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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주변 환경과 설계 3
2018년 05월 25일 () 06:15:30 지규용 mjmedi@mjmedi.com

3. 한의과대학 교과과정 설계 試想:

문물이 시대의 산물이듯이 의학과 의료도 시대의 언어·기술·사유를 반영해야 하는데, 지금이 본질적인 면에서 최초의 시도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고전적 정통사상으로 인한 심리적 저항이 있어온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제도·경제적 측면에서의 내외적 압박은 우리에게 변화의 당위와 의지를 점점 더 고조시키고 있지만 아직은 외적으로 막혀있는 상태이다. 이른 바 수뢰준괘()상태이다. 일사와 이오가 응하고 있으며, 이면에서는 위와 아래가 힘을 모으는(췌) 기미도 있는데,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괘육삼이 동하여 명철하게 함으로써만 뜻을 이룰(기제)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육삼은 재야의 지도자격이니 한의계 각 방면에서 성취를 이룬 전문가들의 협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를 위해 1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의대 교과과정의 개선방안과 대책을 제시하여 본다.

 

(1) 블록식 관련교과목 집중 편성

기초과목과 임상과목은 단계를 나누기가 쉽지만 기초과목지식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선후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연관성이 높은 과목끼리 블록을 만들어 서로 콘텐츠를 협의하고 집중이수토록 하면 좋겠다. 아래는 하나의 의견예시일 뿐이고 더 다양할 수 있다.

1) 일반/전공 교양 블록

독서와 글쓰기, 의학사, 의철학/영어, 중국어, 경전강독(대학, 중용, 논어, 맹자, 노장, 묵자경설, 여씨춘추, 의학한문 등에서 주제별 발췌)/양생(명상과 수련), 의학개론(한、양통합), 컴퓨터 이해와 언어, 심리학, 의료시장과 경제

2) 전공 기초과학 블록

일반물리학, 생물학(일반생물학 요약), 화학(열역학, 산염기평형), 지구과학(자연과 우주, 생명과 환경 같은 통합강의방식)/ 세포생물학, 생화학 이상 3학기

3) 전공 기초의학 신체블록

해부학, 신경과학, 발생학, 조직학, 경혈경락학/AK(응용운동학) 또는 생체역학/생리학(한、양통합)/ 경전(내경난경발췌)송해

4) 전공 기초의학 약물블록

본초학(약용식물학), 임상식품영양학, 약리학(한·양통합), 방제학, 의약학연구(관련논문서치, 리서치계획, 발표연습)

5) 전공 기초임상교량 블록

병리학(한·양통합, 임상병리 포함), 진단학(한·양이론, 기기진단 포함), 면역학, 예방의학(한·양통합), 경전송해(상한금궤)/기종평. 이상3학기, 기초 총 3년

6) 임상의학 내과 블록: 5개 내과, 온병학(감염학) 4-1. 이하 병원임상실습/PBL 포함 동일

7) 임상의학 외과 블록: 외과학, 재활추나의학, 침구학, 안이비인후과학, 실습 4-1/2

8) 임상의학 전과 블록: 부인과학, 소아과학, 신경정신과학, 사상의학, 임상실습 5-1/2

9) 임상의학 보조 블록: 보건법규, 의학윤리(의료사고 포함), 응급의학/의료경영 5-2

10) 임상 후 진로특화 블록: 필드웍 3~6개월 프로그램, 논문/결과보고서 발표/국가고시 4~5년차 중 1학점 2시간 선택과정 포함 6-1/2학기 임상 총 3년

이렇게 교과과정을 바꾸는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의무강의시수 변동에 따른 교수개인별 상황의 변화이다.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일단 공동의 해결과제가 있음을 지적해 둔다.

 

(2) 한양통합교재/강의 연구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한양방 두 개씩 배우는데, 경희대로 옮기고 나서도 50년 이상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의학과 양의학은 하나의 현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므로 더 보고 덜 보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공통분모가 있어야 하고 실제 그러하다. 필자가 학생시절 겪었던 패러다임의 혼란을 더 이상 학생들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

2010년에 필자 소속 학교의 ‘통합강의 및 PBL수업’에 대한 도입여부조사에서 약 70%가 찬성하였는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있었지만, 일찍부터 이러한 고민과 일의 당위성、가능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통합교재/강의를 어떻게 준비하고 일정표를 짤 것인가 하는 실현방법이다. 8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양방추세가 심화되어 회의적인 의견도 있는 것 같지만, 더 늦출 수는 없고 최소 4년 정도의 면밀한 계획을 세워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1년간 전체 합의 및 과목별 오픈방법토의, 2년간 교육인력풀 및 교재 구성, 강의방법 연구, 1년간 학회내 예행연습 등이다.

