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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음식과 의학의 만남
도서비평┃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문화이야기: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2018년 04월 20일 () 07:43:24 정유옹 mjmedi@mjmedi.com

자칭 ‘박물관 마니아’인 필자는 어느 지역이든지 여행 갈 적마다 박물관을 꼭 찾는다. 지난 추운 겨울날 강원도 양양의 쏠비치 콘도를 가게 되었다. 태백산맥이 막아주는 영동지방답게 따뜻했다. 이러한 날씨 때문에 신석기인들이 정착했을까? 콘도 앞에 양양 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다.

   
린다 시비텔로 著
최정희·이명미·김소영 譯
도서출판 린 刊

박물관의 유물 중에서는 여러 토기와 도끼, 그물추, 사람 얼굴 모양 조각 등이 있어 BC 5000년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필자의 눈을 끄는 유물이 있었다. 바로 동그란 원기둥 형태의 갈돌과 평평한 갈판이었다. 약재를 갈았을까? 아니면 신석기인들이 갈아서 먹어야 하는 밀을 재배했을까? 해답은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었다. 근처에서 그 시대의 도토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물에 담가 떫은맛이 사라지면 가루로 만들어서 근처 남대천에서 잡은 물고기와 함께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구석기인들이 주먹도끼를 이용하여 육식동물들이 다 먹고 남기고 떠난 동물들의 뼈를 쪼개 골수나 뇌를 먹었다고 주장하였다. 구석기인들은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는 조개나 물고기와 함께 지금도 미식가들이 즐기는 동물의 뇌 같은 것을 먹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식문화는 다르다. 자연환경에 따라, 종교에 따라,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우리는 각기 다른 식문화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식문화를 인류의 역사에 따라 정리한 책이 있다. 역사학자인 린다 시비텔로가 저술한 『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문화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식의 변화가 오게 된 계기와 변화상을 주로 서양의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책을 읽어보니 불의 발견, 종교의 전파, 신대륙의 발견, 전쟁 등과 같은 큰 사건으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음식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의 발견으로 인류는 요리를 시작하였고, 종교의 확대 속에서 동양에서 향신료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하여 고추, 토마토, 감자, 담배 등 우리가 지금 흔히 먹고 있는 음식 재료들이 신대륙에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휴대가 편리한 인스턴트커피와 스팸 등 통조림 음식들이 개발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과거 유럽에서도 건강을 위하여 4체액설에 따라 음식을 먹었던 조리법이 있었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마른 사람은 붉은 고기를 즐기고, 뚱뚱하고 찬 사람은 음식에 정향, 육구두, 후추 등의 향신료를 써서 매콤하게 먹는 것이다. 한의학의 음양관에 따라 ‘산수신산(酸收辛散)’의 방법을 이용하여 뚱뚱하면 맵고 먹고, 마르면 신 것을 먹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다.

동양에서도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예부터 ‘약식동원(藥食同源)’ 이라 하여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고 하여 음식을 약처럼 생각했었고, 약선(藥膳)이라는 식치의학(食治醫學)이 발달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의 『의방유취』에서는 편마다 식치를 방약, 침구, 도인과 함께 치료법으로 삼았었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류성룡이 저술한 『침구요결』에도 약선 음식 조리법이 있어서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우리 선현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음식의 과도함도 경계하였다. 사상의학에서 이제마는 ‘주식·재·색·권(酒食財色權)’을 4대 욕망으로 규정하여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였다. 음식은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이지만 과도하게 발현될 경우 병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많은 음식의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먹방’ 이라는 방송의 카테고리가 생겼듯이 음식 문화는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재탄생 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음식문화는 “짧은 시간에 많이 먹거나, 경쟁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매운맛을 보여준다든지......” 라는 식으로 가학적이고도 자극적으로 가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음양관’이라는 상대주의 철학이 있다. 한의사라면 건강을 위하여 뚱뚱하다면 건조하게 하고, 마른 사람이라면 습하게 하는 음식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몸이 차다면 따뜻하게 하고 몸에 열이 많다면 열이 식을 수 있는 음식을 권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맞는 건강식품을 권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한의학의 ‘식치의학’ 전통을 살려 음식문화를 건강하게 하는 데 한의사들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정유옹 / 사암한방의료봉사단,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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