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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마흔,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
도서비평┃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2018년 05월 11일 () 07:15:36 서주희 mjmedi@mjmedi.com

소통전문가 김창옥을 아시나요? 공고를 나왔지만 25살에 성악과 학생이 되었고, 이후 성악가가 되지 못했지만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소통전문강사로 활약하며 여러 매체에서 인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허를 찌르는 유머로 강의 내내 객석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강연자이지만, 그 자신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고백한다.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침묵하라는 신부님의 권유로 아시아 사람은 단지 그 한 사람 뿐이었던 프랑스 시골에 있는 수도원에 가게 되었다. 2주간 침묵하며 지낸 어느 날, 겨울 포도밭 언덕에 앉아있는데 지나온 삶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어디선가 ‘그래,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소리에 30분간 통곡을 하였고, 실컷 통곡을 하고 나니 흙탕물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고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제임스 홀리스 著,

김현철 譯, 더퀘스트 刊

이 분 뿐만 아니라, 가깝게 내 주변에서도 중년의 시기에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지진을 겪고 있는 지인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후천적으로 얻은 성격과 내면의 모습 사이의 간격이 클수록 마흔 이후의 삶은 불안정해진다. 아마도 내면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 투사한 경우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융학파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홀리스는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을 겪는 중년의 위기는 우리가 진정한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마흔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마흔의 위기’를 ‘중간항로(Middle Passage)’라고 부른다. 중간항로는 아프리카 서해안과 서인도제도를 연결하는 대서양 횡단 항로로, 아프리카 노예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싣고 가는 바닷길이었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긴 채 그저 이끌리는 대로 살다보면 전혀 원하지 않았던 목적지에 닿게 되기 때문이다.

중간항로의 초대에 응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삶의 페이지를 인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우리 스스로 불러낸 삶의 거대함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이 시기 전까지는 책 제목 그대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정신없이 달려왔을 것이다. 부모의 가치체계 속에, 또 그 부모 역시 대물림 된 가치관으로 살아왔고, 제도화된 교육 제도 안에, 사회적 가치를 배우고,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무수히 많은 페르소나와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어 자신의 진짜 존재를 의식화하려 한다. 그것은 씨앗이 발화되어 식물로 성장하는 게 자연의 순리이듯, 인간 역시 미분화된 상태에서 충분히 분화하여 균형이 잡히고 통일된 인격으로 발달하려는 개성화는 타고난 자율적인 과정이다.

선불교의 유명한 그림 ‘십우도’를 보면 소를 찾아 헤매다 소를 찾았고, 그것을 길들였지만, 애써 찾은 소는 없고 자기만 남아 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제자리로 온 거 같지만,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아닌 고요하고 평화로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180도 돌고, 또 180도 돌아 제자리에 왔지만,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면의 상태이다.

아마 김창옥씨도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예전과 같이 여러 매체에서 강연하고 책을 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분명 달라져있을 것이다. 2주간의 침묵 끝에 들은 그 소리로 그는 제자리에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증상들은 환영할 일이다.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화살표 역할 뿐 아니라 정신이 자율적으로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융은 신경증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영혼의 고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삶은 콤플렉스가 하는 일에 무지한 만큼, 그리고 본성과 실제 선택들 사이의 점점 벌어지는 간격을 깨닫지 못하는 만큼 비극이며, 마흔의 위기감은 대부분 그 간격에서 나오는 아픔에서 비롯된다 하였다. 이는 예전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달라는 외침이다. 따라서 중년의 스트레스 증상은 후천적 성격 아래에 숨어있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환영할 일이다.

40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不惑의 나이이다. 그간 소에 홀려 열심히 찾으러 다녔다. 중년의 위기를 통과하고 난 이후는 이제껏 나를 홀려왔던 외적인 가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후는 힘들게 되찾은 자기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통합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이제까지는 본의 아니게 많이 흔들려보기도, 결승선이 보이지 않지만 숨이 차도록 달려보기도, 잘못된 길도 수없이 들어섰다가 다시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나답게 살아보자.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및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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