안 소개도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금궤요략>을 논의하면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2) 감염성 질환의 진단치료체계

상한병은 전염병이니 지금의 감염병학에 대응한다. 그런데 우리는 감염학 과목이 따로 없고 폐계내과에서 질환명으로 일부 혹은 예방의학에서 역학적 측면으로 다룰 뿐 감염병 자체를 총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다. 그런데 <상한론>은 교과과정에서 주로 조문 중심으로 하다 보니 현대에 통용되는 감염학 관련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다. 일부 대학에서 설강하고 있는 온병학도 마찬가지여서 대개 특정한 전문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일부 대학은 아예 정규과목에 없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몇 년에 한 번씩 전염병이 유행하고, 이상기온이나 식중독으로 인해 감기나 설사환자가 생기는데, 한의학은 능동적으로 국가정책에 관여하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첫 작업은 상한과 온병 및 감염학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들을 통합한 교과목을 만들어 임상교수가 담당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수백 년간 상한온병파의 쟁론이 있었던 것처럼 이것이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학설 중심의 근시안적인 주장만 앞세우지 않는다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보며, 임상경험이 쌓이고 기초교실의 실험연구와 결합되면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상한파와 온병파의 근본적인 분기이유는 삼음삼양과 위기영혈의 단계와 개념이 매우 이질적이라는 것인데 감염병의 유형과 병리과정에서 보면 각기 응당한 이유가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어서 감염병 논리로는 자연스럽게 통합할 수 있다. 실제로 상한과 온병의 통합변증방법을 3차원 공간좌표 상에서 병인·병위·병성을 구분하여 표현할 수 있으며, 컴퓨터로 구현한다면 병증간의 거리를 시각적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 내상잡병의 진단치료체계

전통적으로 <상한론>은 외감병을 삼음삼양으로 총괄하여 치료하고 <금궤요략>은 내상잡병 전문서로서 장부변증이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청대 유근초는 “육경으로 모든 병을 통괄한다”하고 가운백은 “중경의 육경은 모든 병을 위한 치법이지 오로지 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상한과 잡병의 이치는 모두 육경에 귀속된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국내의 상한방 임상기고내용을 보면 대부분 열병이 아닌 잡병에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논란이 상한·금궤·온병의 임상적 의의와 적용범위에 관한 여러 쟁론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이 밝혀진다면 <상한론> 교과교육의 목표나 방법도 명확해질 것이다.

삼음삼양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어서 인체의 공간구역과 그 대사기능의 주체이기도 하고(음양이합론), 때로는 음양기의 월령변화에 따라 승강성쇠하면서 신체에 일정한 징후를 나타내는 설명개념으로(맥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소문>을 선용한 중경에게도 삼음삼양은 시공간 복합개념을 갖는다. 중경은 상한이라는 열병의 병리전변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열론>을 따랐지만 실제 임상경험을 통해 순서대로 전변되지는 않음을 알았다. 즉 삼음삼양은, 풍한에 상한 뒤 음양기가 성쇠하면서 여섯 가지 표리병위에 나타내는 한열병태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시간과 병위를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채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내상잡병은 대개 한 곳에서 지속되므로 시간요인보다는 병위인 오체·기혈수분·삼초 등이나 오장의 변증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습·갈처럼 잡병 중에서도 표증을 겸하거나 주증이 삼음삼양의 병위와 같고 방증을 공유하면 이를 준용하는데, 실제로 <상한잡병론> 총 260방 중에 <금궤> 184방·<상한> 115방인데 39방은 중복되어 약 1/3에 해당한다. 역으로 이러한 삼음삼양개념의 광범성과 모호성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하며, 중국의 유소무교수가 제창한 삼부육병설이 바로 현대용어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한론>을 공부하는 목적이 상한방을 임상에 두루 운용하기 위한 것일진댄 <금궤요략>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개인적으로 <동의보감> 공부에서 가장 난관이 인용서중 <내경> <중경>이었고, 그 중에도 따로 배우지 않은 <금궤요략> 내용이었다. 중국에서는 <금궤>가 4대경전과목이라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걸로 알고 있다. (1)에서 제시한 중경의 변증정신을 학습하는 측면에서라도 중요 질환과 병리를 발췌하여 함께 다루도록 교재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상한론>과목의 교과과정상 정확한 위치는 임상총론 성격의 기초임상 교량과목 역할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렇게 되면 <상한론> 과목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방제학과의 일부중복 문제가 있으며, 수업이 산만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궤요략> 과목을 따로 만드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영보, 유도주, 진역인, 호희서, 이배생, 황황과 같은 경방대가들이 한국에서도 나오려면 이것도 반드시 병행해야만 한다.

