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徵 약의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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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徵 약의징표
  • 승인 2017.07.2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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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행

이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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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론, 금궤요략, 온병 서평 시리즈 ⑤

 

Central Dogma. 유전 정보가 DNA에서 RNA로 흘러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을 나타내는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이다. 레트로바이러스와 변형 프리온이라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Central Dogma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확고하다. 

◇약의징표.

이러한 확고한 대전제가 주어진다면 어떠한 현상을 해석할 때 고려해야 할 변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가장 멋진 청바지를 골라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눈앞에 바지 두 벌이 있을 때와 열 벌이 있을 때의 스트레스는 어느 쪽이 더 클까. 만일 눈앞에 백 벌이 놓여 있다면? 의료행위 가운데에도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가장 적합한 치료를 시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눈앞에는 수백개의 적합해 보이는 처방이 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 처방일까? 그래서 우리는 기준을 찾는다. 더 적합한 처방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복잡한 연산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요시마스 토도(吉益東洞)는 1702년 출생하여 일본 에도시대를 살다 간 의사이다. 그가 살아간 시대는 도쿠가와 막번 체제를 세우게 되는 전투인 세키가하라 전투로부터 100년이 흐른 시점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기반이 다져진 때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런던의 인구가 60만명이던 시절에 당시 에도(도쿄)에는 100만명이 살았다고 한다. 안정된 사회와 발전된 경제는 소속된 이들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 당시 일본 사상계에서는 중국에서 전래된 주자학에서 벗어나 이토 진사이(伊藤仁齋)의 고의학(古義學)과 오규 소라이(荻生??徠)의 고문사학(古文辭學)이라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의학계에서도 중국의 의학으로부터 벗어나 나고야 겐이(名古屋玄醫)에 이어 고토 간잔(後藤艮山)이 고의방(古醫方)을 주장하는 의학 사상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변화의 시대’는 그에 걸맞는 인물을 만든다. 요시마스 토도는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의학 이론을 정립한다. 그의 연구 방식은 고문사학의 방법론을 그대로 차용하였고, 그의 의학의 핵심 이론인 만병유일독(萬病唯一毒)은 고토 간잔의 일기유체설(一氣留滯說)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그의 이론은 그 당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열렬한 지지자와 가차없는 비판자를 동시에 만들어 냈다.

대체 왜 그의 학설이 그러한 논쟁을 일으켰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토도가 당시 의학계에서 수행한 가장 큰 역할이 ‘확고한 대전제를 설정해 의료 활동에 고려되는 변수를 줄여 준 것’에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다양한 변수가 줄어들어 복잡한 연산이 필요 없어진 이들에게는 강력한 환영을 받았던 것이고, 그 대전제에 동의할 수 없던 이들은 자연스레 가차없는 비판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가 만든 대전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간략히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만병유일독(萬病唯一毒): 모든 병은 毒에 의해 생긴다. 이를 ‘병독(病毒)’이라 한다.
2. 일약일능설(一藥一能說): 모든 약은 한 가지의 고유한 기능을 갖는다. 이를 ‘약독(藥毒)’이라 한다. 약독과 병독은 하나의 독을 매개로 일대일로 대응한다.
3. 증(證): 병명(病名), 육경(六經) 등 모든 이론은 배격한다. 의사가 치료하는 병이란 오직 환자가 건강할 때는 없던 변화인 ‘증’의 조합이다. 한열(寒熱)의 경향, 비수(肥瘦) 등의 평소 가진 신체 특성, 생사(生死), 임신 등은 증이 아니다.
4. 방(方): 처방은 약의 조합이다. 따라서 처방 속에는 병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 가장 믿음직한 것은 『상한론』과 『금궤요략』에 실려 있는 ‘고방(古方)’이다.
5. 방증상대(方證相對): 환자의 몸에서 毒의 징후를 찾아서 대응하는 약을 조합한 처방을 투여하는 것. 이것이 의사의 본분이며, 이를 전담하는 이를 ‘질병의사(疾醫)’라고 한다.

이러한 대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약징(藥徵)』을 무리 없이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약징』은 기본적으로 본초서의 형식을 지니지만 처방 해설서이기도 하며, 이러한 대전제를 설득시키기 위한 논증서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전제에 동의할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본초서에는 한 본초가 가진 수많은 기능이 나열되어 있다. 토도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미 한 본초가 가진 수많은 화합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먀, 이에 의해 조정되는 인체 기능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한 처방 구성 성분에 의해 활성화되는 유전자와 생성 단백질, 그리고 이것이 관여하는 질병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처방이란 단순히 한 약물과 다른 약물의 조합이 아닌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새로운 영역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토도의 대전제를 가감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고민거리가 된다. 아예 쓸모가 없다면 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의 대전제는 비록 고문사학적 신념에서 출발한 가설일지라도 임상에서 유용한 도구가 되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믿는 만큼 변수-고민거리-를 줄여’ 주기에 말이다.


비판적인 현대인으로서 토도의 대전제, 그의 Dogma는 분자생물학에서의 Central Dogma와 같은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토도의 대전제를 한의학에서의 Central Dogma로 믿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이 『약징』은 필독서가 된다. 그리고 이 『藥徵 약의징표』는 『약징』을 가장 충실히 해석함은 물론이고 임상 적용에까지 이를 수 있게 도와주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다. 이 정도의 완성도로서 책을 펴낸 저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토도의 대전제를 한의학에서의 Central Dogma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약징』은 옛 문헌을 후대 이론을 끌어 들여 해석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해하고자 했던 고문사학의 연구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상한론』 연구서들 중 성무기(成無已)의 『주해상한론(註解傷寒論)』 이후 거의 표준이 되다시피 한 以經釋論(이경석론: 내경의 이론으로서 상한론을 해석함)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以論釋論(이론석론: 상한론과 금궤요략의 내용으로서 상한론을 해석함)의 방식을 취한 시작점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의를 가진다. 이 책은 이것만 가지고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한의사 이원행(대한동의방약학회 학술국장, 일산 화접몽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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