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藥合編> 線裝本의 板本에 따른 同異考
상태바
<方藥合編> 線裝本의 板本에 따른 同異考
  • 승인 2017.07.15 0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

한기춘·서정철·최순화

mjmedi@http://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⓹


Ⅰ. 서론

◇그림 1. <方藥合編> 線裝本의 表題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方藥合編>은 엄정하게 말해서 線裝本으로서, 表題에 따라 3종류로 존재하는데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重訂方藥合編 內附補遺方>, <證脈方藥合編 內附補遺方>이 바로 그것이다(그림 1). 刊記를 보면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는 甲申涂月冶洞新刊, 乙酉二月冶洞新刊, 乙酉仲秋冶洞新刊이고, <重訂方藥合編>은 乙酉仲秋美洞新刊이며, <證脈方藥合編>에는 乙酉仲秋美洞新刊, 乙酉仲秋冶洞新刊, 院山新刊, 里洞新刊이 존재한다(그림 2). 한편, 서로 다른 表題가 앞뒤로 있거나 서로 다른 刊記 2개가 함께 들어있는 異本도 있다.

◇그림 2. <方藥合編> 線裝本의 刊記

필자는 <方藥合編> 線裝本의 板本마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이며 다른 점이 있다면 책마다 어떻게 表記되어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본 연구를 시작하였고 <方藥合編> 線裝本 판본 59종(필자가 소장한 48종과 기타 기관 소장본 11종)을 조사하여 연구한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밝힌다.

 

Ⅱ. 본론

1. 印文을 통한 비교

<方藥合編> 線裝本에는 모두 4종류의 印文이 등장하는데 渼隱, 酉齊, 樹德在滋, 惠庵이 바로 그것이다(그림 3). 그러나 판본마다 印文의 존재여부에 차이가 있었고, 같은 印文이라도 陽刻과 陰刻으로 달리 표현되었다.

 

2. 石隱補遺方에서 延齡固本丹의 藥材 순서에 대한 비교(그림 4)

1) <重訂方藥合編>, <證脈方藥合編> 乙酉仲秋美洞新刊과 里洞新刊의 경우

黃芪二錢 蒼朮一錢 神麯二分 枸杞子 山茱萸酒蒸 白茯令 五味子 人參 木香 柏子仁 各二兩 川椒去合口 石菖蒲 遠志 澤瀉 各一兩 覆盆子 車前子 地骨皮 各一兩半으로 柏子仁 다음에 川椒가 나오고 地骨皮로 끝난다.

2)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乙酉仲秋冶洞新刊, <證脈方藥合編> 乙酉仲秋冶洞新刊과 院山新刊의 경우

黃芪二錢 蒼朮一錢 神麯二分 枸杞子 山茱萸酒蒸 白茯令 五味子 人參 木香 柏子仁 各二兩 覆盆子 車前子 地骨皮 各一兩半 川椒去合口 石菖蒲 遠志 澤瀉 各一兩으로 柏子仁 다음에 覆盆子가 나오고 澤瀉로 끝난다.

◇그림 4. 판본에 따른 石隱補遺方의 延齡固本丹 藥材 순서의 차이

3. 惠庵先生原本과 惠庵先生遺稿의 비교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表題는 ‘惠庵先生原本’으로,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에는 ‘惠庵先生遺稿’라고 표기되어 있다.

 

4. <方藥合編>의 출판순서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重訂方藥合編>, <證脈方藥合編> 중 刊記가 乙酉(1885년)仲秋로 되어있는 것들이 있어 과연 어느 책이 먼저 출판되었을지 의문이 들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刊記로는 비록 같은 乙酉仲秋이지만 印文을 통해 살펴보면 <方藥合編> 線裝本 중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에 있는 樹德在滋와 惠庵의 印文이 <重訂方藥合編>에 그대로 나타나고 <證脈方藥合編>에서는 사라진 점, 또한 酉齊의 印文이 <證脈方藥合編>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점으로 보아 <證脈方藥合編>은 <重訂方藥合編>보다 실제로는 좀 늦게 간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證脈方藥合編> 院山新刊과 里洞新刊의 경우 다른 판본과 달리 刊記가 자세하지 않아 출판 년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5.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齊는 丁亥(1887년)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齊’는 <重訂方藥合編>에는 없으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異本과 <證脈方藥合編>에는 나온다. 여기에는 “丁亥玄月受業渼隱生謹署”라고 되었는데 丁亥玄月은 1887년 음력 9월로 石隱補遺方終에 나오는 “乙酉仲秋”의 1885년 음력 8월과는 다르다. 이로 보아 실제로는 1885년 첫 간행 이후 1887년까지도 증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證脈方藥合編>이 <重訂方藥合編>을 만든 출판계열(美洞)과 다른 출판계열(冶洞)에서 출판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출발한 것으로 보이며 직선적인 해석보다는 병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한 논술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Ⅲ. 고찰

