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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한의사회 초창기 맴버로 활동한 한의사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291): 崔鍾還(1921∼?)
2018년 03월 31일 () 07:56:19 김남일 mjmedi@mjmedi.com
   
1962년 간행된 한국한방계인사선집에 나오는 최종환 선생 사진.

2004년 3월 대구광역시 한의사회(당시 회장 신창환)에서는 『大邱廣域市 韓醫師會 五十年史』라는 제목의 대구광역사 한의사회의 역사를 정리한 책자를 간행한다. 이 책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발견된다.

“일제의 한의학 탄압과 해방 후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법에 의하여 한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제도권 의료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한편 대구 지역에서는 의생회라는 단체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오다가 1950년 12월 22일 국민의료법 시행세칙중 부칙 - 현존한 醫生은 한의사로 개칭한다 - 이 공포되고, 1952년 1월 15일 한의사국가시험령이 대통령령 제588호로 공포되어 의생이 한의사로 승격 된 것을 계기로 ……5월 7일 대구시한의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날 창립총회에 참석한 인물 명단 가운데에 崔鍾還先生이 포함되어 있다. 최종환선생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1962년 간행된 『韓國漢方界人士選集』에 나온다. 그에 따르면 그는 대구시 동성로 3가 77번지에서 東海한의원 원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꾸준한 노력과 굳센 인내력으로 일찍부터 한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최종환선생은 불과 30의 젊은 나이로 순전한 독학에 의하여 어려운 한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므로서 그 인생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무거운 침묵과 심각한 사려에 잡힌 그는 환자를 다룸에 있어 일일이 그 병원을 따져서 검토한 끝에 완치의 확식을 가지고 처방하므로 언제나 백퍼센트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많은 환자들이 안심하고 그에게 생명을 내어댄다고 한다.

양방에서는 흔히 귀중한 인명을 실험도구로 사용하는 감이 있으나 한방에서는 최선생의 경우와 같이 인명을 존중하고 지성껏 어루만지기 때문에 특히 중환자들이 찾게 되는 것이다.

그는 10명의 가장으로 취미는 독서. 한의학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심혈을 경주할 것을 고요히 다짐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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