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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진돈의 도서비평]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
도서비평┃한시미학산책: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2018년 04월 27일 () 06:56:56 김진돈 mjmedi@mjmedi.com

중고시절 한시를 배운 후로 최근 한시에 푹 빠지게 해준 책이다. 15년 만의 완결개정판으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하고 도판을 추가하여 시와 그림의 예술적 전통의 연관성을 실감나게 했고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탐구한 입문서로 풍성한 사례로 한시세계를 보여준다. 다양한 형태미와 내용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한시와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주제, 형식, 작법에 따라 스물네 가지 이야기로 나누었다. 과거에서 현대시인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높은 안목과 전통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정민 著, 휴머니스트 刊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시와 그림은 연관이 깊다. 시는 ‘소리 있는 그림有聲之畵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無性之詩’이다. 화가는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寫意傳神’해야 하는데 구체적 방법은 ‘立象盡意’이니,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뜻을 전달하는데,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다. 이처럼 시와 그림은 공통점이 있다. 언어란 불완전하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고 시비가 생겨난다. 언어가 뜻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주역』<계사전상>에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했다. 『주역』에서 성인은 상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立象盡意,라는 구절이 있는데, 말하는 이의 ‘立象’이 듣는 이에게 ‘盡意’되기까지는 몇 차례의 유추와 비약이 감행된다.『토정비결』이 일러주는 점괘는 모두 ‘입상’만으로 되어 있어 그 안에 담긴 뜻은 견강부회를 낳기 마련이다. 시인은 인간에게는 단지 입상을 통해서만 진의할 수 있는 妙悟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당시와 송시의 차이를 다양하게 구분하는데 당시나 송시는 시의 취향 혹은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쓰인다. 한시사의 전개에서 당시풍과 송시풍의 변화교체가 쟁점이 되어온 것은 그 시대 문학의 풍격과 성향의 자연스런 변화와 관계된다.

또 띄어쓰기나 모호성 때문에 해석이 달라져 언어는 종종 오해를 일으킨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언어의 모호성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다. 뛰어난 시는 어떤 의미에서 언어의 포용성과 융통성을 극대화한 시다. 시인은 결코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 여운을 즐기려는 까닭이다. 또한 모호성은 문화적 교양이나 문학 관습을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鄕試에 제목이 胡地無花草로 내걸렸다. 장원에 뽑힌 작품은 같은 글자의 풀이가 모두 제가끔이다. 한문의 모호성을 말할 때 인용하곤 하는 이야기이다.

오랑캐 땅 화초가 없다고 하나/ 오랑캐 땅엔들 화초 없을까?/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마는/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네 胡地無花草/胡地無花草/胡地無花草/胡地無花草

명나라 사진은 “景은 시의 매개이고, 情은 시의 배아다. 이 둘이 합하여 시가 된다”고 하여 무심히 경물과 마주하면 마음속에 정이 일어난다. 경이 정의 매개가 되는 까닭이다. 청나라 왕부지는 “정과 경은 이름이 둘이나 실제로는 나눌 수 없다. 시에 뛰어난 자는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가장자리가 없다. 빼어난 시는 정 가운데 경이 있고 경 가운데 정이 있다.” 이른바 ‘묘합무은妙合無垠’의 주장이다.

박은은 역대 시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시인이다. 18세기 들어 다시 각광을 받았다. 정조도 열렬한 팬이었다. 절창으로 일컬어진 <福靈寺> 시의 5,6구다. 봄 그늘 찌푸려도 새들은 조잘대고/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만 서글프다. 여기에서 봄 그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 비가 내릴 것 같다. 새들은 아랑곳 않고 즐거운 노래가 한창이다. 풍상을 겪어 늙은 나무는 무표정한데 슬픈 것은 엉뚱하게도 바람이다. 슬프게 듣는 것은 시인일밖에. 시인의 정이 경에 녹아들어 가장자리를 찾을 수 없다.

시마는 옛사람의 시를 향한 열정의 다른 표현이다. 詩鬼는 사물의 비밀을 끝까지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이다.

조선 중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이정귀는 <習齋集序>에서 문장은 하나의 재주이다. 반드시 오로지한 뒤에야 공교해진다. 번화하고 명성과 이욕을 좇는 자들은 오로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시에 공한 자는 대개 궁하다. 오로지하게 되면 저절로 공교해진다고 하여 시궁이후공 대신 詩專而後工을 내세웠다. 시인의 정신에 달려 있을 뿐이다.

오늘날 젊은 시인들이 실험하고 있는 각종의 형태시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다. 조선 후기의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현대 해체시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1980년대 해체시가 전통 시양식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통해 관습적 시관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김삿갓을 비롯한 시인들은 기교지상주의적 관념 시단에 대해 조소와 야유를 보냈다. 희작시의 특징은 파격과 해학, 민중성과 익명성으로 대표되며 기존 한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리며 이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겨냥하는 언문풍월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개정한 책에 옛것에 같으면서도 다르게, 다르면서도 같게 하려면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정신을 첨가했다. 같은 것은 정신이요 알맹이며, 다른 것은 껍데기요 형식이다. 현대시와 한시의 만남은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하는 상동구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만나듯 한시와 현대시도 그렇다. 한유는 옛사람의 정신을 본받되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그것을 운용하는 통변의 정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해박하고 다양한 해석으로 옛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의 인문정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김진돈 / 시인, 운제당한의원장, 민주평통자문회의 송파구협의회장, 전 송파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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