<方藥合編>만큼 한국한의학사에서 線裝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판본이 전해져 내려오는 책은 매우 드물다. 책이 많이 간행되고 널리 읽힌 만큼 후학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주었으나 <方藥合編> 線裝本끼리의 판본 비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5. 본문 서술에 참고한 필자 소장의 <方藥合編> 線裝本

필자가 <方藥合編>의 線裝本마다(그림 5) 印文을 조사한 결과 酉齊와 惠庵은 陰刻으로만 존재하고 樹德在滋는 陽刻으로만 찍혀 있었다. 반면 특이하게도 渼隱의 경우 유일하게 陽刻과 陰刻이 존재하는 바 <重訂方藥合編>에는 陽刻으로 판각되었고, <證脈方藥合編>에는 陰刻으로 판각되었다.

石隱補遺方의 延齡固本丹을 비교해 본 결과 구성 藥材의 종류와 용량은 동일하나 판본의 刊記 사이에 藥材의 순서에 同異點이 나타났다. 즉 <重訂方藥合編>, <證脈方藥合編> 乙酉仲秋美洞新刊과 里洞新刊의 石隱補遺方 延齡固本丹에서는 柏子仁 다음에 川椒가 나오고 地骨皮로 마쳤으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乙酉仲秋冶洞新刊, <證脈方藥合編> 乙酉仲秋冶洞新刊과 院山新刊의 石隱補遺方 延齡固本丹에서는 柏子仁 다음에 覆盆子가 나오고 澤瀉로 마무리되었다.

◇그림 6. 지리적으로 가까운 冶洞과 美洞(김정호, 首善全圖, 중앙지도문화사 복간본)

사전적 의미로 遺稿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를 말한다. <醫方活套 內附鍼線>의 경우 惠庵先生이 사망하기 이전에 간행되었으므로 ‘原本’이 맞고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의 경우 惠庵先生이 사망하기 이후에 간행되었으므로 ‘遺稿’가 맞다. 그러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역시 惠庵先生이 사망한 이후에 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遺稿’가 아니라 ‘原本’으로 표기된 이유는 惠庵先生이 이미 원고를 완성하고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표지를 판각하고 나서 거의 출판을 앞두고 사망하였기 때문에 출판 비용 등의 문제로 재판각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를 판각상의 실수로 추정할 수도 있겠으나 惠庵先生이 사망 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바로 다음해에 출판된 것을 감안하면 판각상의 실수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하겠다.

또한 <方藥合編源因>에 나타난 것처럼 坊人의 요청에 따라 책이 急造되면서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이후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에 이르기까지 時流에 따라 지리적으로 가까운 冶洞과 美洞에서(그림 6) 혼란스럽게 여러 판본의 <方藥合編>이 섞여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方藥合編>의 편집을 命받은 사람은 黃泌秀이지만 <方藥合編源因> 외 어디에도 黃泌秀의 흔적은 찾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추정컨대 최소한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의 경우 渼隱이 家督인 黃泌秀의 요청에 의해 遺稿인 <方藥合編>을 成冊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는 누가 成冊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Ⅳ. 결론

<方藥合編> 線裝本끼리 판본을 비교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渼隱, 酉齊, 樹德在滋, 惠庵의 각 印文이 판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2. 石隱補遺方에서 延齡固本丹의 藥材의 순서는 각각 판본마다 同異點이 나타났다.

3. 惠庵의 遺稿인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을 成冊한 사람은 渼隱으로 추정된다.

 

1) 朱建平. 我院馆藏朝韩版朝韩古医籍调查. 韓國醫史學會誌. 2003:16(2):141-146.

안상우. 해외에서 찾아낸 우리 옛 의학책. 한국한의학연구원. 2009:91-10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