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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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 승인 2017.06.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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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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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http://


도서비평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著
난다 刊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보여주신 김정숙 여사님의 행보에 또 한 번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럴 때 쓰는 말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뇌리에 가득했는데, 혹시 저간의 에피소드를 잘 모르시는 분도 있으세요? 이야기인즉슨, 영부인께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으로부터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 받은 뒤 그 답례 형식으로 편지를 써서 건네셨거든요. 그것도 여사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문장만으로 채우기에는 좀 부족하셨던지, 책 내용의 일부를 적절히 인용하는 기지까지 발휘하시면서….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신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님의 여러 신문 칼럼들을 한데 모은 책입니다. 출간된 지 벌써 4년이 지났고, 칼럼이 신문에 실렸던 시기로 따지면 30년도 더 지난 글들도 들어있는데, 희한한 것은 세월이 꽤 지난 지금 읽을지라도 의미가 전혀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새록새록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황 교수님의 글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워낙 곡진하게 담은 덕택이기도 하고, 시대가 별로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엄혹하고 무참했던 탓이기도 하지요. 뭐 앞으로는 적폐(가깝게는 이명박근혜, 멀게는 친일 부역자) 청산으로 절대 시절이 하수상해지지 않겠지만…. 

책은 3부로 나뉩니다(이런 저런 신문에 발표된 글 조각들을 어떻게 엮을까 편집자가 꽤 고심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아주 멋진 구성이었습니다. 덧붙여 독일화가 팀 아이텔[Tim Eitel]의 작품을 표지 그림으로 사용한 것도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1부에는 주로 2009∼2012년의 칼럼들을 모아놓았는데, 지은이가 1970년대 박정희 시대에 겪었던 외국서적수입 관련 일화 「과거도 착취당한다」가 맨 첫머리에 등장합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제목만으로도 저자의 성향이 짐작되지요? 이러니 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 당당히 윗자리를 꿰찰 수밖에….

2부에는 좀 생뚱맞게(?!) 사진작가 구본창·강운구의 작품 5점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저는 사실 이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제껏 동서양의 유명 회화에 대한 안내서는 좀 접해봤지만, 작품사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처음이었거든요. 급기야 두 분 사진작가도 따로 검색해보았고, 기회가 되면 두 분의 책도 읽어보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3부는 대다수가 2000∼2004년의 칼럼들이고, 사이사이 1986·1987·2009·2012년의 것들도 몇몇 섞여 있는 부분인데, 일독 후의 독자들을 모두 숙연하게 만들려는 의도인지 맨 마지막은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이 다시금 선연히 떠올랐고, “오래된 생각이다”라는 글귀에 이르러서는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지요. 

사노라면 ‘본말전도(本末顚倒)’일 때를 적지 않게 겪게 됩니다. 이런 말로 안 되는 전도망상(顚倒妄想)을 바로잡으려면, 최우선 근본에 대한 깊은 성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황 교수님은 ‘어디에나 사람이 있고 늘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조곤조곤 친절히, 그러나 아주 명징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 천 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면서….


안세영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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