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學心悟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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脈學心悟 강의
  • 승인 2017.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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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행

이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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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론, 금궤요략, 온병 서평 시리즈 ⑫

 

맥진(脈診)이란 사진(四診)의 하나로서 한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진단기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맥진만큼 신화가 덧붙여진 진단기법도 없는 듯하다. 대표적인 신화가 ‘맥진으로 모든 병을 다 알 수 있다’든지, ‘맥만 짚으면 처방이 나온다’ 같은 말들이다. 

◇맥학심오 강의.

李士懋(1936~2015)선생은 중국에서 선정한 국가적 명의, 제2기 국의대사로서 맥진으로 그의 의학체계를 확립한 의가이다. 이러한 그의 학풍을 ‘평맥변증(平脈辨證)’이라 한다. 『상한론』에 ‘平脈’이 있으며, 송본(宋本)의 편제상 각 병형(病形)의 제목은 ‘辨~病脈證幷治’로 되어 있다. 이로 보면 그 이름만 가지고도 이사무선생은 경방(經方: 상한금궤방)을 토대로 하여 맥진을 활용하여 진료하는 의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임상태도는 상한금궤방을 기본으로 하여 후세방까지 아울러 방증(方證)을 조문과 그의 맥을 활용한 이론체계로서 정리한 『평맥변증경방시방안해(平脈辨證經方時方案解)』 및 병증에 따른 치료 의안을 수록한 『중의임증일득집(中醫臨證一得集)』등의 그의 서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의학사상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맥진서인 『맥학심오(脈學心悟)』를 먼저 읽고, 그다음 『평맥변증경방시방안해』, 화울(火鬱)의 단일 관점으로 온병을 정리한 『온병구색(溫病求索)』, 이 세 서적을 먼저 숙독한 후 『중의임증일득집』 등의 의안집을 읽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각종 논문들은 『상유의집(相濡醫集)』의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학술태도는 꼭 필기 잘 하는 모범생 같다는 것이다. 여러 자료들을 취합하여 모으고 그 중 비평할 것과 취할 것을 정리한 후 짤막한 결론을 낸다. 그리고 암기하기 쉽도록 단락을 나눠주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책들은 모범생의 필기 노트와도 같아서 내용이 간략하고 읽기도 쉽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그의 인생에 걸친 임상경험이 담겨 있기에, 이러한 학술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의 세계 속에는 꾸밈이 없다.

『맥학심오』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고 하루밤새에 다 읽은 후 가슴이 벅차, 소개시켜 주신 원장님께서 이사무선생의 책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 너무 궁금하여 한달음에 일산에서 전주까지 내려가 『평맥변증경방시방안해』를 보고 왔었다. 이 책을 소개시켜 주신 분이 바로 지금 소개할, 『맥학심오』를 번역하여 자신의 맥에 대한 의론을 덧붙여 『맥학심오강의』를 펴내신 조원준 원장님이다.

한의사들 중에 맥진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저는 맥진을 잘 모릅니다.”와 같은 말을 들을 때가 많다. 여기에는 맥진은 절진에 의한 경험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아직 그러한 경험을 체화시키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과연, 맥진이란 게 짚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맥진은 질병의 성질, 병위, 정도, 병세를 알아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짚어낸 맥과 내가 파악한 병의 특성이 다를 때는, 과연 맥을 잘 짚었는지 의심하기 쉽다. 하지만 맥을 잘 짚는다고 자부하였던 역대 의가들은 자기가 맥을 잘못 짚었을 리가 없다 생각했기에, 가맥(假脈)이라는 개념을 두었다. 즉, 증상과 맥이 일치하지가 않기에 ‘맥을 버리고 증을 따르는 경우’, ‘증을 버리고 맥을 따르는 경우’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사무선생은 단언한다. “맥에 거짓이 있는 것이 아니며 관건은 맥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있다”.

이 때 ‘바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잘 짚어낸다는 것도 되지만, 요체는 병기(病機)를 통해 맥을 해석하는 논리력을 키우는 것이다. 짚는 것은 어느 정도 경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맥을 짚었다고 할 수 없다. 병증에 대하여 일관적인 논리로 해석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처방과 용약에 까지 일관적으로 이어지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맥진을 했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맥진을 못 하는 이유는 기본맥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맥이 나오는 이유인 맥리(脈理)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며, 맥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병증자료들이 머릿속에 채워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맥진을 잘 모릅니다” 라는 말은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한의사로서 게으릅니다”라고 말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맥학심오』를 읽을 때 먼저 읽어두면 좋은 서적은 『경악전서 맥신장(景岳全書 脈神章)』이다. 이사무선생의 여러 논리들은 경악도 지적했던 것들이 많아서 이 책에서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맥학심오』를 읽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이유는 그 전에 『맥신장』을 숙독하고 상한금궤방을 기반으로 진료하는, 이사무선생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한의사에게 『맥신장』을 읽으라면 다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다른 맥학서적들도 같이 보아야 하겠지만, 맥은 워낙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많아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드물다. 그렇기에 만일 단 한 권의 맥학서적만 고르자면, 바로 이 『맥학심오』를 권하고 싶다.

안 그래도 이사무 선생이 모범생 노트처럼 정리한 책을, 조원준원장님이 자신의 의론을 더하여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단 7페이지 분량, ‘10단계 시스템 맥진법’으로 정리해 놓았으니, 흡사 시험칠 때 보는 족보와도 같은 감각으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몇 번 읽어 어느 정도 내용이 익숙해 졌다면 그 다음에는 병기와 맥리를 연결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모든 처방의 시작인 『상한론』, 『금궤요략』을 토대로 맥을 이해해 보자면 바로 다음 공부할 서적은 『평맥변증경방시방안해』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방증을 토대로 어느 정도의 경험이 결합된다면 『맥학심오』에서 배운 맥학은 자신의 임상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필자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부디 앞으로는 동료들 사이에서 “저는 맥진을 잘 모릅니다” 같은 말은 듣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 얇은 책 한권, 그것도 많다면 맨 뒤의 단 7페이지짜리 내용만이라도 숙지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이를 토대로 뼈대를 세우고, 의안 연구와 경험으로 그 사이의 살을 채워 넣을 것이다. 

한의사 이원행(대한동의방약학회 학술국장, 일산 화접몽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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