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피부과 500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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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피부과 500問
  • 승인 2017.10.1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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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행

이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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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론, 금궤요략, 온병 서평 시리즈 ⑨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병사는 부리어 보지도 않고 이론적으로만 병법을 안 상태에서 스스로 병법을 통달했다 여기고 나라의 운명을 건 싸움에 대장으로 나섰다가 패하여 군사 40만명을 몰살시킨 전국시대 조괄에 관한 고사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인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의학을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이론을 실제로 임상에 적용할 수 있어야 각 이론의 경중과 한계점을 알 수 있다. 머릿속에서는 아무리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현실과 맞닿아있지 않다면, 자기는 병법에 통달하였다 자부하였지만 실제 전쟁에서 패하여 스스로도 죽임을 당하고 40만명을 생매장 구덩이에 집어넣은 조괄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상한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감기 치료하는 책’이라면, 온병학(溫病學)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전염병 치료하는 학설’이라는 것이다. 실제 『상한론』은 인체의 회복기전을 작동시켜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한의학 처방의 시조이고, 온병학은 상한론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복잡 다양한 염증을 치료하는 기술들을 정리해 놓은 학문체계이다. 하지만 연구서들이 풍부한 『상한론』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온병학이 진지하게 다루어진 역사가 짧다보니 비록 온병학을 공부하더라도 어떻게 활용하여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온병을 전염병으로만 인식하면 활용 범위가 매우 좁아진다. 오우가(吳又可)는 온역론(溫疫論)에서 “온은 열의 시작이고 열은 온의 끝으로, 온과 열이 머리와 꼬리로 한몸이다.(夫溫者熱之始 熱者溫之終 溫熱首尾一體)”라고 말하였다. 즉 온병이란 발열 질환으로, 실제로는 발열, 통증, 부종, 발적 및 발생한 부위의 기능이상을 수반하는 염증질환이다. 이 개념에 포함된다면 그것이 어떠한 질병이든 온병학의 개념을 활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개념에 아주 잘 들어맞는 것이 바로 피부질환이다. 

이 실전 피부과 500문의 저자는 베이징중의의원 피부과 왕핑(王萍), 장창(張蒼)선생으로, 중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중의 피부과로서 현대중의 피부과의 태두 자오빙난(趙炳南)선생이 창건하고 중서의결합 피부과의 개척자인 장즈리(張志禮) 교수가 진료해 온 베이징중의의원의 학술을 계승한 사람들이다. 이 학파의 임상특징은 온병학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피부과 진료에 응용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부병은 피부, 점막과 피부부속기관의 병변으로 표현되는 질병으로 피손변증(皮損辨證: 피부의 손상부위의 관찰을 통해 치료의 방침을 정하는 것)은 피부과의 가장 중요한 변증방법이자 처방의 근거이다. 다수의 상황에서 피부병은 열증으로 표현되며, 열증은 한량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정법이다. 온병학에서 활용하는 청열해독약(淸熱解毒藥)류는 피부병에서 상용되며 온병학에서 주장하는 투사외출론(透邪外出論: 온병초기에 신량해표법으로 사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 반진변증(斑疹辨證), 습열증치법(濕熱證治法) 등의 사유방식이 중의 피부병학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또한 명청시대 이래로 중의피부과는 온병학설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고 피부과의 명방가운데 상당수가 온병학의 기초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온병학설의 기초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처방들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큰 장점중 하나는 중서의결합을 바탕으로 쓰여져 현대서양의학적인 병인과 병명에 맞추어 편제가 되어 있기에 보기가 편하다는 것이다. 창양(瘡瘍), 옹저(癰疽) 등의 옛 편제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현대서양의학적인 소견과 중의학적 소견, 그리고 치료방법이 내치, 외치를 아울러 보기 편리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 번 통독한 후에는 피부질환 환자가 왔을 때 세부 진료 방침을 세우기 위한 참고서로서 활용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다만 이 책 내부에는 피부질환을 이해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사진자료가 거의 없기에 공부할 때는 반드시 피부질병도감이나 인터넷 검색을 함께 활용하여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상한가(傷寒家)는 있는데, 온병가(溫病家)는?” 나는 우리나라에 온병가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한의사들이 온병 처방을 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료 현실상 한의사들이 전염병을 진료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기에, 온병학을 처음 공부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강의실에서, 책상에서만 이론적으로 다뤄지는 것 뿐이라면 한의학(韓醫學)의 온병학 수준은 지상담병에 머무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엄청난 수의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한의원 진료실에 ‘피부질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들어온다. 이 책, 『실전 피부과 500문』은 그들을 치료의 길로 인도하여줄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상한론』과 온병학이라는 한의학의 두 날개 중, 우리에게 아직 친숙하지 않았던 한 쪽 날개를 붙여 줄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의사 이원행(대한동의방약학회 학술국장, 일산 화접몽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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