 

(3) 교육방법: 誦·解·別·明

실험실의 닫힌 시스템에서 정립된 근대의학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 처음부터 질병을 오픈시스템으로 보고 연구해 온 한의학이 양의를 무조건 따라가선 안 된다. 의학분야에도 컴퓨터 활용이 늘고 국가고시 추세도 해결형 위주이다 보니 암기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있으나, 설사 그렇다 해도 여전히 개별의사가 결정주체이므로 핵심근거지식으로부터 다른 범주를 종합하여 새로운 관계와 법칙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소문 저지교론>에서 말하는 공부방법은 송해별명창인데 사실은 모든 학문이 그러하다. 매 교과과정에서 필수내용을 암기 이해하고 다양한 예제를 통하여 유사한 내용들을 비교감별 및 변명하여야 임상에서 창달할 수 있는 것이며 PBL도 별명과정의 일환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주요경전、과목별로 현대 일반학문의 상식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필수암기 세목을 결정하고 기본적인 이해방법을 표준화하여 이를 기종평가에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선택과목/과정 대폭 확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 편입되는 신규과목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여 특화된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입시단계의 전형에서부터 졸업단계의 본과이수까지 새로운 과정(course)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수의 수요에 맞춰 하나의 대학에서 모두 설강하거나 운영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과정들은 교수/학생의 인식변화와 함께 최소 3년의 준비기간을 두고 수요조사, 콘텐츠와 방법, 행정절차, 인력 등의 여건을 두루 고려하면서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선택과목과 과정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타 단과대학 예컨대 자연과학대학이나 공대의 교양/전공기초강의 혹은 KOCW 강의와 같은 외부학점을 인정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위키그룹 구성을 촉진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전문성을 유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특정 한의대 혹은 지역대학간 특화를 유도하여 필요한 학생들을 수용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좋고 각 대학에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려면 학점교류나 공동개발 등 다방면의 대학간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특수코스들은 운영상 1년 2학기제보다는 3~4학기로 짧을수록 편리할 수 있으므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5) 교수 트랙 분리 및 성과평가방법 개선

혹자는 학교 교수들에게 지금까지 뭐했냐고 힐난하겠지만, 학교현실은 제도적으로 9시간(11시간도 있다 함) 이상 의무강의를 해야 하고 SCI나 임상, 그것도 한양방협진이나 근거중심 진료지침 중심으로 지원되는 정부과제를 강요받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한의학기술의 연마자체는 정체하거나 심지어 퇴보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60~90년대는 한의학계에서 많은 새로운 임상학설·임상가와 학파가 등장하여 무엇을 배워야 할지부터 결정하기 어지러울 정도였으나 근래 들어서는 대부분 서양에서 건너온 정보들을 받기에도 벅찬데다 학교에서의 적응을 위해서는 순종하던지 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한의학은 빈사상태이다. 순종만 해서는 안 되고 맞서서 개척해야 한다. 연구도 강의도 필수적이나 어느 하나도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한 사람이 둘을 다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연구중심으로 치우쳐 있어서 새로운 코스나 과목을 만들며 교육문제를 돌보다 보면 일은 몇 배인데 성과는 없어 바로 무능한 교수가 되기 십상이니 누구나 꺼리게 된다. 그러므로 교수들이 능동적으로 연구트랙과 교육트랙을 나누고, 평가도 적절한 방법을 공론화하여 당국에 의한 기계적 평가에 대응할 수 있길 기대한다. 물론 매사 계산하면서 성사를 도모할 순 없지만 한의학의 운명을 당국이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외부동조자를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학교육을 누구와 더불어 해결할 수 있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의학의 향후 설계와 관련하여 협진과 의료일원화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의약산업을 주도하는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여러 해 전부터 한양방협진연구와 한의약산업육성을 위한 과제를 진행해 오고 있고 한의계에서도 협진은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의료일원화요구도 강도 높게 나오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어쩌면 시대의 추세이고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협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결함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다 협진이 가능한 것은 양의사를 고용할 수 있는 대형한방병원, 그것도 막대한 자금력이 있어야 도입할 수 있는 진료방식이다. 또 의료일원화는 2000년대 초에 그것도 국가적 어젠다로 선점하여 추진하면 좋았을 과제이지 이미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선택할 최선의 방책은 아닌 것 같다. 등소평이 대국을 이끌면서도 도광양회 하였듯이, 내부적으로 전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하여 장차 굴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데 집중하되 겉으로는 의료정책의 사회적 평등과 자산의 균형배분을 주장하면서 조심스럽게 사회 각 분야 및 국외의 학문·산업단체와 연대(solidarity)하여 시장을 키워가는 것이 첫 단추가 아닐까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우리의 선택지가 생길 수 있으며, 일원화 주장도 저들 혹은 정책입안자에게 무겁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2000년 초에 일원화가 저들의 관심을 끌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자기들 시장의 잠식에 대한 위기감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원화를 모토로 당선된 협회가 정책을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은 뽑은 회원에 대한 의무임을 잘 아는 필자가 괜히 딴죽을 걸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시행에 있어서는 완급과 절차가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만일을 언급하는 것일 뿐이다.

이상에서 현시대에 맞는 한의대의 미래설계와 그에 따른 교과과정 시안을 제안하고 이를 시행하는데 필요한 내용 중 필수적인 선결과제를 제시하였다. 물론 이것은 필자가 대학교수이므로 대학 내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중심으로 한 것이고, 협회나 임상에서는 보험이나 한의기술 확대 등의 정부정책과 제도개선에 진력하여야 한의학의 미래설계가 안팎으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처음에 언급하였듯이 이 일은 어느 누구의 마스터플랜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의 협조와 참여가 있어야 하므로 다양한 찬반의견들이 표현되어 회원 대다수의 여론을 확인하는 장, 나아가 관심 있는 사람들의 토론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음 호에서는 구체적으로 개별과목인 병리학의 설계방향을 예시하기로 한다.

 

지규용 /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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