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782> - 『軍中醫方秘要』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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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782> - 『軍中醫方秘要』②
  • 승인 2017.06.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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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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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冊의 바다에서 만난 陣中醫方

 

◇ 『군중의방비요』

  지난 주 소개했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一山文庫本 군진의학서 『군중의방비요』편에서 필자가 미처 확정하지 못했던 사항에 대해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줄 추가정보를 얻었기에 한 번 더 얘기해 보려고 한다. 마침 연구원 이민호 박사가 이 글을 꼼꼼히 읽고 나서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어 지적해주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먼저 중국에서 발행한 목록류에 기재된 서지사항 가운데 불분권 1책이란 표기는 실물조사에서 이미 2권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밝혔기에 진즉 보정이 된 것이지만, 저술시기에 있어서 청나라 宣統3년(1911)에 저술되었다는 것은 이 책이 매우 특기할만한 노력을 기울여 인출되었던 과정이 밝혀짐으로써 정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책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활자로 인쇄되었는데, 목판본이라고 기재한 서지사항은 잘못된 것이며, 필자의 실사소견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동활자 인쇄를 주도한 인물은 林春祺(1807~?)라는 인물로 호는 怡齋이며,약관이 되기도 전 이른 나이에 시작하여 1846년까지 21년간에 걸쳐 구리활자 40여만 개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일산문고본 이제면에 적혀있던 ‘侯官林氏銅擺本’이란 결국 福建省 福淸縣 龍田에 살았던 林春祺가 동활자로 인출하였다는 표기였으며, 그는 이 활자에 자신의 연고지 지명을 넣어 ‘福田書海’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 전한다.

  안타깝게도 『군중의방비요』에는 이런 사연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가 이 활자로 인출한 다른 책 가운데, 청말 이름난 碩學 가운데 한 사람인 顧炎武가 지은『音論』(3권)의 책머리에는 “福田書海銅活字版, 福建候官林氏珍藏”이라고 적힌 牌記가 붙어 있고, 이 책「銅板叙」와 『詩本音』의 권미에는 이상에서 말한 동활자제조와 인쇄과정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청대 동활자 인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古今圖書集成』을 꼽을 수 있다. 보통 『醫部全書』, 혹은 『醫部全錄』이라는 서명으로 알려진 거질의 책도 결국 청조에서 국력을 기울여 만든 『古今圖書集成』이라는 전서의 의약부분을 후대에 다시 나누어서 발행한 것이다. 이것도 역시 복주 사람 陳夢雷가 주도하여 장장 5년에 걸친 편찬사업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雍正재위 연간인 1725~1726년에 모두 25만자의 동활자를 주조하여 1만권을 인출한 것이다. 그러니 민간에서 거액의 은자를 들여 찍었다는 ‘林氏銅擺本’의 규모는 가히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청대의 동활자본은 역시 방대함에 비해 널리 사용되진 못했는데,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을 필두로 조선조 내내 끊이지 않고 금속활자본을 인행한 것에 비하면 매우 협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일 3국 사이에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쇄문화에 있어서의 경쟁 심리와 자존심 다툼 때문에 이러한 활자본의 존재는 더더욱 학계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역시 밝혀져 있지 않다고 했는데, 비록 실명은 찾아지지 않았으나 청대인물 澼絖道人이란 사람이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가 펴낸 것은 『水陸攻守戰略秘書七種』이라는 이름의 전20권으로 된 군사전문서로 이 책은 그 가운데 일부이다.  전서 가운데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포함되어 있는 모양인데 중국 전역을 통틀어 찾아보아도 현재 전하는 판본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매우 드문 희귀본임에는 분명하다.

  나아가 저술시기 또한 특정하기 어렵지만 1800년대 중후반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북경대도서관에 완본이 소장되어 있는 모양이니 상세하게 살펴볼 연구자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 상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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