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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굳은살 생기기전에
2017년 12월 22일 () 08:50:57 김영호 mjmedi@mjmedi.com
   
김 영 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굳은살은 원래부터 굳은살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피부였던 그 곳이 계속해서 쓰다 보니 자연히 굳은살이 됐다. 피부 입장에서 굳이 딱딱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테다. 마찰이 많아 말랑말랑한 피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마지못해 딱딱함을 선택한 것이 굳은살이다. 통증에 무뎌지게 스스로를 바꿔버렸다.

굳은살을 보면 마음이 떠오른다. 감수성이 높은 어린 시절에는 음악과 영화를 통해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황홀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들끼리의 우정도, 첫사랑의 감정도 극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느낌이 새로운 경험이다. 새로운 경험은 기억에 강하게 각인된다. 그래서 이 시절 느끼고 경험한 것들은 우리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강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약해진다. 예전에는 분명 좋았던 것들인데 이상하게 별 감흥이 없어진다. ‘왜 이렇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고 무뎌진 것일 수도 있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 받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큰 자극에만 겨우 반응을 한다.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기는 순간이다. 슬픈 일이다.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 마음이 굳어짐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어릴 때처럼 말랑말랑한 마음으로는 사회 속에서 겪어야 하는 상처와 고통이 크다. 그런 자극에 무뎌지기 위해 마음은 굳어져간다. 마음이 굳어지면 고통이 덜해진다. 굳은 살 처럼 외부자극을 잘 견디게 된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간다고 뿌듯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 정도 시련에 엄청 힘들어했는데 이제 하루 밤 자고 나니 괜찮다. 나도 이제 꽤 어른이 되었나보다’ 라고 스스로 대견할지도 모른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슬픔을 애써 외면하고 구석으로 슥 치워둔 채 일상을 거뜬하게 살아간다. 살아야 하니까, 내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어른이 아니니까, 나는 프로니까, 이런 과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뎌짐을 선택한 어른은 삶이 편해진다. 남이 주는 상처도 쉽게 툴툴 털어낼 수 있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아진다. 원래 사회란 그런 거고, 어른들의 세계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공감할 만큼의 여유는 사라진다. 내 아픈 마음도 위로해주지 못하고 굳은살을 선택하는 지경에 남의 마음까지 생각해줄 여유는 없다. 이 시대의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 살아왔다. 치열한 사회의 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의 굳은살을 선택해왔다. 그렇게 얻어진 굳은살을 대신해 뒤늦게 몸과 마음이 크게 아프기도 한다.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면 고통에 강해지는 대신 감수성이 약해진다. 말랑말랑했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아름답고 좋은 것을 봐도 감흥이 약해진다. 어릴 때의 감수성이 사라져간다. 굳은살처럼 한 번 굳어진 마음은 부드러워지기 쉽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은 가슴 벅찬 풍경이나 예술작품, 영화나 음악을 봐도 그냥 시큰둥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걸 봐도 젊고 어릴 때와는 다르다. 30대의 감동을 60대에 그대로 느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하고 싶은 것을 여유가 생길 때까지 미뤄두었다가 나중에 제대로 느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릴 때 가슴 벅차던 것들이 잠깐의 ‘좋네’ 로 끝날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좋은 것도 아닌데 남들이 좋다고 하니 좋은 줄 착각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나이가 한참 들 때까지 말랑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남들보다 상처도 크게 느끼고, 마음이 아픈 기간도 훨씬 길어질지 모른다. 남들로부터 ‘철없다.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풍파와 타협하지 않고 ‘내면의 동심’을 유지하는 대신 남들보다 크게 감동하고, 남들보다 많이 사랑하는 인생을 산다면 그것도 아름답지 않을까.

어른들의 거칠어진 피부와 깊은 주름을 보며 마음의 굳은살이 보였다. 덜 다치기 위해, 덜 고통스럽기 위해 얼마나 많이 굳어져야 했을까. 그 굳어진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순간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왔을까. 매 순간 지나치는 어른들의 굳은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굳은살이 떠올라 이번 글을 써본다.

언제까지 말랑한 마음을 지켜낼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지금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나중으로 미루며 살기엔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감동을 미루며 살기에 인생이 너무 짧다. 어느 순간 허무해지는 인생들이 너무 많다. 굳은살이 더 생기기전에 지금 느끼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 감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 미루기에 아까운 감동적 순간 위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앞만 보다가 놓치는 옆과 뒤, 그리고 위의 모습들. 우리가 타고 있는 지금이라는 순간이 더 속도를 내기 전에 한 숨 한번, 쉼표 한 번.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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