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론 BEGINS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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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론 BEGINS 후기
  • 승인 2017.10.1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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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

장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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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일요일.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쾌청하다. 원래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 날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세미나가 있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상한론 BEGINS. 몇 주 간 기다렸던 세미나의 제목이다.

한의계에는 상한론을 근간으로 하는 학회들이 많다. 그러한 서로 다른 학회의 유명한 강사들이 한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학부를 졸업하고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근골격계에 관련한 강의는 전문가들의 합의가 있어 공부하기 수월하고 재현성이 우수하며 서로 다른 강의 간에 연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처방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 간에 그리 합의된 내용이 많지 않고 같은 처방과 같은 책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상한론에 관련해서도 공식학회와 비공식학회들의 강의들을 들어보면 같은 처방, 같은 조문으로도 서로 입장이 다르고, 서로를 비판한다. 이러한 강의를 들으며 저 선생들이 같은 강단에 서서 서로의 의론이 대해 갑론을박을 하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하고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정말 이런게 가능할지 몰랐다. 강의를 마련해준 한의정보협동조합에게 감사를...


강의 장소가 참 좋았다. 의자도 편하고 책상도 넓고 공기의 온도도 시원해서 최상의 공부환경이다. 대게 한의정보협동조합의 강의는 젊은 원장님들이 많이 들으러 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연세 있는 선배님들도 많이 보인다. 상한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강의가 흥미로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한론 BEGINS의 강사분들의 얼굴을 직접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1교시는 최병권 원장님의 강의였다. 평소에 최원장님의 글을 인터넷에서 종종 읽곤 했는데 실제 강의를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생각보다 최원장님의 목소리가 참 좋아서 놀랐다. 최원장님이 설명하는 상한론은 인체의 해부, 생리학에 기반한다. 경락은 혈관이다로 시작하는 내용에서 삼음삼양은 단지 인체를 전면부, 측면부, 후면부, 그리고 상, 하로 나누는 공간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개의 개념을 연결지으면 태양병은 태양경락(혈관계)와 관련된 질환이다. 계지탕은 단순히 표증처방이라기보다 리증을 다스리는 작약, 생강, 대조, 감초가 있어 실제로 봉강 및 하복강의 병변(리증)을 치료하고 더불어 태양 경락에 있는 표증을 치료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처방이나 육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다만 이러한 의론을 설명하실 때 근거가 설명이 되지 않은점, 상한론에 익숙하지 않은 원장님들을 기준으로 강의를 전개하셨기 때문에 각론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안나온 점이 아쉽다. 상한론을 해석할 때 혹은 한약이 작용하는 방법을 생리학적으로 연결지을 때 적절한 문헌적, 실험적 근거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인체의 순환론적인 시각을 통해서 처방을 쓰는데 더 넓은 사고를 할수 있게 도와주는 강의였다. 참 1교시 강의의 마지막에는 이원행 원장님께서 속한 학회를 리스펙트하면서 마치셨는데 고수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인가...

 

허원영 원장님의 경우 2교시를 맡으셨는데 치법의 순서에 대한 내용을 다루셨다. 치법의 순서는 허원장님 본인께서 상한론을 읽으시면서 발견해내고 주장하는 독창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강의의 시작과 끝은 토리화온보한청하(吐利和溫補汗淸下). 바로 이것이 치법의 순서이다.

상한론 조문을 읽다보면 때로는 증상과 처방이 맞지 않아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소음병 하리에 저령탕을 쓰는 것. 설사를 하는데 왜 수액대사를 다루는 저령탕을 쓰는 것인지 의문이 들수도 있겠다. 허원장님의 설명은 저령탕이 설사를 치료할수도 있지만 저령탕의 주치증이 설사가 아니라도 치법의 순서에 따라 저령탕부터 사용했다는 것이다. 조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설사를 하면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 증상이 있을 경우 설사부터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소변불리부터 치료하는 것이 바로 치법의 순서를 지키는 방법이다.

또 다른 환자가 설사를 한다. 그런데 조문에서는 이번에는 저령탕이 아닌 감초사심탕을 사용하는데 이 처방은 설사처방이라기보다 소화제에 가깝다. 그럼 이번에는 왜 소화제냐. 허원장님의 설명은 이 환자가 설사를 하면서 조문에는 없지만 소변은 정상일 것이고, 비증(痞證), 증 가슴이 막히고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있기 때문에 설사를 멈추는 처방 이전에 소화제와 같은 감초사심탕을 쓴 것이라고. 이러한 치법의 순서는 사실 선배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것이다. 인삼이나 숙지황 같은 보약재를 사용할 때는 수액대사와 GI tract을 먼저 고려하고 쓰라는 점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허원장님께서 이야기하시는 치법의 순서는 상한론의 조문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하는데 이견이 있을수도 있겠다. 조문의 내용이 사용한 처방의 방증과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유명한 요시마토 도도의 약징은 상한론의 조문을 분해하여 약의 증후와 방의 증후를 만들어 놓았으니... 그럼에도 이러한 치법의 순서는 초심자들이 한약을 처방할 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교시는 이원행 원장님 강의였다. 최병권 원장님께서 생리학적인 내용과 상한론을 연결 짓고, 허원영 원장님은 조문만을 가지고 설명하셨다면 이원행 원장님은 당대의 명의라 불리는 국의대사, 중의학, 혹은 생리학적 최신지견들을 가지고 강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중의학 서적들이 핵심을 빼고 오행이나 장부학설등의 처방의 기술과는 관계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며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초심자는 일본식의 방증을 공부하는 것이 처방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강의는 짧은 시간 진행되었지만 강의는 인트로가 아닌 상한론 전부를 다루었다. 이원행 원장님의 경우 CBT 라 불리는 중심체온, 그리고 부신피질호르몬의 일주기등을 가지고 상한론의 육경병을 설명한다. 그리고 방증이라 불리는 알짜팁들도 나왔다.

어떠한 처방이 잘 듣는 사람은 어떠한 증상을 호소하고, 어떠한 성격 및 체형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치자시탕의 경우 가슴이 답답하고, 변열감을 호소한다. 우울, 슬픔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피부색은 어둡다. 입면장애를 호소할수 있고 대변은 정상이거나 변비 경향이다. (변이 무른자에게는 치자를 조심해서 써야한다는 내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방증에 이 방증의 사람들은 꼭 조이는 속옷을 싫어하고 넥타이를 싫어한다는 경향성도 있으니, 실제 비슷한 환자군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쉽게 처방을 선정할 수 있게 된다.

이원행 원장님의 경우 강의 도중 상한론의 조문은 그 자체로 완벽하며 아름다운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조문을 분해하고, 특별한 판본만을 보는 원장님들을 우회한 비판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좋은 강의였으나 짧은 시간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했기 때문에 이 강의는 딱 뭐였다고 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빠르게 스쳐가는 많은 내용들이 흥미있었고 좋은 팁들이 많아서 좋았다.
 

한의정보협동조합의 8번째 세미나. 상한론 BEGINS.

언제 또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상한론의 대가라 불리는 강사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상한론이라는 책을 짧은시간 동안 다양한 관점에서 통찰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혹시 다음번 강의가 마련된다면 강사님들의 서로 다른 의론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해주신 최병권원장님, 허원영원장님, 이원행 원장님 그리고 강의를 마련해준 한의정보협동조합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글. 홍제한의원 장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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