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만의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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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만의 은신처
  • 승인 2017.09.0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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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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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삶에서 깨어나기

 

타라 브랙 著
불광출판사 干

받아들임의 저자인 타라 브랙이 전하는 두 번째 치유 메시지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스템에 물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꿈에서 벗어나 매몰되지 말고, 내면의 참된 자신을 믿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 그 자체에 깨어있으리라 말한다. 제목은 삶에서 깨어나기. 

개인적으로 ‘True refuge’라는 원서 그대로의 제목이 더 맘에 든다. 책 표지 역시 연꽃을 품고 있는 원서가 더 예쁘다.(심리학 쪽 책은 원서로 읽는 게 의미가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 번역서를 읽는 것도 괜찮다.)

책을 읽는 내내 타라와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곁에서 같이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러빙프레젠스의 눈으로 그대로 나를 바라봐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첫 번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 본인이 유전병이 발병하여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고 그 시기를 겪는 동안의 본인의 경험 역시 진솔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명상, 고통스러운 순간의 마음챙김, 몸의 경험, 강박적 사고, 핵심믿음, 트라우마, 자기연민, 용서, 연민, 분리의 고통 등 임상 뿐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사례들이 실려 있어 생생한 느낌으로 책에 푹 빠져들게 된다. 챕터 시작을 함께하는 루미의 시들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가슴에 담긴다.


부서져라
허물어져라 그리하면 당신이 있는 곳에 수많은 들꽃이 피어나리니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은 바윗돌처럼 차디찼다
다르게 해 보아라
항복하라

-잘랄루딘 루미-


‘refuge’는 흔히 피난처, 은신처, 안전지대 등으로 해석이 된다. 각자의 삶에서 나만의 은신처는 무엇인가? 힘들 때나 불안할 때 찾아가는 안전, 안심의 장소가 있는가? 그러한 장소가 실제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과거의 어릴 적 고향이라면, 또한 멀리 여행 갔던 곳이라면, 정말 필요할 때 바로 찾아갈 수 없을 것이다. 

타라가 말하는 진정한 귀의처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음을 안내해준다. 근본적인 치유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법은 바로 여기, 지금 이순간의 한가운데에서라고.

그리고 그 귀의처에 이르는 세 개의 문은 진리, 사랑, 자각이다. M&L에서 연습하고 느껴봤던 삼단전 명상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인 듯 하다. 지금의 나로 있게 한 근원적인 힘, 의지, 결단, 진리를 품고 있는 하단전, 긍휼하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 모든 생명과 연결되는 자애심이 있는 중단전, 지금 이 순간 실상을 깨닫고 자각하게 하는 힘이 있는 상단전. 그 삼단전을 자각하고 의식하는 명상을 꾸준히 하는 것도 필요할 때마다 ‘true refuge’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우리의 힘과 자유가 있다”고 하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동적인 체념이 아니다. 받아들임은 자신의 경험의 실상에 대한 용기 있는 관여다. 자비심을 갖고 현재에 존재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감싸 안을 수 있다. 자비로운 현존 속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우리의 자각이 더욱 명료해진다. 

생각이나 인식은 무엇이든 그것에 상응하는 신체감각으로 표현되고, 역으로 신체감각은 생각을 일으킨다. 즉 이 순환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면 계속 이 사이클에 갇혀 있게 된다. 자유러워지기 위해, 우리는 매순간 깨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다정한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려야 한다. 믿음을 자각하지 못하면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된다. 반대로 믿음을 자각하고 알아차리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는 깨어진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트라우마에 갇혀 철저한 단절 속에 무력하고 겁에 질린 자아에게 충분히 안전해져서 고향으로, 나의 몸으로, 삶으로 돌아가 현재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사랑과 안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서, 궁극적으로는 혼자 자신만의 힘으로도 사랑과 안전을 느끼게 하는 것. 사랑받는 느낌을 환자가 경험하게 하는 것. 

그래서 여기서도 저자는 보살핌과 안전감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모든 트라우마 치료법의 기본요소라고 하고 있다. 사랑의 힘과 안전의 느낌을 일으키는 생각과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뇌의 시냅스 연결을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깨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의처라고 하니 생각나는 시가 한편 있어 이것을 끝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바닷가에 대하여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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