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CLC의 눈으로 보는 근대 산과 임상의 변천과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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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CLC의 눈으로 보는 근대 산과 임상의 변천과 시행착오
  • 승인 2018.05.1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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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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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모유수유, 산전산후관리,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전문가 직능이다. 왜 이런 좁은 분야의 전문가가 존재하는가? 기존 의료인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한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부족하다는 말은 매우 완곡한 표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료서비스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출산과 수유를 방해하여 산모와 아기의 예후를 악화시켜온 역사가 존재한다. 여성들이 이에 저항했고, 동시에 인류학, 생태학, 비교생물학, 통계학, 보건학 등의 학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자연주의적 출산과 수유 문화에 다시 의미를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IBCLC는 아기와 엄마의 최상의 건강을 위해 의료 관습을 바꿔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근거 없는 추측으로 시행되었으나 한동안 표준 지침으로 쓰인 회음절개

1920년 미국 시카고의 산과의사 드리는, 태아가 산도를 통과하면서 극심한 압박을 받아 두부 손상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만시 외상을 줄이기 위해 분만 초기에 산모를 마취시킨 뒤 회음절개를 크게 해서 산도를 넓히고 겸자로 태아를 끌어내는 예방적 겸자술을 고안했다. 이후 수십년간 겸자 사용이 대중화되었으며 예방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 어떤 시술보다 산모와 아기에게 더 많은 외상을 일으켰다. 겸자를 어설프게 사용하면 산모의 질은 난도질되고 태아의 귀와 코가 뜯기고 두개골이 움푹 파인다. 드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의사만 출산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예방적 겸자술은 미국 대부분의 병원에서 표준 지침이 되었다. 1983년이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회음절개술에 대한 주요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회음절개가 질과 항문 사이를 더 잘 찢어지게 하고 변실금, 성교통 등 후유증도 더 많이 남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제서야 90%의 미국 산모들이 받던 회음절개술에 대한 표준 지침이 변경되었고 미국에서는 회음절개술 비율이 20%로 떨어졌다. 표준 지침이 변경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의사들의 편의와 관습에 의해 여전히 회음절개가 널리 행해지고 있고 제대로 된 통계도 나와 있지 않다.

 

■산모가 의식 없는 상태에서 분만한다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표준 지침으로 쓰인 반마취 분만

에테르, 클로로포름의 시행착오를 거친 분만 마취는 스코폴라민-모르핀을 이용하는 분만(트와일라잇 슬립)으로 옮겨갔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하는 여성은 괴짜 취급을 받았다. 보호자 참관 없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진통하는 여성은 매질을 당하거나 성적으로 학대당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중반에 미국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은 모두 약에 취한 상태에서 아기를 낳았고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여전히 스코폴라민-모르핀 마취가 표준 진료 지침으로 유지되었다. 현재는 경막외마취가 표준으로 자리잡았으며 미국에서는 60~90%로 경막외마취 비율이 매우 높고 한국은 60% 정도로 중간 정도이며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는 10% 내외로 경막외마취 비율이 낮다. 경막외마취는 이전의 에테르, 클로로포름, 스코폴라민에 비해서는 안전하지만 여전히 제왕절개나 유도분만의 비율을 높이고 모유수유 성공률을 낮추는 부작용이 있다. 산모들에게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 제대로 고지되지 않고 있다.

 

