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805> - 『肘後方』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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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805> - 『肘後方』⓷
  • 승인 2018.01.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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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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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에서 찾아낸 노벨의학상

『肘後方』이 우리 의학에 쓰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인 것으로 여겨진다. 『御醫撮要』를 비롯한 고려의서나『鄕藥集成方』에 다수 인용되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방유취』인용제서에는 ‘葛氏肘後方’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미 알려진 여러 판본 가운데 어떤 종류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게다가 아직 조선에서 간행한 판본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어 향후 문헌학적 탐구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주후방』

이 책은 또 2015년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중국중의과학원에서 일하던 屠呦呦가 선정되면서 새삼 세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수상을 전후로 눈에 띄게 전통의학 지원책이 달라진 건 없었다지만, 전통의학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중의학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뢰가 더욱 탄탄해진 것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1930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닝보(寧波)에서 태어났는데, 呦呦라는 이름은 사슴의 울음소리를 묘사한 말로,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1951년 베이징의학원에 진학하여 식물학과 본초학 등을 전공하였으며, 졸업 후 中醫硏究院에서 근무하면서 1967년부터 중국 정부가 시행한 말라리아치료제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다.

각종 전통 의서에 기록된 학질 치료제 200여 종을 검토하던 끝에, 개똥쑥(Artemisia annua)의 효능에 대해 주목하였던 그는 이 오래 된 고의서 『肘後備急方』에 언급된 학질 처방에서 힌트를 얻어 말라리아 치료제의 유효성분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존본 제3권의 ‘治寒熱諸瘧方第十六’으로 되어 있는 부분에 학질로 인하여 발생하는 한열왕래 증상을 다스리는 각종 치료법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 2번째 학병 처방으로 靑蒿가 기재되어 있다. 전문은 이렇다. “又方, 靑蒿 一握, 以水二升, 漬絞取汁, 盡服之.” 곧, 여러 처방 가운데 하나로 청호 1줌을 물 2되에 담가두었다가 베로 걸러 즙을 짜내어 다 마시게 한다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흔한 약재로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왜 진즉 몰랐을까? 문제는 처리방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천연약물이나 생약을 실험할 때 유효성분을 분리해 내기 위해 흔히 에탄올을 이용하는데, 청호의 경우 유효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0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는 수용성인 청호의 유효성분을 찾아내기 위해 비등점이 높은 에테르를 사용하여 추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 靑蒿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유유는 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고대 전통의학문헌의 사실성과 놀라운 발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회고하였다. 1500여 년 전의 전통지식에서 얻어진 이 작은 발견의 결과가 곧이어 아프리카 등지에서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수백만 명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현대과학에서는 전통의학을 비과학적이고 불확실한 치료효과로 혼재된 관습적인 요법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전통지식을 오랫동안 익숙한 몇 가지 처방이나 단순히 효과 좋은 약물에만 집중하여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편협하고 획일적인 사고의 폐단은 오늘날 기성방제나 몇몇 효과가 뛰어나다는 우수경험방을 선정하여 기준처방으로 고시하거나 천연물에서 유효성분만을 추출하거나 유사한 기능을 합성하여 값싸고 편리하게 유통하면 그만이라는 천박한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흔히 과거의 역사를 흑백으로 인지하듯이, 전통의학을 평면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오랜 기간 경험지식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한의학은 술기나 처방, 약물 몇 가지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 자체가 경탄할만한 존재이다. 비단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고대의학에서 유래한 수많은 전통지식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역시 동일한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하찮게 보아왔던 초근목피 속에서 질병을 물리치고 생명을 구할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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