 

(4) 상한 교과목 설계 시안

사실 지금까지는 그저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담하게 글을 써왔는데 <상한론> 과목에 이르니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애달프다. 한국의 한의학은 약 60년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상한론> 분야에서는 임상가들의 처방강의와 관련저서를 제외하면 본격적인 학술저서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상한론역전>·<상한론정해>·<상한론석강> 등의 몇몇 책이 있지만 대개 번역과 정리에 의존한 것이고 독창적인 발휘나 학술이론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대학 중에 <상한론> 과목에 대한 전임교수가 없는 곳도 많다. 그렇다 보니 졸업 후에 학술적인 갈증이 있었던지 수요가 몰려 과거 한때는 <상한론>에 대한 상업적인 강의가 정말 넘쳐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는 대개 처방강의가 많아서 요구의 이면에는 꼭 <상한론>이라기보다는 상한방 임상적용기술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물론 대학에 있지만 지금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상한론>에 대한 연구전통이 없어서 그런지 임상에서 상한임상을 수련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자연히 기초인 병리학교실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조교는 병원에서 임상수련을 받지 않고 기초교수도 법적으로 임상을 할 수 없어 실질적인 처방경험이 아닌 의안소개에 만족할 수밖에 없으니 내적인 고민·갈등이 어떻겠는가? 이런 사항들을 반영하여 <상한론> 교과목의 개선방안을 제안한다.

○ <상한론>과목의 목표는 첫째 중경의 변증정신과 치료원리에 대한 체득(임상교량)이고, 둘째는 감염성 질환에 대한 한의진단치료체계로서의 외감병학을 이수하여 임상·정책적 대응능력을 기르는 것이며, 셋째는 중경고방을 임상 각 질환·분야에 운용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 첫째 담당교수의 원서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상한·온병의 이법방약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 및 <금궤요략>의 주요 질환 및 병리와 방약에 대한 결합해석능력이 선행되어야 하고, 둘째 호흡기감염증을 온병학 각도에서 진료하는 임상교실과 교수가 있다면 온병학과 감염학을 독립시켜 교육을 전담하거나, 혹은 중의대의 문진부처럼 외감병학 담당교수가 외래임상만이라도 수행하면서 경험을 축적하여 교육 및 국가정책에 능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

이상으로 한의학교육의 미래설계 방안에 관한 글을 정리하면서 중의학의 회생역사를 간략히 언급하려 한다. 광주명노의 등철도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아편전쟁 이후 중의학은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의학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1985년에도 중의는 국가전담기구도 없이 계속 위축되는 과정이었는데 서향전 원수의 발열과 설사병을 치료하면서 중의진흥을 건의한 계기로 국무원에서 당년에 중의약관리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1986년 12월에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 다시 이 기구가 축소될 위기에 처했으나 8명 노중의들의 上書를 계기로 보류되었고, 대신 중의학원을 서의학원에 통폐합하려 하자(?大放小) 다시 이들 八老가 거연히 일어나 당시 주용기총리에게 건의하여 역시 당초 6개에서 1개로 최소화시켰으며, 또 금세기 초 사스가 유행하였을 때 중의가 참여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대책회의에 중의가 참여하도록 건의하여 이루어냈다고 한다.

 

물론 민주주의국가인 우리는 환경과 제도가 중국과 다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까지 대체로 한의계는 학생들의 정치적 요구에 의해 협회가 반응하여왔고, 지금까지 정부의 기구설치와 연구비지원이 늘었지만 한의계의 위축은 여전히 심화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협회나 학회에서 대정부·대사회적 이슈를 발굴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50~60년대와 70~80년대 신문을 보니 많은 원로 선배님들이 과거 학생시절 정열적으로 한의학수호운동을 하셨음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초심이다. 외부의 힘에 의탁해서 될 일도 아니고 스스로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특히나 지난 1년간처럼 내부갈등이 심할 때는 학·업계 원로와 중진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후진들에게 조언, 지원, 지지를 더하면서 역량을 끌어내고 조정·화해시켜 나갔었더라면 보다 쉽게 활로를 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의학교육의 미래 설계 역시 마찬가지다. 시급히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 한의학의 건물에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끝>

 

지규용 /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염증성 피부질환의 한의학적 접근과 진단, 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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