■산욕열의 근거가 제시되어도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았던 시기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를 기념하는 우표. 그가 일하던 빈 종합병원 산과병동의 모성사망률은 조산원 모성사망률의 세 배에 달했다. 제멜바이스는 손을 씻으면 산욕열이 줄어든다는 명백한 결과를 발표했지만 당대 의학 커뮤니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멜바이스 사후 1년에 파스퇴르가 세균설을 확정한 뒤에야 의학계는 세균이 패혈증의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18세기부터 늘어난 유럽과 미국의 병원은 매우 불결했으며 무료로 입원한 극빈층의 산모들은 검증되지 않은 시술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19세기 말, 현재의 미국 브리검여성병원의 전신인 보스턴해산병원에서 산모의 75%가 산욕열에 감염되었고 이들 가운데 20%가 사망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사체에 대한 부검을 하고 곧장 아기를 받으러 분만실로 가곤 했다. 의사의 손톱 밑이나 피부 틈새에 부패한 사체 조직이 끼어 있는 상태로 손을 씻지 않고 분만대로 가서 산모의 질 안에 손을 넣어 내진을 했으므로 패혈증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사들은 산욕패혈증이 여성들의 옷차림, 긴장, 환기 부족 등 때문이라고 보았다. 성매매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입원하던 병원에서는 오히려 출산시 산욕패혈증이 덜 나타났는데, 의사들이 이 여성들은 부검이나 내진을 할 가치가 없다고 보아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1795년에 스코틀랜드 의사인 고든이 산욕열이 의사들의 더러운 손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의사들은 격노했고 자신들이 감염의 원인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1843년 하버드대의 교수 홈즈도 손을 씻으면 산욕열이 예방된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의사들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1847년 헝가리 출신인 빈의 의사 제멜바이스가 자신의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염소화석회로 손을 씻게 하여 산욕열 사망을 20%에서 1%로 감소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동료 의사들은 이를 헛소리로 치부하고 멸시했으며, 제멜바이스는 우울증에 걸렸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1920년대까지 미국과 유럽의 병원에서 산욕열로 인한 모성 사망률은 40% 이상이었다. 무려 1940년대나 되어서야 항생제 사용으로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반대 급부로 과도한 멸균에 집착한 시기

일단 산욕열의 원인이 세균이라고 확정되고 나서 의사들이 손을 씻기 시작하고 항생제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모성사망률이 감소했다. 전반적인 영양과 위생의 개선 때문에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이 감소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지만, 소독 역시 의료의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자 의사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멸균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산모가 소독 부위를 만져서 오염시킬까 두려워, 분만대에 산모의 팔과 다리를 묶고 어깨와 가슴을 쇠로 고정하며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자세(쇄석위)로 출산하도록 했다. 굴욕적이었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 고정자세로 누워 있어 신경마비가 발생할 수 있었다. 또한 질 내부를 계속 소독하면 정상 세균총이 파괴되고 진균이 득세할 수 있어 오히려 감염 위험이 올라간다. 어른들로부터 감염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신생아는 신생아실에 격리되어 4시간 간격으로만 젖을 먹을 수 있었고 단지 저체중아만 좀더 짧은 간격으로 젖을 먹을 수 있었다. (신생아는 밤중 수유 없이 밤새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인 후에나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엄마와 같은 방을 쓰지 않고 면역이 취약한 신생아들끼리 모여 있으면 감염 위험은 더 올라가며 모유의 면역을 충분히 전달받지 못해 아기들은 더 자주 아프게 된다. 이렇게 외려 아기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신생아 격리 관행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여성들은 당연히 반발하였고 가정 출산이나 조산사 참여 출산 붐이 일었으나, 의사들은 가정 출산은 위험하고 영아 학대라며 근거도 없이 반대했다.

 

■조산사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들

1910년대부터 남성 산부인과 의사들은 조산사가 얼마나 무지하고 불결한지 산모들에게 반복해서 캠페인을 했다. 하지만 당시 산과 의사들이 받았던 교육의 질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조산사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더 풍부했다. 1912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산부인과 교수인 윌리엄스가 산부인과 전공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120개 의과대학의 교수들에게 교육의 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산부인과 교수 대부분이, 산과 의사가 조산사보다 환자들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산부인과 교수는 자신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살아 있는 아기를 받아 본 경험이 전혀 없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목표하던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윌리엄스는 이 결과에도 불구하고 되려 조산사를 공격하는 결론을 내렸다. 캠페인 결과 조산사가 참여하는 출산이 줄고 의사들이 참여하는 출산이 늘어나자 영아 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서의 조산사는 간호사와 조산사 면허를 함께 갖고 있으면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조산사가 대부분이며 이는 한국도 비슷하다. 의사 주도의 출산에 비해, 조산사 참여 출산은 제왕절개 비율이 낮고 유도 분만, 회음절개 등의 의학적 개입을 거의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영아 사망률이 낮다. 네덜란드에서는 절반 이상의 출산을 조산사가 주도하고 30% 이상의 출산이 집에서 이루어지며 모성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가정 출산이나 조산사 참여 출산의 결과, 산모와 아기들은 실제적으로 더 건강하다. 이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산사들이 참여하는 출산 예후가 좋다는 광범위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와 있지만, 조산사들은 여전히 근거 없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의사들도 이 대목에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현재의 산부인과와 소아과 지침이 얼마나 근거에 기반해 있는지 살펴보겠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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