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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진돈의 도서비평]예수의 말씀을 탐구하다
도서비평 |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현문우답 백성호의 이스라엘 마음순례
2018년 01월 06일 () 09:55:37 김진돈 mjmedi@mjmedi.com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예수 이야기로 기독교적 시각이나 다른 어떤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오롯이 예수의 말씀 자체에 다가간 책이다. 예수의 말씀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 예수의 생각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선불교의 가르침과 붓다의 가르침을 겹쳐보며 모든 종교의 이치를 꿰뚫는 모습과 진리의 메시지를 탐구하고자 시도한다. 스스로의 방식대로 철저하게 분석하며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다른 종교와 사상을 거리낌 없이 대입함으로써 깨달음을 구한다. 정통 기독교나 천주교의 시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색다른 시도이고 도발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예수와 그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하며, 비신자들도 종교적 관점에 대한 부담 없이 성경을 통한 마음공부를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백성호 著 아르테(arte) 刊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예수는 누구인가’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온 이래 2000년간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란이 되어온 이야기들을 기존의 관점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풀어본다. 2부는 ‘예수의 행복론’에서는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기 쉬운 예수의 말씀들을 되새겨보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3부는 ‘내 안의 예수를 만나다’에서는 가려진 나와 예수를 잇는 길을 모색한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계명 때문에 다른 종교를 공격하고 배척하는데, 더 깊고 숨은 뜻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신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수시로 ‘나’를 섬긴다. 나의 기대, 나의 성공, 나의 욕망이 성취되도록 하느님이 일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의 뜻을 따르도록 기도까지 한다. 하느님보다 더 강력하게 더 열정적으로 섬기는 나만의 신. 그 대상은 바로 ‘나’다. 왜냐하면 ‘나의 뜻’이 진정한 우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고’를 걷어내야 예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삶이 달라지게 된다고. 그런데도 우리는 한눈을 판다. 자꾸만 다른 신을 섬긴다. 나의 고집, 나의 욕망을 버무려 자꾸만 ‘나’라는 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것을 숭배한다. 그게 나의 눈이라고.

예수의 행복론에는 정확한 이치가 녹아 있다. 그 이치를 풀어낼 때 행복의 비밀도 풀린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고 그걸 찾는 게 우리의 몫이다. 산성설교는 그 길을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또 예수가 묻는다. 네가 찾는 삶의 평화는 무엇인가?

예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부분에서, 좌파진영은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강조했다. 그건 물질적 가난을 의미한다. 해방신학자처럼 사회적 빈자와 약자를 위한 말씀이다. 우파인 복음주의 진영은 다르다. 예수님은 영적인 가난을 말하니 사회적 문제와 큰 상관이 없다고. 좌파는 사회구원에, 우파는 개인 구원에 방점을 찍는다. 둘은 그렇게 갈라선다. 예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보면 에너지가 고갈되는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눈이 바깥을 쫓아가는 사이에 영성의 샘터에서 펌프질하는 것을 잊어버린 탓이다. 또 영적으로 가난하고 또 가난해진 다음에는 어쩔건가. 안으로 들숨만 들이마신 다음에는 어쩔건가. 거기서 멈추면 죽고 말 것이다. 살려면 다시 숨을 내쉬어야 한다.

예수의 영성도 마찬가지다. 안으로 들이마신 다음에는 바깥으로 내쉬어야 한다.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다시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는 거다. 가난한 마음을 찾는 게 ‘들숨’이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게 ‘날숨’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영성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그 와중에 ‘에고의 눈’이 ‘예수의 눈’을 점점 닮아간다. 들숨과 날숨은 두 가지 숨이 아니고 하나의 숨이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예수의 메시지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 왜 권력가들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을까?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킨다는 뿌듯함으로 바깥만 바라보는 그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예수는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고 했다.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는 의미다.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집착(attatchment)이다. 집착할 때 마음의 창고가 가득 찬다. 집착을 비울 때면 창고도 빈다. 그 이치를 꿰뚫은 예수가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불교에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표현한다.

중국 선불교의 꽃을 활짝 피운 육조 혜능은『금강경』의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이치를 강조했다. 이는 집착이 없이 마음을 내라는 의미다. 예수가 마음창고를 비우라는 의미는 고요를 품은 채 지혜로운 스윙을 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적극적인 스윙을 하라고.

삶에서,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긴다. 원수에게는 복수를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텐데, 도리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그릇을 키우라는, 완전한 그릇이 되라는 의미다. 원수로 여겼던 상대가 나를 완전하게 만들고 원수로 인해 나의 그릇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사회의 그릇도 커진다.

그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예수의 무엇을 믿는 걸까. 십자가에서 예수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열두제자는 ‘예수의 주인공’을 몰랐다. 200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예수의 겉모습만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김진돈 / 시인, 운제당한의원장, 송파구한의사회장, 민주평통자문회의 송파구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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