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방실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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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방실험록
  • 승인 2017.11.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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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행

이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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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론, 금궤요략, 온병 서평 시리즈 ⑪

 

◇경방실험록.

수많은 한의학 서적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명의들이 있다. 우리는 의학사에서 각 시대별로 발전해 온 수 많은 의론들을 배워 왔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현대중국에서 만들어진 서적, 논문을 위시한 많은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잘 보면 한국 한의대에서 교육하는 의학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한 시대가 있다. 이 시대가 바로 청나라 말엽부터 현대중국 성립 사이에 있었던 민국시대이다. 이때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명의들이 있었다. 『경방실험록(經方實驗錄)』을 저술한 조영보(曹穎甫)가 바로 장석순(張錫純), 운철초(鐵樵) 등과 더불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명의들 중 하나이다.

조영보(1866-1937)는 청말~민국 시기를 살던 의가이다. 그는 청 광서제 21년(1895)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된 바 있으며 이후 黃以周로부터 경학(經學)과 아울러 『상한론』을 위주 한 의학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민국 16년에는 상해중의전문학교(上海中醫專門學校)에 초빙되어 교무장을 맡으면서 진료 활동을 펼치며 秦伯未, 章次公, 嚴蒼山, 姜佐景 등의 우수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경방(經方)을 연구하는 것을 의학의 기초로 삼을 것을 주장하게 되었고, 실제 임상을 통해 경방의 우수성을 검증하는 이른바 ‘경방실천(經方實踐)’을 주장하였다. 또한 기존의 일부 경방파(經方派) 의가들과는 달리 경방이 곧 후세방의 기초가 되는 것이므로 원류를 찾아 이해할 것을 주장하여 후세방(時方) 또한 포용하는 자세를 가졌다. 『경방실험록』은 그의 의안 76개와 16개의 추가 의안을 姜佐景이 정리하면서 이론적인 해설을 덧붙인 것으로 『상한발미(傷寒發微)』, 『금궤발미(金發微)』와 함께 『조영보삼서(曹穎甫三書)』중 하나에 속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민국 시대가 갖는 특징이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시대적 상황에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청 말의 분위기를 이은 경방파(經方派)와 온병파(溫病派)의 헤게모니 다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서양의학이 도래하고 민중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시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갈근탕의 태양온병(太陽溫病), 마행감석탕의 신량감윤(辛凉甘潤) 등 경방파의 시각에서 온병파를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이 다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여러 케이스들에서 서양의학의 치료를 뛰어넘는 경방의 힘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에 더불어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의안집이라기 보다는 한의사로서의 길을 지도하는 책으로서 바라보고 싶다. 즉 조영보와 이 책을 편집한 제자 姜佐景은 민국 시대의 한의학들이 가졌던 문제점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상한금궤방을 사용하는 이라면 가슴이 뜨거워질 만한 많은 문구가 등장한다.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證과 方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다. “청대 이백여 년 동안 많은 의가들이 활동했지만 단지 상한과 온병간의 다툼만 알았지 수백 종의 증(證)과 방(方) 사이의 변별은 깊이 연구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아둔한 일에 불과할 것이오... 수 많은 이들이 병명에 집착하면서 혹은 중의의 것을 따르고 혹은 서의의 것을 따르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소. 그러면서 중의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증과 방에 대해서는 논의가 미미하니...” (大承氣湯證 四 중에서)

중경(仲景)의 처방을 무서워하는 풍조에 대해서도 비평한다. “중경의 처방을 준제(峻劑)인가 아닌가의 여부로 분류한다면, 나는 이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본다. 첫째는 화평한 성격의 처방으로서 정기를 보함으로서 사기를 몰아내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계지탕, 백호탕, 소시호탕, 이중탕, 소건중탕, 자감초탕, 오수유탕, 소청룡탕, 오령산, 당귀작약산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류의 탕증들은 자주 접하게 되고 변증도 쉬운 편이어서 처방을 쓰는 데 별다른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가벼운 성격의 준제들로서, 사기를 몰아내되 정기를 손상시키지는 않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마황탕, 대승기탕, 대시호탕, 사역탕, 마황부자세신탕, 대건중탕, 대황목단피탕, 도핵승기탕, 갈근금련탕, 마행감석탕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류의 탕증들 또한 자주 접하게 되고 변증도 어려운 편이 아니지만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오용으로 인한 정기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셋째는 준제들로서 위급한 경우에 사용되면서 정기의 손상을 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대함흉탕, 십조탕, 삼물백산, 과체산, 오두탕, 조협환, 정력대조사폐탕, 감초반하탕, 감초분밀탕, 저당탕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류의 탕증들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변증에도 어려운 점이 많다... 의학을 공부하는 길은 마땅히 바른 순서를 따라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절대 조급한 마음으로 단계를 건너뛰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소 평담(平淡)한 경제(輕劑)를 공부하는 것에 지나치게 매몰된 사람은 내가 말한 첫째 부류의 화평한 처방들을 두고도 천하제일의 준약이라 하면서 감히 쓰지 못할 것이다.” (大陷胸湯證 二 가운데)

경방, 즉 상한금궤방과 후대 처방들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온병가들의 설은 결코 그 전부가 틀린 것은 아니고 시방(時方)도 결코 그 전부가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와 상한경방간의 연결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 연후에 경방의 법을 바탕으로 시방의 약을 쓴다면 더욱 좋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麻黃杏仁甘草石膏湯證 四 가운데), “위급한 증을 다룸에 있어 경방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후대 의가들이 밝힌 바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병을 다스림에는 넓은 견문이 필요한 것이다.” (大承氣湯證 三 가운데)

이 『경방실험록』은 따뜻한 책이다. 『상한론』과 『금궤요략』을 위시한 한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과 치료에 대한 애정, 그리고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따스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초심자가 읽기에는 다소 버거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원활히 읽기 위해서는 탕증(湯證)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기에, 초심자라면 『황한의학』을 대표로 하는 일본 상한론 연구 정도는 먼저 읽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용되는 여러 학설들을 아우르기 위해서 유도주(劉渡舟)를 비롯한 중국 학원상한론(學院傷寒論), 그리고 적어도 『온병조변(溫病條辨)』의 대표 처방들은 어느 정도 눈에 익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의사 이원행(대한동의방약학회 학술국장, 일산 화접몽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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