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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803> - 『肘後方』⓵
전설로 남은 救急秘方의 원조
2017년 12월 23일 () 07:35:01 안상우 mjmedi@mjmedi.com

『주후방』은 한의학을 전공한 이에게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고대 경험방서 가운데 한 종이다. 특히 이 책은 戰國 시대에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명의 扁鵲(서력 기원전 407~310)이 지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편작의 명성은 司馬遷의 『史記』 열전편의 ‘扁鵲倉公列傳’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그의 일화가 후대에 널리 膾炙되었다. 또한 이로써 醫家는 九流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고 편작은 의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자 오늘날까지도 임상의학의 원류로 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래서 후세에도 편작과 창공을 일러 ‘扁倉’이라고 부르거나, 편작과 전설적인 외과의사인 俞跗를 병칭하여 ‘俞扁’이라고 하거나 혹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華佗와 묶어서 ‘華扁’ 혹은 ‘화타편작’이라고 부르면서 명의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는 그의 출신지를 붙여 盧醫, 혹은 盧扁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편작은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追崇받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에 비견할 만한 동양의학의 代父격인 셈이다.

   
◇ 『주후방』

이보다 나중인 晉나라때, 『抱朴子』를 지어 鍊丹術士로도 널리 알려진 葛洪(281~361)이 비슷한 이름의 『肘後救卒方』(혹은 『肘後卒救方』이라고도 하는데 『四庫全書總目提要』에는 初名이 ‘주후졸구방’이라고 적혀 있다.)을 짓는다. 8권으로 된 이 책은 원래 100권이나 되는 갈홍 원작의 『玉函方』에서 다급한 병을 구할 목적(急救)으로 쓰이는 처방과 약물 가운데 실용적이고 효과가 빠른 간단한 처방, 혹은 구하기 쉽고 처치가 간편하고 효과가 명료한 침구법이나 외치법 등을 골라서 엮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구급방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참 뒤 梁나라 陶弘景(452~536)에 의해 101수의 처방을 증보하면서 『(補闕)肘後百一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隋書』· 經籍志에 따르면 갈홍의 주후방은 6권이고 양나라 때 도홍경이 빠진 것 2권을 보태어 『肘後百一方』9권이 되었다고 했는데, 권수도 맞지 않을 뿐더러 이미 갈홍과 도홍경의 처방을 다시 나누거나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덧붙여진 것이라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또 金나라 때에 와서 楊用道라는 인물이 다시 『證類本草』에서 간편한 처방을 채록하여 덧붙여서 『附廣肘後方』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주후방』(주후비급방)의 모범이라고 한다.

全書는 모두 73편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사고전서본에는 그 가운데 3편이 없어지고 治牛馬六畜水穀疫癘諸病方까지 70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질의 규모가 맞지 않아 도홍경의 것을 저본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심도 있다. 본문에는 주로 급성병이나 몇 가지 만성병의 급성 발작을 처치하는 약이나 침구, 外治法이 적혀 있다. 일반의서에서 강조되는 질병의 병인병기나 증상, 치법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하지 않으며, 개략적인 면만을 기재했을 뿐이다.

수록 처방들은 대부분 간편하고 효과가 있는 것들만 선택했다고 하는데, 대략 晋代 이전의 민간에서 전해지는 치료법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여길 수 있어 고대 의학사를 연구할 때 필수적으로 참고할 가치가 있으며, 고대 민간의료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의학서 가운데에는 『향약집성방』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이어 『의방유취』에서도 ‘인용제서’ 가운데 하나로 올라 있어 조선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책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누대로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肘後備急方』이라는 서명으로 정착되었고 약칭하여 ‘주후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오늘날 ‘주후방’이라고 하면 갈홍의 저작 ‘주후비급방’을 말한다. 편작이 지었다는 책은 오늘날 남아 전해지지 않으며, 그가 이런 책을 지었는지도 史傳에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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